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 50권 중 첫 5권 펴내…내년 4월 완간 목표
"민담은 자기 정체성의 핵심"
황석영 "우리 민담의 상상력, 서구를 능가…저도 상상력 깊어져"
"그림 동화나 안데르센 동화보다 우리 민담에 훨씬 더 인상적인 작품들이 많아요.

작업을 하면서도 저 자신도 참 재미가 있었습니다.

"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꼽혀온 작가 황석영(80)은 14일 어린이들을 위한 전래민담 선집 중 맨 처음 다섯 권의 첫선을 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전체 50권 규모인 '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휴먼큐브) 중에 1권 '우리 신화의 시작'을 시작으로 2권 '연오랑과 세오녀', 3권 '해님 달님', 4권 '우렁각시', 5권 '지하 마왕과 한량'이 한꺼번에 출간됐다.

황석영은 이날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출간 간담회에서 "그동안 수집해온 민담 중에서 어린이들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접할 수 있는 부분을 추려냈다"면서 "대단히 특색이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라고 강조했다.

"저는 어릴 적 할머니나 어머니, 늙은 이모들에게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는데, 요즘엔 그런 부분이 많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우리 민담을 읽으며 체질이나 본성 속에 자기네 공동체의 스토리를 간직한 채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이번에 첫 다섯 권이 나온 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은 내년 4월까지 모두 50권이 나올 예정이다.

수록될 민담만 150여 개에 달한다.

어린이를 위한 민담집 편찬은 작가가 수년 전 서재를 오랜만에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 상자 속 노트들이 계기가 됐다.

작가가 언제 했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할 만큼 오래전에 우리나라 고유의 전래 민담의 제목, 내용 등 작가가 자필로 정리한 노트 20여 권이 있었던 것.
"옛날에 제가 석방된 뒤 '손님'이나 '바리데기'니 이런 소설들에 쓰려고 민담을 정리해 놓은 것 같더라고요.

이걸 버릴까 말까 했는데, 제가 평생 어린이들을 위한 책을 써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펴내게 됐습니다.

"
황석영은 어린이들이 우리 민담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앞으로 세계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기 정체성"에 전래 민담이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게 우선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자기 정체성이 있어야 다른 문화를 접할 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자기 것을 사랑했을 때 남의 것도 존중할 수 있지요.

우리 콘텐츠를 갖고 상상력과 창조성이 발현되도록 해야 해요.

지금 한류도 이런 자기 정체성을 바탕으로 했을 때 파급력이 더 커질 겁니다.

"
서구의 전래동화와 우리 민담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뚜렷한 것이 신분의 차이라고 그는 짚었다.

황석영 "우리 민담의 상상력, 서구를 능가…저도 상상력 깊어져"
황석영은 "서구 동화나 민담은 왕후장상, 즉 신분이 높은 왕이나 공주, 영주 등의 이야기들이 많지만, 우리 민담은 그야말로 백성들 얘기"라면서 "학식이 높거나 배운 거 많은 선비가 아니라 보통 백성들이 거의 등장하는데 그래서 이야기가 매우 거침없고 활달하다"고 설명했다.

"우리 민담은 특히 상상력의 비약이 굉장합니다.

지역과 지역을 금방 들락날락하고 까치, 호랑이, 여우 등 산짐승들과도 (인간이) 매우 쉽게 소통하고 그와 관계된 이야기들을 많이 만들어내죠. 우리 콘텐츠와 이야기가 상상력이나 환상이라는 점에서 서구를 훨씬 뛰어넘고, 파격적 상상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출판사 휴먼큐브는 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을 주요 언어로 번역해 해외에도 소개하고, 민담집을 무빙툰(움직이는 웹툰)이나 풀더빙툰(성우의 목소리를 입힌 웹툰) 등으로도 제작하는 등 콘텐츠 다각화에도 나설 계획이다.

이번 어린이 민담집을 편찬하면서 "나 자신도 상상력이 더 깊어졌다"는 황석영은 차기작으로 나무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헤밍웨이가 만년에 '노인과 바다'를 썼는데 저도 그런 작품을 하나 구상하고 있어요.

나무가 화자가 되어 내레이션하는 형식인데, 명상적인 작품입니다.

새만금 끄트머리에 650년 된 팽나무가 하나 있는데, 가끔 거기 가서 두어시간 가만히 앉아 있다 오곤 합니다.

다음 작품을 저도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리고 있지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