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있는 스코넥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이주현 기자가 가상현실(VR) 기반 온라인 게임인 ‘스트라이크 러시’를 즐기고 있다. /스코넥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 강남구에 있는 스코넥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이주현 기자가 가상현실(VR) 기반 온라인 게임인 ‘스트라이크 러시’를 즐기고 있다. /스코넥엔터테인먼트 제공
“게임 스타트.”

메타가 개발한 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 기기(HMD)인 ‘메타 퀘스트3’에서 경기 개시를 알리는 음성이 나오자 아군 2명이 일제히 총을 들었다. 기자도 차량 변속기 모양을 한 컨트롤러를 조작해 돌격소총을 잡았다. 양손의 컨트롤러를 움켜잡고 견착 사격 자세를 취하자 게임 속 캐릭터도 같은 동작을 취했다. 병역 경험을 살려 실제 총기를 다루듯 적들을 조준해보지만 쓰러지는 건 이쪽이다. 오는 4월 출시를 앞둔 가상현실(VR) 게임 ‘스트라이크 러시’에서 체험할 수 있는 순간들이다.

VR 게임 시대가 꽃 필 것이란 게임업계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VR용 HMD인 ‘애플 비전프로’가 다음달 출시를 앞두고 있어서다. 수백만원짜리 유흥거리 정도로 여겨졌던 VR 게임이 이 HMD 기기 보급을 계기로 대중화할 수 있을 것이란 업계 전망이 나온다.

○가상공간에서 온라인 게임 즐긴다

"수백만원짜리 유흥거리라고?…VR게임이 미래다"
국내 게임 개발사 스코넥엔터테인먼트는 VR 게임인 스트라이크 러시를 4월 18일 출시한다. 이 게임은 스코넥이 메타와 함께 개발한 1인칭 총쏘기 게임이다. 메타의 HMD를 착용하고 고개를 움직이면 게임 캐릭터의 시점도 따라 움직이는 방식이다. 캐릭터 이동은 컨트롤러로 한다. 스코넥은 지난 5, 6일 미국과 영국 등 영어권 게이머들을 대상으로 이 게임의 시험 평가를 마쳤다.

스코넥이 주목하는 건 온라인 게임으로서 VR 게임의 성공 가능성이다. 기존 VR 게임은 혼자 즐기는 경우가 많다 보니 수백만원을 들여 HMD를 구매할 정도로 정보기술(IT) 장비 구매에 민감한 ‘얼리 어답터’가 매력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 스코넥은 4 대 4 온라인 대전 환경을 구현해 온라인 총쏘기 게임을 가상공간에서 즐기는 분위기가 나도록 했다. 서로 다른 공간에 있더라도 게이머들은 HMD를 통해 한 공간에서 팀을 짜거나 서로 싸울 수 있다.

게이머가 가상공간에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반려로봇도 스트라이크 러시만의 특징이다. 이 로봇은 적을 공격하거나 아군을 치료하면서 게이머를 돕는다. 스코넥 관계자는 “반려로봇을 쓰다듬거나 함께 미니 게임을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며 “게이머가 앉거나 걷는 움직임도 캐릭터 동작에 반영해 몰입감을 최대한 살리려 했다”고 말했다. 향후 애플의 VR 플랫폼에서도 게임 제공이 가능할 것이란 게 이 게임사의 설명이다.

VR 게임 시장에 도전장을 낸 게임사는 스코넥뿐만이 아니다. 스마일게이트도 지난해 8월 1인칭 총쏘기 게임인 ‘크로스파이어: 시에라 스쿼드’를 출시했다. 소니의 VR 장비인 ‘플레이스테이션 VR2’를 활용한다. 데브시스터즈도 쿠키런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지난달 VR 게임인 ‘쿠키런: 더 다키스트 나이트’를 선보였다. 스토익엔터테인먼트는 올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메타 퀘스트3 용 VR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게임업계에선 올해가 VR 게임 시장이 안착하는 원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음달 2일 출시 예정인 애플의 비전프로가 보급되면 VR 게임이 대중화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돼서다. 애플은 지난 19일 사전 판매를 개시해 사흘 만에 약 18만 대를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가 예상한 같은 기간 판매 전망치인 8만 대를 웃돌았다. 1TB(테라바이트) 제품 기준 3899달러(522만원)에 달하는 가격을 고려하면 고무적인 성과다. 소니는 지난해 2월 플레이스테이션 VR2를, 메타는 6월 메타 퀘스트3를 출시했다.

○장비 경량화, 피로도 해결이 관건

VR 게임에 장밋빛 전망을 하기엔 섣부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게임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허들이 높아서다. 2020년 메타가 ‘메타 퀘스트2’를 출시했을 당시에도 앞으로 VR 게임 시장이 떠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이 게임을 즐긴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HMD 장비 자체가 대중화되지 못한 탓이 컸다. 경제 매체인 CNBC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 VR 헤드셋과 안경 판매량은 전년 대비 약 40% 줄었다. 이들 장비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나 업무 활용도가 제한적인 상황이었던 만큼 기기를 구매할 유인이 떨어진 탓이다.

VR 기기의 피로도 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우선 장비 무게가 머리와 목에 주는 부담이 상당하다. 메타 퀘스트3의 무게는 약 520g으로 모자를 쓰듯 가볍게 여길 수준이 아니다. 360도 영상 체험 과정에서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기자도 스트라이크 러시를 1시간 이상 지속해 즐기기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스코넥은 스트라이크 러시에서 한 경기를 즐기는 시간을 15분 이내가 되도록 설계했다. 멀미를 느끼지 않더라도 배터리가 문제다. 메타 퀘스트3와 비전프로의 배터리 사용 시간은 2시간에 불과하다.

게임 개발사들도 당장의 흥행에 사활을 걸지는 않는 분위기다. 기술적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될 미래를 대비해 VR 게임에 투자하는 성격이 짙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비전프로의 흥행 여부에 따라 VR 게임 시장의 성장 속도가 결정된다”며 “비전프로 기반 VR 게임에서 성공 사례가 나오면 중세나 미래 등 다양한 가상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게임이 속속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