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출간부터 2005년 북측과의 저작권 협상까지 조명
홍명희 '임꺽정' 출간의 극적인 이야기…다큐 '페이오프'
벽초 홍명희(1888∼1968)가 일제강점기 조선일보에 연재한 대하역사소설 '임꺽정'을 사계절출판사가 책으로 펴낸 건 군사정권 시절인 1985년이다.

홍명희는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과 함께 '조선 삼재(三才)'로 꼽힌 작가지만, 해방 직후인 1948년 남북연석회의 참가차 평양에 갔다가 북한에 남아 내각 부수상까지 지낸 인물이다.

월북 작가인 그의 작품을 군사정권 시절 펴내면 탄압을 받을 게 뻔했지만, 김영종 당시 사계절 대표는 '임꺽정'의 문학적 가치에 주목해 출간을 밀어붙였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와 문공부는 '임꺽정'에 출판금지 처분을 내렸고, 사계절은 출판금지가 무효라며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행정심판위원회가 사계절이 '임꺽정'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지 않아 행정심판 청구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자 사계절은 북한에 저작권 양도 문제를 논의하자고 공개 제의했다.

사계절의 제의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북한의 호응을 끌어냈고, 강맑실 사계절 대표가 개성을 방문해 홍명희의 손자 홍석중과 협상을 벌여 저작권료를 지급함으로써 논란을 일단락지었다.

영화 못지않게 극적인 '임꺽정' 출간을 둘러싼 이야기가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됐다.

강상우 감독의 신작 다큐 영화 '페이오프'다.

이 영화는 사계절의 강맑실 대표와 옛 직원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에 근무하면서 북측과의 협상에 관여한 신동호 씨 등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저작권 협상 당시 강 대표와 홍석중이 주고받은 말이 담긴 녹음파일도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협상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지만, 강 대표는 인터뷰에서 "(북측이) 큰돈을 부르면 어떡할까 걱정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영화의 러닝 타임은 19분에 불과하다.

제작비 등이 부족해 단편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20년에 걸친 '임꺽정'의 출간 이야기를 다루기엔 분량이 짧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강 대표도 25일 시사회에서 '임꺽정' 출간의 뒷얘기가 매우 많다며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해 (관객들은) 다 보고도 '뭐지?' 하는 부분도 없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감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과 20년 동안 급변해온 한국 사회 및 남북 관계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영화 제작 동기를 밝혔다.

'페이오프'는 독립예술영화관 아트나인과 에무시네마 등에서 다음 달 11일 개봉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