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마지막 갯벌 7년 담은 다큐 '수라' 황윤 감독
"갯벌은 우주가 만든 작품…각자 동네만 지켜도 지구 지키죠"
"새만금 갯벌서 본 멸종위기종 저어새…죽비 맞은 듯 충격"
"수라 갯벌을 찾았을 때 세계 멸종위기종인 저어새 150여 마리가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봤어요.

자다가 죽비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죠."
새만금 일대 갯벌의 모습을 7년간 카메라에 담아 다큐멘터리 '수라'로 내놓은 황윤 감독은 2014년 전북 군산시 수라 갯벌에 갔을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수라는 군산·김제·부안으로 이어지는 새만금 간척지의 마지막 갯벌이다.

황 감독은 대법원이 간척사업을 사실상 승인한 2006년 이후 처음으로 새만금을 찾았다고 한다.

가기 전만 해도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 수년이 흐른 터라 갯벌과 생명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에서 만난 황 감독은 "(새만금 생태계는)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수라에 남은 생명을 본 순간 안도감이 들면서 희망을 느꼈다"고 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활동가 오동필 씨가 새만금에서 물새를 조사하고 있다는 거예요.

처음엔 제 귀를 의심했죠. 방파제로 바다를 막은 새만금에 갯벌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직접 찾아갔다가 저어새들을 보게 된 거예요.

내가 이 순간을 보는 유일한 목격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큐멘터리를 꼭 찍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
다큐멘터리는 도요새, 흰발농게, 쇠검은머리쑥새, 칠면초 등 새만금 일대에 사는 동식물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질긴 생명줄을 붙들고 모래사장을 걷는 이들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새만금 갯벌서 본 멸종위기종 저어새…죽비 맞은 듯 충격"
황 감독은 "'갯벌은 우주가 만든 예술작품'이라는 말을 체감할 만큼 수라는 아름다웠다"며 "쇠제비갈매기 새끼가 매립지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는데 어떻게 카메라를 내려놓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화를 참기 어려웠던 때도 많았다고 한다.

특히 천연기념물인 저어새 바로 옆에서 굴착기가 갯벌을 파헤치는 걸 목격했을 때가 그랬다.

"국가에서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지정해놓고, 그 귀한 새가 사는 서식지를 파괴하는 걸 보며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해안 갯벌은 시베리아와 호주를 왔다 갔다 하는 도요새에게도 단 하나의 쉼터거든요.

그래서 세계적으로도 가치가 크다고 평가되는 곳입니다.

"
그는 개발을 위해서라면 생태계 파괴도 용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자연과 동물 없이도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건 큰 착각"이라고 지적했다.

다큐멘터리는 새만금 사업 이후 무너진 어촌 경제도 조명한다.

황 감독은 버려진 어촌 마을은 충격 그 자체였다고 회상했다.

갯벌이 매립되자 어민들은 먹고 살길을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났다.

일부 남은 어민들은 한 달에 몇 번 없는 풀베기 작업에 동원돼 푼돈을 번다고 한다.

"새만금 간척 사업이 많은 것을 붕괴했다는 걸 알았지만, 마을이 그 정도로 폐허가 됐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시간이 멈춰 있는 듯했죠. 지금이라도 새만금 사업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봐요.

어떤 수익도 못 내면서 명분도 없이 갯벌을 매립하고 있어요.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자연 파괴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
"새만금 갯벌서 본 멸종위기종 저어새…죽비 맞은 듯 충격"
하지만 황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본 관객들은 분노보다는 희망을 가져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수라의 모습을 더욱 아름답게 그리려고 애쓴 이유도 갯벌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의 마음이 잘 전달된 덕인지 '수라'는 최근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대상을,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받았다.

황 감독은 "관객이 '너무 아름다워서 반드시 지켜야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게 주요 목표였는데 그 부분을 높이 평가해준 게 아닌가 싶다"며 "지역 이슈로 치부하거나 잊고 있던 새만금 문제를 지적한, 너무 필요했던 영화기도 하다"고 말했다.

"환경단체 활동가들도 '새만금 사업 다 끝난 거 아니야?'라고 물어요.

저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죠. 군산에 이사 오고 제 동네이기도 한 수라에 직접 가게 되면서 현실을 알게 된 거죠. 각자의 동네만 지켜도 전 지구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환경이 더 무너지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것, 인간이 존엄해질 수 있는 마지막 방법 아닐까요.

"
"새만금 갯벌서 본 멸종위기종 저어새…죽비 맞은 듯 충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