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무대와 흉측한 종지기로 추락을 완성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대성당의 시대가 무너지네,
이 세상의 끝은 이미 예정되어 있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첫 장면. 작품의 화자인 시인 그랭구와르가 '대성당의 시대'가 무너졌음을 선포하며 작품은 막이 오른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각색한 이 작품은 '대성당 시대'로 상징되는 중세 시대가 끝나고 르네상스 정신이 퍼지기 시작한 15세기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두고 파리의 근위대장 페뷔스, 노트르담 성당의 대주교 프롤로, 그리고 꼽추 종지기 콰지모도가 갈등하고 파멸에 이르는 비극을 노래한다.

1998년 초연 이후 23개국에서 1500만명의 관객을 모은 프랑스 뮤지컬 대표작이다. 한국에서도 2007년부터 누적 관객 110만명을 동원할 정도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노트르담 드 파리' 한국어 버전은 지난달부터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라 6번째 시즌을 맞았다.

'노트르담 드 파리'를 상징하는 웅장한 무대 디자인이 이번 공연에서도 관객을 휘어잡는다. 우두커니 서서 무대를 압도하는 성벽, 허공에서 격동하는 노트르담 성당의 종, 주인공들을 내려다보는 기괴한 가고일 석상 등 화려한 장치가 쉬지 않고 무대를 채운다.
화려한 무대와 흉측한 종지기로 추락을 완성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이 장치들은 단순히 배경에 머물지 않고 안무를 통해 배우들과 어우러진다. 공중에 매달려 온몸으로 종을 흔들고, 철근을 타고 허공을 가르는 안무가들의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이 장관을 이룬다.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사랑과 고뇌도 격정적인 비보잉과 안무로 표현돼 생동감을 더한다.

화려한 무대와 함께 '노트르담 드 파리'의 기둥을 이루는 음악이 한국 캐스트의 목소리에 담겨 색다른 울림이 있다. 콰지모도를 연기한 윤형렬의 끓어오르는 목소리가 흉측한 종지기의 절규에 애처로움을 더한다. 최민철의 무대를 울리는 저음이 권위적이면서도 나약한 대주교 '폴롤로'의 모순과 타락을 섬세하고 인간적으로 그려 매력적이다.
화려한 무대와 흉측한 종지기로 추락을 완성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배우들의 목소리를 받쳐주지 못하는 음향이 아쉽다. 목소리가 반주에 묻혀 대사가 정확히 들리지 않는 장면이 있다. 모든 대사가 노래로 이어지는 ‘싱스루’ 뮤지컬인데다 프랑스어 이름이 여럿 등장해 등장인물들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

일부 극적인 연출에서도 심심함이 느껴진다. 에스메랄다를 고문하고 가두는 장면, 등장인물들이 죽음을 맞는 장면처럼 극적인 순간이 절도 없이 밋밋하게 그려진다.

화려한 무대와 격정적인 안무 덕분에 눈이 즐거운 작품이다. 배우들의 가창력과 아름다운 음악도 매력적이다. 기술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이 작품의 장점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겠다.

공연은 3월2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