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마키아벨리' 꿈꾸는 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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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기자들이 쓴 '빈 살만의 두 얼굴' 출간
"나의 롤모델은 마키아벨리입니다.
"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맘(종교 지도자) 중 한 명인 오우다를 만난 모하메드 빈 살만이 2012년 10월쯤 한 말이다.
그를 왕궁에서 불분명한 영향력을 가진 애송이 왕자쯤으로 생각했던 오우다는 이 말을 듣고 그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빈 살만은 식견이 뛰어나지 않았다.
아니 조잡한 수준에 가까웠다.
다른 왕자들처럼 미국이나 유럽 유학파 출신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무언가가 있었다.
칼날처럼 날카롭고, 난폭한 무언가가.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인 브래들리 호프와 저스틴 섹이 함께 쓴 '빈 살만의 두 얼굴'(원제 Blood and Oil)은 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의 삶과 사우디 왕가 이야기를 다룬 논픽션이다.
왕가에 대한 오랜 취재를 바탕으로 두 저자는 빈 살만이라는 복잡한 인물을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빈 살만은 리야드 주지사를 지내다 2015년 왕위에 오른 살만 국왕의 아들이다.
셋째 부인의 아들로, 위로 배다른 형이 여러 명 있다.
살만은 어린 시절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은 왕가의 골칫덩어리였다.
10대 때는 적을 정복하는 비디오게임에 중독되고, 패스트푸드에 탐닉했다.
군복을 차려입고 슈퍼마켓에서 난장판을 피우기도 했다.
왕가 행사에선 멍때리기 일쑤였다.
아들과 쉰살 가까이 차이 나는 아버지는 손자 같은 아들을 그래도 귀여워했다.
그는 다른 형들처럼 유학을 떠나지 않았고, 늘 아버지 곁을 지켰다.
살만 가문은 사우디 왕가 중에서도 힘이 센 가문이었지만, 다른 왕가에 견줘 경제적으로 풍요롭진 않았다.
다른 왕가가 국가의 각종 이권에 개입하며 부를 획득했지만, 살만 가문은 녹봉으로 재력을 유지했다.
상대적으로 가난하다고 여긴 빈 살만은 어린 시절부터 돈에 관심이 많았다.
10대 때부터 주식투자를 하다 망해 잔고가 '0'이 되는 경험도 했다.
20대가 되자 살만 가문 출신답지 않게 각종 사업도 벌였다.
국방부 장관인 아버지 밑에서 군 경력을 쌓아가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15 갑자기 사망한 압둘아지즈 국왕에 이어 아버지가 왕위에 올랐다.
살만 국왕은 70대 노인이었고, 진통제에 중독된 상태였다.
이제 막 서른이 된 빈 살만이 아버지의 총애를 등에 업고 국정을 하나하나 장악해나갔다.
그는 국방부 장관이 됐고, 왕가의 자금줄인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도 집어삼켰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장애물이 많았다.
사촌 형이자 그보다 서열이 앞선 나예프 왕세자 등 정적들이 산적했다.
사우디는 압둘아지즈 국왕이 제3알 사우드 왕조를 창건한 1932년 이래로 형제상속이 원칙이어서 현재 왕의 직계보단 가문 전체에서의 서열이 중요했다.
빈 살만은 빈 나예프 왕세자에 이은 부왕세자였다.
빈 살만은 변화에 민감했다.
아버지가 왕위에 오를 당시 사우디 전체 인구의 60%가 30세 이하의 젊은이였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주목하며 젊은 민심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반면 그의 정적들은 종교 지도자 등 늙은 보수주의자의 지지를 얻고자 노력했다.
빈 살만은 젊은 층의 지지에 힘입어 조금씩 나예프를 앞서나가기 시작했고, 2017년 6월에는 나예프를 몰아내고 왕세자 자리에 올랐다.
그는 왕세자 자리에 오르자마자 '부패 척결'이라는 미명하에 숙청을 단행했다.
정관계와 재계 거물들을 대거 체포했고, 유력한 왕가 인물들도 구속했다.
몇몇은 수감된 상태에서 죽었다.
대다수는 빈 살만에게 항복했다.
이들의 부패 혐의는 공표되지 않았다.
책은 빈 살만의 기행과 권력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그는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 망설이지 않고, 게다가 잔혹까지 했다.
살만이 자기 뜻에 반하는 결정을 했던 토지 담당자에게 우편으로 총알을 보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예측불허한 성격 탓에 미국 정부도 그의 진의를 파악하느라 애를 먹곤 했다.
저자들은 빈 살만이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교활성, 멋있는 제스처에 대한 애정, 모험성, 무자비한 구석" 등의 특징을 보여줬다며 "그는 군, 경찰, 정보기관, 정부의 모든 부처를 장악했다.
국왕은 아니었지만, 지구상에서 강력한 인물 중 하나"라고 말한다.
오픈하우스. 박광호 옮김. 484쪽.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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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맘(종교 지도자) 중 한 명인 오우다를 만난 모하메드 빈 살만이 2012년 10월쯤 한 말이다.
그를 왕궁에서 불분명한 영향력을 가진 애송이 왕자쯤으로 생각했던 오우다는 이 말을 듣고 그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빈 살만은 식견이 뛰어나지 않았다.
아니 조잡한 수준에 가까웠다.
다른 왕자들처럼 미국이나 유럽 유학파 출신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무언가가 있었다.
칼날처럼 날카롭고, 난폭한 무언가가.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인 브래들리 호프와 저스틴 섹이 함께 쓴 '빈 살만의 두 얼굴'(원제 Blood and Oil)은 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의 삶과 사우디 왕가 이야기를 다룬 논픽션이다.
왕가에 대한 오랜 취재를 바탕으로 두 저자는 빈 살만이라는 복잡한 인물을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빈 살만은 리야드 주지사를 지내다 2015년 왕위에 오른 살만 국왕의 아들이다.
셋째 부인의 아들로, 위로 배다른 형이 여러 명 있다.
살만은 어린 시절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은 왕가의 골칫덩어리였다.
10대 때는 적을 정복하는 비디오게임에 중독되고, 패스트푸드에 탐닉했다.
군복을 차려입고 슈퍼마켓에서 난장판을 피우기도 했다.
왕가 행사에선 멍때리기 일쑤였다.
아들과 쉰살 가까이 차이 나는 아버지는 손자 같은 아들을 그래도 귀여워했다.
그는 다른 형들처럼 유학을 떠나지 않았고, 늘 아버지 곁을 지켰다.

다른 왕가가 국가의 각종 이권에 개입하며 부를 획득했지만, 살만 가문은 녹봉으로 재력을 유지했다.
상대적으로 가난하다고 여긴 빈 살만은 어린 시절부터 돈에 관심이 많았다.
10대 때부터 주식투자를 하다 망해 잔고가 '0'이 되는 경험도 했다.
20대가 되자 살만 가문 출신답지 않게 각종 사업도 벌였다.
국방부 장관인 아버지 밑에서 군 경력을 쌓아가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15 갑자기 사망한 압둘아지즈 국왕에 이어 아버지가 왕위에 올랐다.
살만 국왕은 70대 노인이었고, 진통제에 중독된 상태였다.
이제 막 서른이 된 빈 살만이 아버지의 총애를 등에 업고 국정을 하나하나 장악해나갔다.
그는 국방부 장관이 됐고, 왕가의 자금줄인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도 집어삼켰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장애물이 많았다.
사촌 형이자 그보다 서열이 앞선 나예프 왕세자 등 정적들이 산적했다.
사우디는 압둘아지즈 국왕이 제3알 사우드 왕조를 창건한 1932년 이래로 형제상속이 원칙이어서 현재 왕의 직계보단 가문 전체에서의 서열이 중요했다.
빈 살만은 빈 나예프 왕세자에 이은 부왕세자였다.
빈 살만은 변화에 민감했다.
아버지가 왕위에 오를 당시 사우디 전체 인구의 60%가 30세 이하의 젊은이였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주목하며 젊은 민심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반면 그의 정적들은 종교 지도자 등 늙은 보수주의자의 지지를 얻고자 노력했다.
빈 살만은 젊은 층의 지지에 힘입어 조금씩 나예프를 앞서나가기 시작했고, 2017년 6월에는 나예프를 몰아내고 왕세자 자리에 올랐다.
그는 왕세자 자리에 오르자마자 '부패 척결'이라는 미명하에 숙청을 단행했다.
정관계와 재계 거물들을 대거 체포했고, 유력한 왕가 인물들도 구속했다.
몇몇은 수감된 상태에서 죽었다.
대다수는 빈 살만에게 항복했다.
이들의 부패 혐의는 공표되지 않았다.

그는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 망설이지 않고, 게다가 잔혹까지 했다.
살만이 자기 뜻에 반하는 결정을 했던 토지 담당자에게 우편으로 총알을 보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예측불허한 성격 탓에 미국 정부도 그의 진의를 파악하느라 애를 먹곤 했다.
저자들은 빈 살만이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교활성, 멋있는 제스처에 대한 애정, 모험성, 무자비한 구석" 등의 특징을 보여줬다며 "그는 군, 경찰, 정보기관, 정부의 모든 부처를 장악했다.
국왕은 아니었지만, 지구상에서 강력한 인물 중 하나"라고 말한다.
오픈하우스. 박광호 옮김. 484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