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리에이터'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 코리아 제공
영화 '크리에이터'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 코리아 제공
인공지능(AI) 로봇의 세계를 위협해 온 ‘서구 세계’의 거대한 무기인 ‘노마드’ 본체가 폭발하며 막 추락한 현장. 여덟 살 난 여자아이의 모습을 한 AI 로봇 ‘알피’(매들린 유나 보일스 분)가 우는 듯 웃는 듯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알피가 탄생한 주요 목적 중 하나를 달성한 터여서 기쁠 법도 하지만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알피에겐 아빠 같은 존재였던 인간 조슈아(존 데이비드 워싱턴)가 부상을 입은 채 본체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딸아이와 같은 알피만 자그마한 구조기에 태워 떠나보내면서 말이다.

이 순간 웅혼한 오케스트라 배경 음악이 멈추고 잠시 정적이 감돈 후, 드뷔시의 아름답고 친숙한 피아노 독주곡인 ‘달빛’이 흐른다. 은은한 달빛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선율로 그리 처량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곡임에도 부모를 갓 잃은 듯한 어린아이의 애달픈 정서를 깊이 있게 전달한다.
영화 '크리에이터'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 코리아 제공
영화 '크리에이터'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 코리아 제공
러닝타임이 133분에 달하는 영화 ‘크리에이터’의 극적인 드라마가 마무리되는 장면이다. 영화 속 드라마에 공감해 울음을 꾹꾹 참아온 관객이라면 ‘달빛’ 음악이 흐르는 이 대목에선 살짝 눈물을 흘릴 수도 있겠다. 영화의 음악은 거장 한스 짐머가 담당했다.

이 영화는 가까운 미래, 극 속에 나오는 시간을 명시하면 2065년에 일어나는 인간과 AI의 대결을 그린 SF 블록버스터다. ‘몬스터즈’(2010) ‘고질라’(2014) 등을 만든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2016)의 차기작으로 이 영화의 소재를 떠올린 후 각본가 크리스 웨이츠와 함께 시나리오를 썼고, 직접 연출했다. 전작들이 이미 검증된 스토리를 각색한 것이라면 이번 작품은 순수 창작에 가깝다. 그만큼 독창적일 수도 있지만, 영화가 표방하는 세계관에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겠다.
영화 '크리에이터'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 코리아 제공
영화 '크리에이터'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 코리아 제공
영화의 대결 구도는 AI를 절멸시키려는 서구세계와 AI와 공존하고 함께 번성하려는 비서구세계, 구체적으로는 ‘뉴아시안 세계’다. 두 세계가 충돌하는 싸움터는 주로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많이 접했던 ‘베트남 전쟁터’를 연상시킨다. 서구세계가 AI와 원수가 된 사건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구촌 시대에 미래를 상상한 SF물에서 서구 대 비서구 대결 구도라니 시대착오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영화 '크리에이터'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 코리아 제공
영화 '크리에이터'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 코리아 제공
드라마의 중심축은 서구세계의 특수요원 조슈아와 뉴아시안 세계의 마야(젬마 찬)의 사랑이다. 또 다른 축은 마야가 탄생시킨 AI 앨피와 조슈아가 은연중에 느끼는 부녀(父女)의 정이다. 영화의 거시적인 대결 구도와는 달리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감정 교류는 매력적이고, 여기서 비롯되는 주제 의식은 심오하고도 설득력이 있다. ‘마야’ 역을 맡은 젬마 찬의 표현대로 “인간이란 무엇인지,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지, 사랑이 인간과 AI 사이의 경계를 초월할 수 있는지와 같은 거대한 질문“에 영화는 진지하게 답한다.

배우들의 열연이 몰입도를 높인다. 조슈아 역의 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알피 역의 매들린 유나 보일스가 운명의 장난처럼 얽히는 감정을 나누는 연기는 일품이다.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다음 장면은 특히 감동적이다.

알피 : "(아빠도) 천국에 가요?"
조슈아 : "아니, 착한 사람만 천국에 가는 거야."
알피 : "그럼 우린 똑같네. 천국에 못 가잖아. (아빠는) 착하지 않고, 난 사람이 아니니까."
영화 '크리에이터'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 코리아 제공
영화 '크리에이터'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 코리아 제공
무엇보다 극 중 알피처럼 실제로 여덟 살 난 보일스의 진솔한 감정 표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관람할 만한 가치가 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