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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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현대 서울의 지하 2층 팝업 매장은 일 년치 계획이 빼곡하게 잡혀있다. 1~2주 동안 반짝 물건을 파는 이 매장에 들어오려고 패션 브랜드, 굿즈 판매업체 등이 줄을 섰다. 홍보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더현대 서울 팝업에 상품을 선보이면 ‘구름 인파’가 모이곤 한다. 일본 만화 슬램덩크, 아이돌 그룹 제로베이스원 등이 그랬다. 사람이 너무 몰려 안전사고를 우려해야 할 정도였다.

더현대 서울은 팝업 매장을 빌려주고 매출의 일부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이들 팝업 매장 매출은 1~2주 간 5억원은 쉽게 넘기고, 많을 땐 10억원까지 한다. 월간으로 하면 최대 20억~30억원에 달한다. 백화점의 패션 매장의 월 매출이 평균 2억~3억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열 배나 된다.

백화점 팝업 매장은 원래 매출을 포기한 공간이다. 백화점 입점을 꺼리는 명품 브랜드, 갑자기 확 뜬 중소 패션 브랜드, 수영복이나 스키복 같은 시즌 상품 등 상시적으로 백화점에 상품을 넣는 게 힘든 업체들이 활용할 목적으로 썼기 때문이다. 팝업 매장에 들어올 브랜드가 없어 억지로 채워 넣는 경우도 흔했다.

더현대 서울도 애초에 팝업 매장에 엄청난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시기였던 2021년 문을 열어 흥행은 커녕, 백화점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팝업 매장을 크게 한 것도 ‘궁여지책’이었다. 코로나 상황이었고, 서울 여의도가 '쇼핑몰의 무덤'이란 인식이 있어서 패션 브랜드들이 잘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자 이 공간이 대박을 쳤다. 기존 백화점에 있는 흔한 브랜드가 아니라, MZ 세대가 열광하는 브랜드와 상품들로 채워진 영향이 컸다. MZ 세대는 서울 성수동, 연남동 처럼 ‘힙한’ 공간에 몰려드는 특징이 있다. 이들이 몰려들면, 브랜드가 몰려들고, 그럼 더 많은 사람이 몰리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팝업 매장이 성황을 이루자 더현대 서울은 일부 공간을 포기하면서까지 팝업 매장을 늘리고 있다. 5층에 기존 팝업 매장보다 더 큰 규모로 새 팝업 매장을 준비 중이다. 또 현대백화점 판교점 등 다른 백화점으로 옮겨 대규모 팝업 행사도 기획 중이다.

롯데 신세계 등 다른 백화점들도 더현대 서울과 같은 팝업 매장을 갖고 싶어한다. 롯데는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지하 팝업 매장의 운영권을 최근 롯데물산에서 백화점으로 넘기고 대규모 행사를 잇달아 했다. 지난 15일부터 일본 지브리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마녀배달부 키키’ 매장(사진)을 열었다. 마니아 층이 많아 첫날부터 오픈런을 할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다만, 한계도 명확하다. 팝업 매장은 수수료를 높게 받을 수 없다. 20%가 넘는 기존 매장과 달리, 그 절반인 10% 수준이다. 매출이 많아도 '빛 좋은 개살구'인 셈이다. 모든 백화점에 다 적용할 수 없다는 것도 고민이다. 줄 서는 팝업 매장은 더현대 서울과 현대백화점 판교점, 신세계 강남점, 롯데월드타워 정도다. 팝업 입점을 희망하는 브랜드도 이들 백화점에만 가려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팝업 매장의 재발견은 오프라인 매장의 종말 시대에 백화점에 희망을 안겨줬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 의존하지 않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매출을 올릴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람들은 오프라인 매장이 비싸서, 불편해서 안 가는 것이 아니었다. 오프라인 매장이 재미 없어서, 힙하지 않아서 안 갔던 것이었다. 그 재미와 힙함을 소비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오프라인 매장의 새 미션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