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의 성장 이야기…감정적 몰입보단 감각적 체험에 집중"
'다섯번째 흉추' 박세영 감독 "기괴함 속 아름다움에 끌려요"
영화 '다섯번째 흉추'의 주인공은 혼자 사는 남자의 자취방 매트리스에서 태어난 이름 모를 생명체다.

처음엔 곰팡이처럼 보였던 이 생명체는 매트리스에 누운 사람의 뼈를 훔쳐 먹으면서 성장한다.

'다섯번째 흉추'가 이 생명체를 보여주는 방식은 독특하다.

사람의 장기 속을 확대 촬영한 것 같은 영상이 화면을 채우고, 잡음 섞인 음악이 흐른다.

그렇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괴한 느낌을 이어간다.

박세영 감독이 연출한 '다섯번째 흉추'는 2일 개봉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은 기괴한 걸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부모님의 유학으로 캐나다에서 보낸 어린 시절 얘기를 꺼냈다.

"엄마의 말을 듣고 '판의 미로'란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어린이 영화로 알려진 작품이었죠. 그런데 잔인한 영상에 충격을 많이 받았고, 불쾌감만 남았어요.

악몽을 꾸기도 했고…. 그러다가 중학교 다닐 때쯤 영화를 하고 싶단 꿈을 품게 돼 친구들이랑 카메라로 이것저것 영상을 찍기 시작했는데, 제가 연출하는 게 '판의 미로'와 너무 비슷한 거예요.

그래서 그 영화를 다시 봤는데 기괴하고 더러운 장면들 속에 엄청난 슬픔과 아름다움이 있더라고요.

제가 그런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
박 감독은 환풍이 안 되는 서울의 반지하 원룸에 살던 시절 벽에 핀 곰팡이를 본 경험을 토대로 '다섯번째 흉추'를 구상했다.

그는 이 영화가 "생명체의 성장 이야기"라고 했다.

관객들은 사람이 아닌 생명체에 감정 이입을 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감정적 몰입을 유도하기보다는 감각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다섯번째 흉추' 박세영 감독 "기괴함 속 아름다움에 끌려요"
이 영화는 매트리스 속 생명체의 여정을 따라 인간군상의 모습을 비추는 로드 무비이기도 하다.

사랑이 식은 남녀는 원룸에서 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으며 이별하고, 모텔을 찾은 여자는 남자친구와 그만 만나자고 하다가 끝내 못 헤어진다.

초라한 병실의 가난한 여자는 사랑하는 딸을 생각하며 혼잣말한다.

생명체는 이들의 말을 하나하나 기억한다.

박 감독은 "(영화 속 생명체는) 언어를 습득하지만,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모른다"며 "(말에 담긴) 의도를 떠나 표면적 발화만으로도 감동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매트리스 속 생명체를 표현하는 영상은 돼지껍질과 뼈 등의 재료를 활용해 찍었다.

박 감독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낯설게 보이도록 촬영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영상 못지않게 기괴한 느낌을 주는 음악에 대해선 "영상이 깔끔하게 찍어낸 듯한 느낌이 아니기 때문에 음악도 거칠어야 한다고 봤다"고 말했다.

'다섯번째 흉추'는 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 당초 이 영화를 단편으로 구상했지만, 2021년 루이비통 패션 필름 연출로 제작비가 생기자 장편으로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박 감독은 이 영화의 제목에 대해선 "매트리스 속 생명체가 유일하게 못 훔친 뼈가 다섯번째 흉추라서 제목을 그렇게 지었는데, 다르게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차기작으로 '지느러미'라는 제목의 장편을 준비 중이다.

현재 촬영을 마치고 편집 작업 중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인어의 지느러미를 주인공으로 한 로드 무비란 점에서 '다섯번째 흉추'와 비슷한 면이 있다.

박 감독은 "'다섯번째 흉추'가 감각적 체험에 집중했다면, '지느러미'는 좀 더 극영화에 가까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다섯번째 흉추' 박세영 감독 "기괴함 속 아름다움에 끌려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