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예술가와 남겨진 이야기
죽음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 단 하나, 남겨진 이야기를 빼고. 그래서 누군가의 삶을 쓰고, 말하고, 기록하는 일은 어쩌면 한나절의 장례식이나 거창한 비석을 세우는 일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일지 모른다.

올해도 수많은 별이 졌다. 사랑하는 이와의 영원한 이별은 삶에서 가장 큰 고통임이 틀림없지만, 예술가들의 그것은 때로 새로운 차원의 ‘생(生)’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들이 남긴 음악과 영화, 글과 그림과 사진, 그리고 전하고자 했던 새로운 생각들은 시간과 세대를 거슬러 작품으로서 영원히 살아가기 때문이다.

2023년 우리가 떠나보낸 위대한 예술가들과 그들이 남긴 말을 다시 읽는다. 그들은 희망을 이야기했다. “밤이 깊어지면 아침이 빨리 온다”던 음악가 조지 윈스턴, “나는 다시 살 수 없지만, 우리는 다시 살 수 있다”고 한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 “지금 두려운가. 다시 기쁨에 모험을 걸자”던 시인 루이스 글릭.

인간이기에 가졌던 유한함, 그리고 이를 극복해낸 성찰도 담겨 있다. “무언가 세상에 내놓으려면 수십 번은 편집을 거쳐야 한다”던 세계적 설치미술가 로버트 어윈, “인생은 충분히 오래 산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준다”던 전설의 재즈 보컬 토니 베넷. 그리고 이 시대에 많은 영감을 남기고 간 사카모토 류이치의 말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까지.

1년 동안 우리가 떠나보낸 예술가 20명의 이야기는 아르떼 홈페이지에서도 영상과 함께 다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 다 담지 못한, 하늘의 별이 된 수많은 스타들에게 전한다. R.I.P(Rest In Peace).

별이 된 단색화 거장…"안부 전화 마라, 선을 더 그어야 한다"

■ 다시 쓰는 부고

일본 사회가 외면해온 '히로시마 이야기'…노벨문학상 겐자부로 수면위로 끄집어내
외부노출 꺼린 신비주의 작가 밀란 쿤데라…자신 소설처럼 평생 '진지함 속 유머' 쫓아


박서보 (1931.11.15~2023.10.14)

한국의 단색화를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추상의 거장. 박서보(본명 박재홍)는 1960년대부터 연필로 도를 닦듯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묘법’ 시리즈를 제작하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개척했다.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그는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1950년대 후반 ‘앵포르멜’이란 현대미술 운동을 촉발해 한국 현대미술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한국 화단의 주요 작가였으면서도 오랫동안 상업적인 성공과 거리가 멀었다.

201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병행전시로 열린 ‘단색화’전이 주목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빛을 봤고,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최고의 인기 작가가 됐다. 지난 2월 박 화백은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사실을 처음 알리며 이렇게 말했다. “다시 한번 부탁하건대 안부 전화하지 마라. 나는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
떠난 예술가와 남겨진 이야기
오에 겐자부로 (1935. 1.31~ 2023.3.3)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1963년 여름, 월간지 세카이의 의뢰로 ‘제9회 원수폭금지 세계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처음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장애를 안고 갓 태어난 첫아들이 빈사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는 개인적인 고통 속에서 떠난 여행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피폭자들을 만났다. 도쿄대를 졸업하고 불과 22세의 나이에 유명 작가가 된 그에게 히로시마 방문은 전환점이 됐다.

1994년 스웨덴 한림원은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며 “과거와 현재의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작가”라고 했다. 우리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그의 당부는 마지막 소설 <만년양식집>에서 이렇게 드러난다. “나는 다시 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살 수 있다.”

밀란 쿤데라 (1927.4.1~2023.7.11)

지난 7월 타계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그의 묘비명 같은 소설이다. 쿤데라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묘비명은 존재와 망각의 환승역”이라고 말한다.

쿤데라는 소련의 간섭에 시달리던 체코에서 1929년 태어났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주도했지만, 그 봄을 짓밟은 소련군에 의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농담> 등 그의 대표작들은 1989년 체코에서 공산주의가 완전히 무너지고 나서야 해금됐다. 향년 94세에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 사생활을 극비에 부친 만큼 아직 쿤데라의 묘비명은 알려진 바가 없다.

페르난도 보테로 (1932.4.19~ 2023.9.15)

9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남미의 국민화가 페르난도 보테로. 그는 1932년 콜롬비아 메데인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 때 삼촌의 권유로 투우사 양성학교에 입학해 틈틈이 그림을 익혀 1948년 일러스트레이터로 그림 인생을 시작했다.

스무 살 유럽으로 건너간 뒤에는 벨라스케스, 고야 등 거장들의 작품을 보고 모사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12세의 모나리자’ 등이 대표적이다. 보테로는 사망 한두 해 전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3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조지 윈스턴 (1949.2.11~2023.6.4)

1980~1990년대 뉴에이지 음악의 새 지평을 연 음악가. 조지 윈스턴은 그러나 “나를 뉴에이지 범주에 넣지 말라”며 ‘전원 포크(rural folk) 피아니스트’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의 음악은 자연을 닮아 있었다. 1949년 미국 미시간주에서 태어나 몬태나, 미시시피를 거쳐 플로리다에 살았던 그는 대학 자퇴 후 거의 독학으로 피아노를 마스터했고, 기타와 하모니카 등 많은 악기를 두루 다뤘다.

윈스턴은 혈액암 판정을 받고 10년간 투병해왔다. 자연을 사랑했던 피아니스트는 영원한 자연으로 돌아가기 전 음악 인생 5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발매한 음반의 제목을 ‘밤(Night)’이라고 했다. “어둠이 깊어질 때마다 아침은 더 빨리 다가왔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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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상 떠난 또다른 별들
떠난 예술가와 남겨진 이야기

세계를 울린 영화음악 대가…"예술은 길고 인생은 덧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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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버킨백의 그녀 제인 버킨…"편안한 삶 지루" 마지막까지 생기발랄


사카모토 류이치 (1952.1.17~2.23.2.28)

사카모토 류이치는 하나의 수식어로 떠나보내기에 한없이 부족한 예술가다. 영화음악의 대가이자 전위음악가, 미디어아트 작가, 사회운동가 등 여러 자취를 남긴 시대의 거장이다.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세 살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유치원생 때 토끼를 소재로 작곡할 만큼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드뷔시의 화성적 혁신성에 매료돼 스스로를 드뷔시의 환생이라고 오랫동안 믿기도 했다고. 사카모토는 2014년 비인두암 판정을 받은 뒤 복귀했지만 2020년 6월 직장암 판정을 받았다. YMO의 멤버 중 드러머이자 보컬리스트인 다카하시 유키히로 역시 사카모토가 떠나기 두 달여 전인 올해 1월 11일 눈을 감았다.
떠난 예술가와 남겨진 이야기
아마드 자말 (1930.7.2~2.23.4.16)

아마드 자말은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한 재즈 피아니스트다. 1958년 발매된 ‘퍼싱에서의 아마드 자말’ 앨범은 그해 4만7000장이 팔렸다. 재즈 앨범이 통상 1만5000장 안팎만 팔려도 ‘대박’이라고 할 때였다. 2020년 2월, 자말은 자신의 90세 생일을 앞두고 뉴욕 링컨센터 콘서트홀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최고령 재즈 피아니스트의 공개 연주 중 하나로 기록된다.

젊은 시절 그의 경이로운 연주와 즉흥성, 영롱한 피아노 연주 실력은 60대에 들어서 더 활짝 꽃피웠다. 60대에 프랑스로 건너가 연주하던 시기 모두를 놀라게 했다.

김남윤 (1949.9.20~2023.3.12)

양인모, 임지영, 클라라 주미 강….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누구도 경계하지 않던 한국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세계 무대를 제패한 데엔 ‘한국 바이올린 대모’ 김남윤의 공이 컸다. 그의 손을 거치지 않고 성공한 바이올리니스트는 국내에서 찾기 어려울 정도다. 서울예고와 미국 줄리아드를 졸업한 그는 1974년 세계적인 권위의 스위스 티보바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창설 멤버로 합류했고, 이후 40여년간 후학 양성에 힘썼다. 2001년 한국인 연주자로는 최초로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초빙됐다.

어윈 올라프 (1959.7.2~2023.9.20)

어윈 올라프는 20세기 최고의 사진가 중 한 명이자 네덜란드의 국민예술가다. 극사실주의 회화와 같은 연출과 색감으로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허물었다.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취재 기자로 활동하다 사진 작가로 전업한 그는 1988년 ‘체스맨 시리즈’로 ‘유럽 젊은 사진작가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예술가 반열에 올랐다. 올라프의 시선은 전 세계 낮은 곳과 높은 곳을 모두 향했다. 올라프는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포함해 사회의 소외된 개인을 중심으로 다양한 작업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격리와 단절이 계속되는 시간을 묘사한 올라프의 ‘만우절(April fool)’ 연작 등은 만년의 걸작으로 남았다. 선천성 폐 질환이 있던 올라프는 폐 이식 수술을 받은 지 1주일 만에 눈을 감았다.

제인 버킨 (1946.12.14~2023.7.16)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버킨백'으로 잘 알려진 그 이름. 1970년대 반전 시위와 히피즘의 상징으로, 말년엔 동물보호 등 사회 운동가로 활약했다. 2021년 14번째 앨범을 냈고 2018년에는 월드투어를 하는 등 최근까지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프렌치 시크의 아이콘으로, 패션계의 뮤즈로, 세르주 갱스브루와 펼쳐낸 세기의 로맨스로 지난 세기의 '영원한 뮤즈'로 남았다.

버킨은 1965년 배우로 데뷔해 모델로도 활동하다 프랑스로 건너갔다. 버킨은 가녀린 음색과 떨리는 음정, 허스키한 가성으로 프랑스 여가수를 상징하는 목소리로 기억된다. 평소의 성격처럼 그의 노래 역시 어떤 가식과 꾸밈도 없이 솔직하고 겸손한 매력으로 가득했다.

노벨문학상 루이즈 글릭, 설치미술 대가 로버트 어윈…천국의 예술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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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