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힘든 자리…시행착오 겪으며 빨리 깨우쳤다"
'전반기 3위' 이승엽 두산 감독 "패배는 내 탓, 승리는 선수 덕"
'국민타자'로 사랑받던 이승엽(46) 두산 베어스 감독에게도 '감독'은 힘든 자리였다.

시행착오를 겪었고, 속앓이도 했다.

"운동을 맘껏 하지 못해 온몸이 아프다"라고 '신체적 고통'까지도 호소했다.

하지만, 이승엽 감독은 사령탑 부임 후 첫 시즌 전반기를 웃으며 마쳤다.

2023 한국프로야구 KBO리그 정규시즌 전반기 두산의 마지막 경기로 편성된 13일 인천 SSG 랜더스전은 비로 취소됐다.

우천 취소 결정이 나온 뒤 만난 이승엽 감독은 "이제 전반기가 끝났다.

정말 끝났다"고 후련한 표정으로 웃었다.

두산은 승률 0.538(42승 36패 1무), 3위로 반환점을 돌았다.

두산의 전반기 막판 스퍼트는 KBO리그 전체를 흔들었다.

33승 36무 1패(승률 0.478), 6위로 6월을 마감한 두산은 7월 9경기 전승 행진을 이어가며 3위로 올라섰다.

3월 30일 열린 정규시즌 미디어데이에서 '가을야구에 만날 것 같은 팀을 두 개씩 골라달라'는 질문에 두산을 꼽은 감독은 한 명도 없었다.

당시 이 감독은 "냉정한 평가, 감사합니다"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실제 전문가들은 지난해 9위에 그친 두산을 '2023시즌 중하위권 전력'으로 평가했다.

이 감독은 "스포츠가 예상대로 된다면, 너무 재미없지 않겠나"라며 "우리도 우리의 부족한 점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의 장점을 살리면 절대 만만한 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선수들에게도 시즌 시작 전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을 확실하게 하고, 결과를 받아들이자'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 감독이 이끄는 두산은 2023시즌 전반기 막판 KBO리그 판도를 '재밌게' 만들었다.

'전반기 3위' 이승엽 두산 감독 "패배는 내 탓, 승리는 선수 덕"
결과는 좋았지만, 평탄한 길만 걸은 건 아니었다.

4, 5월에는 힘겹게 5할 승률을 유지했고, 6월에는 10승 14패로 뒷걸음질 쳤다.

'초보 사령탑' 이 감독은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했지만, 심한 속앓이를 했다.

KBO리그 최다인 467홈런을 치는 등 '한국 야구가 낳은 최고 타자'였던 이 감독은 2017시즌 뒤 은퇴했고, 2022년까지는 야구장학재단 이사장, 해설위원, KBO 홍보대사로 '더그아웃 밖'에서 지냈다.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2015∼2021년)에 성공했던 두산은 2022년 9위로 처졌고, '두산 왕조'를 건설했던 김태형 전 감독과 작별했다.

두산이 택한 신임 사령탑은 '국민타자'로 불렸지만, 지도자 경험은 없는 이승엽 감독이었다.

두산이 부진하면 '초보 감독의 한계'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감독은 "패한 경기는 내 책임"이라고 선수들을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실패 속에서도 '감독 이승엽'은 성장했다.

이 감독은 "6월까지는 좋지 않은 기억이 더 많았다"며 "선수 때는 부진할 때도 나만 신경 쓸 수 있었지만, 감독이 되니 더 많은 것을 살펴야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감독은 더 힘든 자리"라고 털어놨다.

이어 "6월까지는 좋지 않은 기억이 더 많았다"며 "오히려 실패를 통해서 더 빨리 깨우쳤다.

시즌 초부터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시즌 중반에 팀이 부진할 때 내가 '감독 슬럼프'를 더 오래 겪었을 것이다.

시즌 초 부진이 내게는 약이 됐다"고 덧붙였다.

'전반기 3위' 이승엽 두산 감독 "패배는 내 탓, 승리는 선수 덕"
시즌 내내 이 감독은 "이긴 경기는 선수들과 코치, 전력 분석 파트 등의 덕이고, 패한 경기는 내 책임"이라고 했다.

전반기를 마친 순간에도 이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첫 2경기(4월 26일 0-1, 27일 6-7 패배)가 끝나고서는 정말 힘들었다.

4월 19일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5-2로 앞서다가 6-7로 역전패했을 때도 심하게 자책했다"고 아픈 기억을 꺼내며 "그런 경기는 모두 투수 교체 시점 등을 잘못 판단한 내 책임이다.

선수들과 구단에 미안함이 커서 더 힘들었다"고 떠올렸다.

기분 좋은 순간에는 모두 다른 사람을 앞에 내세웠다.

이 감독은 "전천후로 던진 투수 김명신, 베테랑의 역할을 잘해준 양의지와 김재호 등 모든 선수, 전력분석원을 포함한 코칭스태프, 열심히 지원해 준 프런트 덕에 좋은 분위기로 전반기를 마감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하지만, 두산 선수들과 프런트는 상당한 부담을 안고도, 팀을 잘 이끈 이 감독에게 고마워한다.

기분 좋게 반환점을 돈 이 감독은 이제 후반기를 준비한다.

그는 "진짜 승부는 후반기에 펼쳐진다"며 "2023년 두산에 관한 제대로 된 평가도 시즌이 모두 끝나야 나온다"고 '앞'을 내다봤다.

이 감독은 "7월에 우리는 완전체에 가까운 팀을 꾸렸다.

이 기세를 후반기에도 이어가고 싶다"며 "6월에 좋지 않았던 면을 잊지 않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전반기 3위' 이승엽 두산 감독 "패배는 내 탓, 승리는 선수 덕"
9연승을 거두며 전반기를 마감한 이 감독은 후반기 첫 경기에서 승리하면 의미 있는 기록을 완성한다.

두산이 9연승을 내달린 건 김태형 전 감독이 팀을 지휘하던 2018년 6월 6일 히어로즈전∼16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10연승을 달성한 이후 5년 1개월 만이다.

두산은 김인식 전 감독 시절이던 2000년 6월 16∼27일에 '구단 첫 10연승'에 성공했다.

'10연승'은 아직 두산의 구단 최다 연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베어스 감독 부임 첫 해 최다 연승 기록은 김영덕 전 감독(1982년 5월 22일 삼성 라이온즈전∼6월 12일 MBC 청룡전)과 김성근 전 감독(1984년 4월 17일 삼미 슈퍼스타즈전∼28일 롯데 자이언츠전), 이승엽 감독이 달성한 '9연승'이다.

OB 베어스로 불리던 시절 김영덕 전 감독과 김성근 전 감독이 내달린 연승을 두산의 이승엽 감독이 재연해냈다.

21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벌이는 KIA 타이거즈와의 후반기 첫 경기에서 승리해 10연승을 이어가면 이승엽 감독 개인은 '베어스 사령탑 부임 첫 해 최다 연승 신기록'을 세우고, 'KBO리그 국내 사령탑 부임 최다 연승 타이기록'을 작성한다.

공식 사령탑으로 부임한 첫 해 10연승을 달성한 감독은 1997년 천보성 LG 트윈스 감독, 1999년 이희수 한화 이글스 감독, 2000년 이광은 LG 감독 등 3명뿐이다.

국내 감독 중 부임 첫해에 11연승 이상을 기록한 사령탑은 없다.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 제리 로이스터 전 감독이 2008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달성한 11연승이 KBO리그 국내외 감독의 부임 첫 시즌 역대 최다 연승 기록이다.

이승엽 감독이 이끄는 2023년의 두산은 2000년, 2018년에 이어 구단 세 번째로 10연승을 채운다.

이 감독은 "다 같이 만든 기록이고, 연승 기록을 의식하지도 않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팬들은 이승엽 감독이 이끄는 두산의 10연승 달성을 기다리며 올스타 휴식기를 보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