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레전드' 서향순·김진호 "5년 뒤 LA 올림픽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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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향순, 한국양궁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김진호, '원조 신궁'
"최강과 2위는 백지 차이…한국 양궁 성공 뒤에는 현대차 든든한 지원" "최강과 2위는 백지 차이입니다.
그런데도 한국 양궁이 꼭 해내는 건, 든든한 지원 덕분이죠."
1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 호텔에서 열린 '한국 양궁 60주년' 기념 행사장. "언니 왔어?" 외치는 소리와 함께 두 중년 여성이 반갑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세계 최강' 한국 양궁의 '시작점'을 찍은 서향순(56)과 김진호(62) 한국체대 교수였다.
서향순은 한국 양궁의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따냈다.
선배인 김진호는 '원조 신궁'이다.
한국이 처음 출전한 197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전, 단체전에 거리별 종목까지 5관왕에 등극하며 한국 양궁의 부상을 세계에 알린 주인공이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듯 한동안 그저 웃으며 상대 얼굴만 바라보던 이들은 한켠에 마련된 전시물을 보며 옛 기억에 빠져들었다.
특히 서향순이 LA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쏜 활을 앞에 두고 긴 시간을 보냈다.
"난 그때 아기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언니 눈치를 약간 봤어요.
그런데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향순아 고맙다.
네가 금메달을 따줘서 내가 그나마 욕을 덜 먹는다'라고요.
그리고 한국 와서 같은 방 쓰면서 정말 많이 친해졌죠. 선수로써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언니가 다 가르쳐 줬어요.
" (서향순) LA 올림픽을 앞두고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힌 건 사실 김진호 교수였다.
그러나 컨디션 난조에 흔들리면서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3위 시상대에 섰을 때) 속상했지만, 그 이후로 되게 성숙해진 것 같아요.
못한 사람들의 그런 마음을 알게 됐으니까요.
제 인생에서 아주 값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김진호 교수)
둘은 LA 올림픽을 앞두고 생전 처음 먹어보는 선수촌의 맛난 간식을 먹느라 몸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비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 대표팀은 대회 시작 보름 전 먼저 미국에 도착해 훈련했는데, 떠먹는 요구르트, 키위 등을 처음 접하고는 한동안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우리가 하도 먹어서 감독님이 못 먹게 하려고 늘 아이스박스 위에 앉아있었어요.
언니 기억 나요? 우리 너무 많이 먹었던 거! (요구르트 먹고는) 언니한테 '이거 쉰 거 아냐?' 했던 기억이 나요.
" (서향순)
"내가 그래서 올림픽 때 못했잖아. (웃음) 난 그때 요플레 처음 먹어봤어요.
그때 그 맛을 느끼고, 이후로 계속 좋아해요.
"
서향순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유도 금메달리스트 박경호와 결혼하며 일찍 은퇴했다.
이후 미국으로 이민 가 LA에서 거주하며 양궁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김진호 교수는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하고서 은퇴했다.
그는 한국 양궁계를 떠나지 않았다.
1995년부터 한국체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들이 시작한 한국 양궁의 금빛 역사는 4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은 2020 도쿄 올림픽까지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27개, 은메달 9개, 동메달 7개 등 총 43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한국 스포츠의 모든 종목을 통틀어 최다 금메달이자 최다 메달이다.
특히 여자 단체전에서는 이 종목이 처음 도입된 1988년 서울 대회부터 도쿄 대회까지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금메달을 수확하며 9연패를 이뤄냈다.
한국 양궁이 오래 승승장구해온 이유를 묻자 두 '레전드'는 대한양궁협회의 노력, 그리고 현대차의 든든한 지원을 꼽았다.
"(금메달을 절대 놓쳐선 안 된다는 분위기에) 지도자나 선수들 모두 어깨가 무거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궁협회에서 늘 시합을 앞두고는 정말 만반의 준비를 하는데, 그래서 우리가 우승하는 것 같아요.
" (김진호 교수)
"최강과 2위는 백지 차이인데, 또 막판에는 꼭 한국이 해내더라고요.
이렇게 계속 금메달이 나오는 건 (현대차의) 든든한 지원 덕분이죠. 선수가 늘 믿음을 가지고 활을 쏠 수 있게, 뒤에서 튼튼하게 밀어주는 데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밖에 없거든요.
" (서향순)
서향순과 김진호 교수는 거의 매주 통화해 수다를 떨지만, '사람 사는 얘기'만 할 뿐, 양궁 얘기를 나눈 건 오랜만이라고 했다.
5년 뒤 열리는 올림픽이 마침 LA에서 치러진다.
둘은 나란히 관중석에 앉아 후배들을 응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서향순이 "(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야죠"라고 말하자 김진호가 "꼭 가야겠다"고 화답했다.
/연합뉴스
"최강과 2위는 백지 차이…한국 양궁 성공 뒤에는 현대차 든든한 지원" "최강과 2위는 백지 차이입니다.
그런데도 한국 양궁이 꼭 해내는 건, 든든한 지원 덕분이죠."
1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 호텔에서 열린 '한국 양궁 60주년' 기념 행사장. "언니 왔어?" 외치는 소리와 함께 두 중년 여성이 반갑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세계 최강' 한국 양궁의 '시작점'을 찍은 서향순(56)과 김진호(62) 한국체대 교수였다.
서향순은 한국 양궁의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따냈다.
선배인 김진호는 '원조 신궁'이다.
한국이 처음 출전한 197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전, 단체전에 거리별 종목까지 5관왕에 등극하며 한국 양궁의 부상을 세계에 알린 주인공이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듯 한동안 그저 웃으며 상대 얼굴만 바라보던 이들은 한켠에 마련된 전시물을 보며 옛 기억에 빠져들었다.
특히 서향순이 LA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쏜 활을 앞에 두고 긴 시간을 보냈다.
"난 그때 아기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언니 눈치를 약간 봤어요.
그런데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향순아 고맙다.
네가 금메달을 따줘서 내가 그나마 욕을 덜 먹는다'라고요.
그리고 한국 와서 같은 방 쓰면서 정말 많이 친해졌죠. 선수로써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언니가 다 가르쳐 줬어요.
" (서향순) LA 올림픽을 앞두고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힌 건 사실 김진호 교수였다.
그러나 컨디션 난조에 흔들리면서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3위 시상대에 섰을 때) 속상했지만, 그 이후로 되게 성숙해진 것 같아요.
못한 사람들의 그런 마음을 알게 됐으니까요.
제 인생에서 아주 값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김진호 교수)
둘은 LA 올림픽을 앞두고 생전 처음 먹어보는 선수촌의 맛난 간식을 먹느라 몸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비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 대표팀은 대회 시작 보름 전 먼저 미국에 도착해 훈련했는데, 떠먹는 요구르트, 키위 등을 처음 접하고는 한동안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우리가 하도 먹어서 감독님이 못 먹게 하려고 늘 아이스박스 위에 앉아있었어요.
언니 기억 나요? 우리 너무 많이 먹었던 거! (요구르트 먹고는) 언니한테 '이거 쉰 거 아냐?' 했던 기억이 나요.
" (서향순)
"내가 그래서 올림픽 때 못했잖아. (웃음) 난 그때 요플레 처음 먹어봤어요.
그때 그 맛을 느끼고, 이후로 계속 좋아해요.
"
서향순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유도 금메달리스트 박경호와 결혼하며 일찍 은퇴했다.
이후 미국으로 이민 가 LA에서 거주하며 양궁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김진호 교수는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하고서 은퇴했다.
그는 한국 양궁계를 떠나지 않았다.
1995년부터 한국체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들이 시작한 한국 양궁의 금빛 역사는 4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은 2020 도쿄 올림픽까지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27개, 은메달 9개, 동메달 7개 등 총 43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한국 스포츠의 모든 종목을 통틀어 최다 금메달이자 최다 메달이다.
특히 여자 단체전에서는 이 종목이 처음 도입된 1988년 서울 대회부터 도쿄 대회까지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금메달을 수확하며 9연패를 이뤄냈다.
한국 양궁이 오래 승승장구해온 이유를 묻자 두 '레전드'는 대한양궁협회의 노력, 그리고 현대차의 든든한 지원을 꼽았다.
"(금메달을 절대 놓쳐선 안 된다는 분위기에) 지도자나 선수들 모두 어깨가 무거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궁협회에서 늘 시합을 앞두고는 정말 만반의 준비를 하는데, 그래서 우리가 우승하는 것 같아요.
" (김진호 교수)
"최강과 2위는 백지 차이인데, 또 막판에는 꼭 한국이 해내더라고요.
이렇게 계속 금메달이 나오는 건 (현대차의) 든든한 지원 덕분이죠. 선수가 늘 믿음을 가지고 활을 쏠 수 있게, 뒤에서 튼튼하게 밀어주는 데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밖에 없거든요.
" (서향순)
서향순과 김진호 교수는 거의 매주 통화해 수다를 떨지만, '사람 사는 얘기'만 할 뿐, 양궁 얘기를 나눈 건 오랜만이라고 했다.
5년 뒤 열리는 올림픽이 마침 LA에서 치러진다.
둘은 나란히 관중석에 앉아 후배들을 응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서향순이 "(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야죠"라고 말하자 김진호가 "꼭 가야겠다"고 화답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