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지난 8일 공연에서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을 들려줬다.  최혁 기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지난 8일 공연에서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을 들려줬다. 최혁 기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난 8일 공연은 피아니스트 랑랑과 함께한 전날과 달리 협연자가 없었다. 빈 필 고유의 색깔을 한국 클래식 팬들에게 안겨줄 수 있는 교향곡 두 개로 프로그램을 꾸몄다.

첫 곡은 베토벤 교향곡 4번.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곡이다. 거대한 규모의 교향곡 3번과 5번 사이에서 더욱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그 덕분에 빈 필의 강점이 두드러진 연주가 됐다. 규모와 형식이 아니라 섬세함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 빈 필이 가장 잘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고전시대 예술세계를 담은 음악이 그렇다. 로베르트 슈만이 말한 것처럼 베토벤 교향곡 4번은 아름답게 세공됐다.

1악장 도입부부터 빈 필의 연주는 특별했다. 플루트, 클라리넷, 바순, 그리고 호른이 동시에 만든 음향은 완벽한 균형을 이뤘다. 일류 오케스트라란 걸 체감할 수 있었던 섹션은 역시 목관이었다.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앙상블을 이뤘고, 다른 섹션의 악기들이 몰아치는 순간에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아름답게 풀어냈다. 현악기와 목관악기가 번갈아 가며 대화하는 장면은 각 악기의 음색 대조와 셈여림 대조가 극대화된 순간이었다. 그런 이유로 4악장은 아주 흥미진진했다.

2부는 브람스 교향곡 1번이었다. 1부보다 완성도가 높았다. 베토벤 교향곡 4번이 민첩하고 리듬감이 넘치는 음악이라면 브람스 교향곡 1번은 두터운 질감이 두드러진 음악이다. 음영 대비가 자아내는 감동은 대단했다. 그만큼 연주가 투명했다. 브람스 교향곡 1번을 특별하게 한 건 짙은 드라마가 아니라 순수한 음악 그 자체였다.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감동이었다.

2악장에선 빈 필 특유의 색채가 잘 드러났다. 라이너 호넥의 솔로 파트는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큰 감동을 선사했다. 간드러지지 않았지만 찬란했다. 30년간 빈 필을 이끌어 온 호넥이 무대 위에 있고 없고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공연이 될 것만 같았다. 빈 필 단원들이 연주해낸 차원이 다른 앙상블은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 순식간에 다른 장면으로 전환할 때 매끄러웠고 이음새도 완벽했다.

결정적으로 큰 감동을 만들어 낸 건 지휘자 투간 소키에프였다. 소키에프는 빈 필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휘자였다. 지휘자가 필요한 순간에만 개입할 뿐 빈 필의 색깔이 필요한 순간엔 단원들에게 맡겼다. 빈 필이 어떤 오케스트라보다도 아름다운 소리를 갖고 있기에 가능한 방법이다. 빈 필과 좋은 성과를 보여준 지휘자들이 선택해온 방식이기도 하다.

빈 필은 이날 어떤 오케스트라도 따라 할 수 없는 앙코르를 선보였다. 바로 왈츠와 폴카였다. 이들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와 ‘트리치 트라치 폴카’를 준비했는데, 왈츠를 그저 쿵짝짝의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란 걸 알려줬다. 왈츠는 리듬을 수시로 밀고 당겨 아름다움을 만드는 음악이다. 그 순간만 존재하는 ‘찰나의 미학’이 담겨 있는 음악인 것이다.

빈 필 단원들은 마치 한 몸처럼 리듬을 탔고, 이들이 아니면 따라 하기 어려운 음악을 완성했다. 우리에게 전통 장단 리듬이 익숙하듯 그들에겐 왈츠 리듬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순간부터는 지휘자도 빈 필을 통제하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도록 내버려 뒀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