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은 공기처럼 존재한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의 첫 챕터 제목이다.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쓴 이 책은 장애인, 성소수자, 트랜스젠더, 여성 노동자 등의 이야기를 전한다. 인터뷰와 연구를 통해 ‘차별을 공기처럼 매 순간 느끼는’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을 담았다. 김 교수는 전작인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이후 6년 만에 신작을 내놨다.
트랜스젠더 20%는 '부당한 대우' 두려워 병원에 안간다 [책마을]
저자는 일하지 않으면 당장 다음주 생계가 막막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의학 교과서에 적힌 대로 “다친 허리를 치료하려면 며칠은 조심하며 누워 있어야 한다”고 해야 할 때 허망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가난과 가정폭력으로 우울증을 겪는 환자들에게 약을 처방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현대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해 약으로 증상을 치료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돌아가야 하는 곳은 이전과 다름없이 폭력적인 공간이었다. 이 같은 일련의 상황들은 저자가 임상의사가 아니라 보건학자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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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병원에 쉽게 가지 못하는 트랜스젠더에게 주목한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법적 성별과 실제 겉모습에 드러나는 성별 정체성이 다른 트랜스젠더 다섯명 중 한 명은 신분증을 제시할 때 부당한 대우가 두려워 병원 이용을 포기한 적 있다고 답했다.

휠체어를 타는 많은 장애인 역시 운전기사와 승객들의 시선이 불편해 대중교통 이용을 포기한다. 외국에 가면 대중교통이나 거리에서 장애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한국에선 그렇지 않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시위에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갈등으로 발현되고,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불편을 초래하는 대상으로 인식된다. 저자는 이처럼 한국 사회가 종종 암묵적 편견을 넘어 명시적 편견을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책은 한국 사회에서 예민한 주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사회 곳곳에 내재된 수많은 차별을 통해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더 나은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란 불편하지만 당사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문제의 복잡한 맥락을 헤아리는 모든 과정이다.

이금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