“사람답게 사는 게 뭔데?”
-영화 ‘소공녀’ 중 미소의 대사-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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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아주 가끔 ‘행복’이란 것은 어디에 있고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일까 생각해본다.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 질문에 관해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행복이란 감정과 함께 있을 때니까. 행복의 형상은 알 수가 없겠지만 누구에게나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일반화 시킬 수는 없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 한잔의 여유가 없다는 것은 곧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한다고 한다. 너무 과장된 표현처럼 들리지만 내가 이탈리아를 갈 때마다 이탈리아인 동료들을 만날 때 마다 그렇게 느끼곤 한다. 커피란 그들에게 ‘살만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에게는 그저 카페인이 들어있는 단 한잔의 음료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모카포트로 커피(Caffè=Espresso)를 내리는 동안 집안을 은은하게 적시는 마법 같은 향기는 하루를 열어주고, 바쁜 출근길 바(bar)에 들려 카운터에 옹기종기 서서 1유로 정도의 동전 하나를 올려놓고 아침식사 대용으로 후르륵 입안에 털어넣는 커피(Caffè=Espresso)는 찬란한 햇살 같은 활력이다. 그리고 하루를 보내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을 주도하는 매개체이고 혼자만의 사색을 가져다주는 휴식이다. 그리고 따스한 저녁식사 시간을 보내고 얻는 소화제이며 하루의 정리이다.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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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한 삶’에 꼭 필요하다고 하는 이탈리아인들의 커피사랑의 문화는 그들의 생활의 또다른 면에서 잘 나타난다. 형편이 어려운 누군가는 <카페 소스페소(Caffè sospeso)> 라고 적혀있는 Bar(일종의 커피숍)에서 커피를 받아 마실 수 있다. 나폴리에서 시작된 이 문화는 누군가가 한잔의 커피를 주문하면서 ‘카페 소스페소’도 계산하겠다고 하며 두잔의 값을 계산한다. 그러면 나중에 소중한 커피값을 지불할 여력이 없는 다른 누군가가 ‘카페 소스페소’의 표시를 확인하고 커피를 제공받을 수 있다. 비록 작은 나눔처럼 보이지만 이 행위는 커피를 누군가와 함께 마시는 행위이며 가난한 이들에게 건네는 포옹이고 함께 나누는 ‘살만한 삶’이다.
카페 소스페소
카페 소스페소
어렸을 적 그저 음료로써 향이 좋아 마시거나 후식으로 커피를 마셨었다. 17년 전 유학을 시작할 때 만난 나의 선생님, 클라우스(Klaus Arp)는 독일 생활 첫 레슨(?)으로 함께 그의 집에서 카푸치노를 만들며 나에게 커피를 함께 마시는 행위가 서로에 대한 관심과 나눔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 이후로 커피는 나에게 음료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고요한 아침공기 속에서 달그락 달그락 커피 내리는 그 시간은 혼자 있는 사색의 시간이고, 리허설을 하고 쉬는 시간에 극장 칸티네에서 옹기 종기 동료들과 마시는 커피는 함께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시간이다.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냈던 커피숍에서의 커피는 추억을 마시는 행위이고, 수십년전, 수백년전 역사속의 인물들이 커피를 마신 공간에서의 커피는 시간을 여행하는 행위이다. 피곤할 때는 활력을 불어넣는 음료이고, 위로받고 싶을 때는 나를 토닥토닥 해주는 음료이다.

오래전에 나의 선생님, 클라우스는 나에게, 함께 하는 커피가 주는 행복을 그가 지휘하는 연주회에서 오감으로 느끼게 해준적이 있었다. 보통의 연주와 같이 1부를 마치고 관객들은 극장 로비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클라우스가 로비에 있던 쳄발로를 연주함과 동시에 누군가가 휴식을 즐기고 있던 관객들 사이에서 소리쳤다. 정확히는 노래를 시작하였다.

“Schweigt stille, plauder nicht. Und höret, wasjetzund geschicht. 잠시 조용히 하세요! 대화를 멈춰요. 자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들어봐요! “ 예고도 없는 일종의 플레쉬몹으로 시작된 지독한 커피 애호가 바흐의 <커피 칸타타>(J.S.Bach : Coffee Cantata, BWV 211) 이였다. 쉬는 시간 로비에서 이루어진 이 깜짝 연주로 커피등을 즐기던 사람들은 클라우스와 음악가들이 만들어낸 이 특별한 쉬는시간에 이 세상 어디서도 느끼지 못하는 특별한 오감을 자극하는 커피를 함께 즐길 수 있었다.

어쩌면 ‘살만한 삶’을 위해서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전고운 감독의 영화 ‘소공녀’의 미소(이솜 분) 내가 생각하는 모든 영화와 드라마 인물 중 가장 위스키를 소중하고 맛있게 마시는 사람이다. 일당 4만5000원의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사는 미소는 형편이 어렵다. 게다가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병도 있다. 삶이 어려워도 그는 자신이 선택한 삶에 후회하지 않고 막연한 미래 때문에 현재를 놓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누린다. 오히려 친구들에게 위로와 힘을 준다. 집과 소유물을 정리해 가면서도 그에게 ‘살만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미소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은 하루를 마감하며 마시는 한잔의 위스키와 한 개비의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의 시간이다.
카페 소스페소를 아시나요, 누군가와 행복을 공유하는 삶
어쩌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 살만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의 선택으로 함께 나누는 포옹 같은 <카페 소스페소>처럼, 미소와 같이 타인의 잣대가 아닌 자신이 선택하여 책임지는 시간 삶, 그리고 행복의 가치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누군가와 그 행복을 공유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치 커피한잔이 주는 행복처럼.

“나는 담배, 위스키 그리고 한솔이 너… 그게 내 유일한 안식처야”
-영화 ‘소공녀’ 중 미소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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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지휘자 지중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