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자·자연학자·역학자 등 입체적으로 조명한 신간 '허준 평전'
동의보감 펴낸 조선 최고 '명의'의 참모습…우리가 몰랐던 허준
우리 역사에서 최고의 명의를 꼽으라 한다면 많은 이들이 구암(龜巖) 허준(1539∼1615)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가 조선과 중국에 유통되던 의학책과 임상의학적 체험을 통한 치료법을 엮어 편찬한 '동의보감'(東醫寶鑑)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에서도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허준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20여 년 전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역사학자 김호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교수가 쓴 '허준 평전'(민음사)은 이런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저자는 그 동안 소설과 드라마 속에 묘사된 허준은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는 점이 많다고 짚는다.

동의보감 펴낸 조선 최고 '명의'의 참모습…우리가 몰랐던 허준
예를 들어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에서는 허준이 경남 산청 출신이고, 유이태(극중 이름은 '유의태')를 스승으로 삼았다고 하나,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허준의 출생 연도 역시 '양천허씨세보'(陽川許氏世譜) 등을 근거로 1547년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당대 기록을 살펴보면 1539년이 더 정확해 보인다고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허준은 무과 출신으로 지방관을 두루 거친 아버지 허론과 영광 김씨 무인 가문의 서녀(庶女·첩이 낳은 딸)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허준은 어려서부터 경학(經學·사서오경을 연구하는 학문)과 역사를 공부했지만, 서자라는 신분의 한계로 의학을 택했고 실력 좋은 의사로 이름을 알렸다.

동의보감 펴낸 조선 최고 '명의'의 참모습…우리가 몰랐던 허준
그는 30세에 궁중에서 의약을 맡아보던 관아인 내의원에 들어간 뒤, 의학의 스승인 양예수(?∼1597)를 만났다.

76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내의원 어의로 종사했다.

저자는 의학자, 자연학자, 역학자로서 허준의 면모를 부각한다.

조선의 의학 지식이 후대에 알려지기까지 허준의 공이 크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저자 역시 "조선 의학의 오랜 전통 지식을 수집·분류하고 계승"했고 "수많은 조선의 동물과 식물 이름을 한글로 부기해 민간에서 활용하기 쉽도록 정비했다"고 짚는다.

그러면서 허준을 단순한 의원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유교 교리에도 통달한 '유의'(儒醫)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저자는 허준의 학문을 '이용후생'(利用厚生) 네 글자로 정의하기도 한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넉넉하게 해 생활이 나아지게 한다는 뜻처럼 허준에게 의학은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기본적인 지식이자 실천이라는 의미에서다.

280쪽.
동의보감 펴낸 조선 최고 '명의'의 참모습…우리가 몰랐던 허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