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Images
GettyImages
지난 6월, 파키스탄 사업가인 샤자다 다우드는 아들 술레만과 함께 일생일대의 추억이 될 여행을 떠났다. 두 사람은 1인당 3억4000만원의 관광 비용을 들인 잠수정(타이탄호)을 타고 약 110년 전 바다 속 깊이 가라앉은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 주변을 둘러볼 예정이었다.

루빅 큐브를 좋아하는 술레만은 해저 3400m에서 큐브를 푸는 세계기록을 세우기 위해 기네스북에 사전 신청을 해놓은 상태였다. 샤자다는 증빙 자료를 남길 카메라를 들고 잠수정에 올랐다. 그러나 그들이 탄 잠수정은 바다로 들어간지 1시간 45분 이후부터 연락이 끊겼고, 영영 그들을 수면 위로 데려오지 못했다. 사고의 원인은 내파 발생으로 알려졌지만 세간에서는 이 비극을 두고 ‘타이타닉호의 저주’ 때문이라고 말한다. 관광 상품이 되기에 이 호화여객선의 침몰은 너무 끔찍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25년 전 만들어진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는 달랐다. 영화산업의 성장과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의 발전을 등에 업고 야심차게 기획된 블록버스터 ‘타이타닉’(1997)은 20세기에 가장 많은 수익을 거둬 들인 영화로 남아 있으며, 21세기 영화들을 합쳐도 4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 때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관점에서 타이타닉호라는 소재는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었다. 당시 2억5000만달러라는 천문학적 자본이 투자되었던 만큼 영화는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대중성은 기본이고 완성도도 갖춰야 참사를 영화화한데 대한 비난을 면할 수 있을 프로젝트였다.

다행히 제임스 카메론은 이 어려운 미션을 성공시키며 대중과 평단 양측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타이타닉’은 20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둔 데 이어 199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1개 상을 쓸어담았을 만큼 연출과 각본, 연기 뿐 아니라 의상, 음악, 미술 등 모든 면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올해 4K로 재개봉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대극이기 때문에 의상이나 미술, 분장 등에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도 카메라 워크나 편집, CG조차 25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다. 대부분 실제 크기로 만들어진 공간 안에 당시 배에 실렸던 가구들을 다시 제작해 배치한 여객선은 이 영화의 티켓을 사게 만드는 첫 번째 시각적 요소였다.

관객들은 이 호사스런 배의 출정을 함께 하면서 순전히 운으로 탑승하게 된 잭의 설레는 마음을 동일하게 만끽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타이타닉호는 영화의 배경으로 기능할 뿐, 서사와 관계 없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망망대해 위에서 첫 눈에 호감을 느끼고 급속히 서로에게 빠져드는 두 남녀의 로맨스가 더 궁금하기 때문이다. 뛰어난 프로덕션과 별개로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성공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시각적 요소는 빙산에 걸려 배가 침몰되는 장면의 스펙터클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 시퀀스를 실제로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했던 37초 가량으로 만들어 리얼리티를 더했고, 이후의 침몰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에도 잭과 로즈가 배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을 교차편집하면서 참사 자체가 아니라 연인의 절박한 탈출기에 더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잭이 로즈를 지켜주고 눈을 감는 슬픈 결말은 참사에 대한 제작진의 애도로 받아들여졌다.
진부한 스토리를 멋진 로맨스로 바꾼 디카프리오와 윈슬렛... ‘타이타닉’(1997)
신분이 다른 두 남녀가 예정된 비극 속에 시한부 사랑을 나눈다는 진부한 스토리를 누군가에게 최고의 로맨스로 기억되도록 만든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매력적인 두 주연배우다. 2023년의 관점에서 이 영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을 만나게 했다는 점이다.

청춘 로맨스 영화에 출연하며 화제를 몰고 다녔던 선남선녀 배우들이 금방 사라지곤 하는데 반해, 두 사람은 이후 성장을 거듭하며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공고히 해왔다. 저 유명한 두 사람의 차 안 정사신을 다시 보면, 노출도 거의 없을뿐더러 길게 묘사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이 장면에서 에로틱한 느낌을 받았다면 그것은 빼어난 연기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출 덕분이다.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 있는 이 영화의 바깥 프레임에는 사라진 목걸이에 대한 호기심과 미스터리가 있다. 극영화에서 많이 사용되는 방식이지만 영화 속 나이 든 로즈처럼, 영화 제작 당시 생존자들이 존재했기에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목걸이의 행방을 쫓아 들어가게 된 할머니의 기억 속에는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그 날의 상황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목걸이의 행방을 찾으려던 사람들은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경험담에 푹 빠져든다. 195분이라는 러닝타임 중 현재의 분량이 생각보다 길다는 점은 놀랄 일이 아니다.
GettyImages
GettyImages
발전된 기술을 이용해 영화를 찍을 뿐 아니라 영화를 위해 혁신적 기술을 개발하기도 해왔던 제임스 카메론의 업적은 ‘터미네이터’에서 ‘타이타닉’을 거쳐 ‘아바타’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많은 기록을 가진 감독이지만 그의 전성기는 끝나지 않은 듯하다. 어쩌면 그의 최고작 또한 미래에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OTT 시대에 영화관으로 관객을 불러들일 수 있는 감독이라는 점에서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이름의 무게감은 더욱 크다. 이것은 그의 지난 작품들을 재조명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내년이면 칠순을 맞는 중견감독의 행보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