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범과 동성애자의 짓밟힌 사랑…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정치범과 동성애자. 두 명의 죄수가 차가운 감방에서 꽃피운 사랑이 짓밟힌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비극이다.

이 둘은 정반대의 사람이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내면은 여자인 ‘몰리나’는 정치나 사상에 관심이 없다. 반정부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수감된 ‘발렌틴’은 그런 몰리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한다. 그럼에도 그는 감옥 생활의 고통을 잊기 위해 몰리나의 영화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 둘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점차 가까워지고, 사랑에 빠진다.

발렌틴은 가석방으로 풀려나게 된 몰리나에게 키스하며 반정부 조직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몰리나는 경찰에 발각돼 죽는다. 발렌틴은 고문당하던 중 ‘거미여인’의 모습을 한 몰리나를 만나는 환각에 빠지면서 막이 내린다.

입체적인 인물 묘사가 매력적이다. 이성적이고 열정적인 발렌틴이 음식 앞에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부탁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모순과 나약함이 가감없이 드러난다. 반대로 여성스럽고 섬세한 몰리나가 정보를 캐내라는 교도소장의 압박에도 태연하게 발렌틴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는 강인함을 보여준다.

발렌틴은 그런 몰리나를 ‘거미여인’이라고 부른다. 거미여인은 그물을 치고 사람이 다가오길 기다린다. 동성애자라는 운명에 고통스러워하며 움츠러들지만 포기하지 않는 몰리나를 떠오르게 한다.

이 작품은 탄압과 차별받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주인공들을 단순한 상징물로 사용하지 않고 그들의 고뇌와 나약함을 복합적으로 담은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배우들의 뛰어난 감정묘사가 작품의 메시지를 받쳐준다. 분노, 사랑, 불안, 절망 등 넓은 여러 감정이 빠르게 뒤바뀌지만 억지스럽지 않다. 커튼콜을 하면서도 코를 훌쩍이고 눈물을 닦는 배우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서는 아쉬운 대목이 보인다. 극 초반의 긴 대사가 연달아 이어지면서 몰입도가 떨어진다. 몰리나의 가석방 이후 장면을 내레이션으로 처리하면서 비극적인 결말의 효과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여운이 강하게 남아 작품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무대부터 결말까지 차갑고 비극적이지만 그 속에서 따뜻한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 공연은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3월31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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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1976년 소설 '거미여인의 키스'를 쓴 소설가 마누엘 포익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