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겸 탐험가 실뱅 테송의 단편집…예리한 시선의 기발한 이야기들
풍찬노숙으로 벼린 문명과 자연에 관한 통찰…'노숙인생'
'노숙인생'. 노숙인의 인생을 담은 에세이나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아닌가 싶겠지만, 실은 프랑스의 탐험가 겸 작가인 실뱅 테송의 단편집 제목이다.

작가가 수십 년에 걸쳐 전 세계를 돌며 풍찬노숙한 경험과 통찰을 담아 써낸 단편소설 15편이 '노숙인생'이라는 제목으로 묶여 최근 번역 출간됐다.

첫 수록작은 '아스팔트'다.

동유럽 조지아의 한 외딴 산골 마을에 사는 에돌피우스는 도로라고는 울퉁불퉁 자갈길 하나뿐인 마을에 아스팔트길을 깔자고 주장한다.

오로지 도시만 꿈꾸며 지긋지긋한 오지마을에서의 탈출만을 바라는 쌍둥이 딸들을 구원할 길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해서다.

오랜 염원 끝에 아스팔트 길이 깔리자 첫째 딸은 그 길로 도시를 들락거리며 향락에 빠져들고, 그 아스팔트 위에서 애인의 차가 전복되면서 허무하게 죽어버린다.

둘째 딸은 언니를 잃은 슬픔에 극단적 선택을 감행하는데, 에돌피우스가 홧김에 저지른 일로 인해 둘째 딸의 목숨을 살릴 방법은 물거품이 돼버린다.

작가는 개발과 보존, 폐쇄와 개방, 전통과 혁신 등 문학의 해묵은 주제를 아이러니 가득한 우화적 방식으로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게 그려냈다.

수록작들에는 남성 우월주의라는 도그마에 매몰된 지뢰제거반 병사, 불평등과 학대에 복수하는 여성들, 집약적 축산업의 비윤리성을 뒤늦게 깨달은 업자, 난파선의 약탈자들, 세상 끝의 등대지기 등 다채로운 설정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배경도 조지아, 네팔, 이란, 인도, 아프가니스탄, 스코틀랜드, 시베리아, 프랑스 등 전 세계를 망라한다.

풍찬노숙으로 벼린 문명과 자연에 관한 통찰…'노숙인생'
작가는 생태, 동물복지, 페미니즘, 도그마에 빠진 종교 등 현대인이 직면한 다양한 윤리적 딜레마들을 기발한 발상의 흥미로운 이야기로 들려준다.

그 이야기들에는 비극적 운명 앞에 몰락하는 인물들, 강렬한 아이러니, 운명과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려는 인간과 이를 벌하는 대자연이 있다.

고대 그리스 비극들이나 알베르 카뮈의 '오해'·'정의의 사람들' 같은 실존 윤리를 다룬 작품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40년간 숲에서 숨어 살던 살인자가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게 된다는 수록작 '호수'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숲에는 정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정의인 경우는 드물다.

"(123쪽)
인간의 정의 위에는 가공할 대자연의 정의가 있다는 진리를 어리석은 인간들은 언제나 깨닫게 될까.

작가가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벼린 예리한 시선과 진중한 사유에 기발한 이야기를 더한 이 소설집은 한번 잡으면 손에서 놓기 힘든 힘이 있다.

간결하게 핵심으로 직진하는 것 같은 단단한 문장도 매력적이다.

작가는 이 단편집으로 2009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의 단편 부문을 수상했다.

뮤진트리. 백선희 옮김. 264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