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불법하도급 집중단속 중간결과…적발건수는 58건
흙막이공사 하도급받아 건설기계 임대업자에 재하도급도
원희룡 "건설노조 횡포 근원, 불법 다단계 하도급일수도"
무자격자에 하도급·재하도급까지…건설사 42곳 무더기 적발(종합)
정부가 건설현장 불법 하도급 집중단속에 나선 결과 건설업 등록조차 하지 않은 무자격자에 하도급을 준 건설업체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8일까지 20일간 77개 건설현장을 점검했으며, 점검 대상의 42.8%에 해당하는 33개 현장에서 불법 하도급 58건을 적발했다고 12일 밝혔다.

국토부는 불법 하도급이 적발된 건설업체 42곳에 대한 행정처분과 형사고발 절차에 착수했다.

이번 발표는 건설현장 불법 하도급 100일 집중점검의 중간 결과로, 국토부는 8월 30일까지 불법 하도급 의심 현장 508곳을 불시 단속한 뒤 불법 하도급 근절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초반부 단속에서 가장 많이 적발된 유형은 건설업 등록을 하지 않거나 해당 공사의 공종 자격을 갖추지 못한 업체에 하도급을 준 경우로, 전체 단속 건수의 72.4%(42건)를 차지했다.

120억원 규모의 복합문화센터 공사를 수주한 종합건설업체 A사는 하도급 계약을 한 9개 업체 중 4개 업체가 무자격이었다.

미장·금속·수장·철골공사를 모두 건설업 미등록 업체에 하도급 줬다가 적발됐다.

나머지는 하청업체가 발주자의 서면 승낙 없이 재하도급을 준 경우로, 16건이었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하청업체는 하도급받은 공사를 재하도급할 수 없지만, 발주자나 수급인(시공사)의 서면 승낙을 받는 등 특정 요건을 갖추면 재하도급이 가능하다.

특히 무등록·무자격자에 불법 재하도급을 준 경우는 11건에 달했다.

아파트 건설공사 중 지하층 흙막이공사를 하도급받은 전문건설업체 B사는 건설업을 등록하지 않은 건설기계 임대업자에게 지반 공사를 재하도급했다.

이 과정에서 발주자의 서면 승낙은 없었다.

국토부는 적발 업체를 강력히 처분한다는 방침이다.

무자격자에 하도급·재하도급까지…건설사 42곳 무더기 적발(종합)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을 찾아 불법 하도급 집중단속 현황을 점검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도로공사, 한국철도공사 등 공공공사 발주기관과 불법 하도급 근절 방안을 논의했다.

원 장관은 "어쩌면 건설현장 내 모든 문제의 근원, 건설노조가 폭력배 같은 횡포를 부릴 수 있는 근원이 불법 다단계 하도급일 수 있다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면서 "노조가 (불법 하도급과 관련한 건설업체의) 약점을 갖고 뜯어먹는 돈이 커지다 보니 이 사태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원 장관은 "건설노조의 폭력적 불법에 대응해 특별사법경찰을 도입할 계획이지만, 원인 제공을 끊임없이 하는 사측의 문제점을 제거하지 않으면 건설현장 불법행위가 재발할 수밖에 없다"며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다.

무자격자에 하도급·재하도급까지…건설사 42곳 무더기 적발(종합)
정부는 불법 하도급으로 공사비가 누수되면 근로자 임금 체불이나 부실시공으로 이어져 결국 국민 피해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원 장관은 "불법 하도급을 했다는 얘기는 공사를 더 잘할 사람에게 넘기는 게 아니라 돈을 20% 정도 빼먹고 넘긴다는 것"이라며 "불법 하도급은 소비자들이 제값에 맞는 물건을 받는 것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무자격자에 하도급·재하도급까지…건설사 42곳 무더기 적발(종합)
국토부는 건설현장에서 임금뿐 아니라 공사대금 직불제를 정착시킨다는 방침이다.

원 장관은 "전자적이고 투명한 대금 지급구조를 갖추지 않을 경우 돈을 빼갈 수 없도록 하면 불법 하도급을 할 필요가 많이 없어지게 된다"며 "돈의 지급 흐름을 직접적으로 관리해 빨대로 대금을 가로채 가는 것을 배제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첫 번째"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토부는 불법 하도급 처벌 수위를 높이고, 발주처·원청의 하도급 관리 의무를 부여하기 위해 국회에 발의된 건설산업법 개정안의 수정안을 마련했다.

국회 협의를 거쳐 법안이 이달 중 재발의되도록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불법 하도급 근절 간담회에서 전문가들은 건설사뿐 아니라 협회와 인허가기관, 발주청도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신영철 국책사업감시단장은 "대한건설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구성원들이 불법 하도급을 하고 있다"며 "자체 단속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불법 하도급 관행이 고착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영준 건설산업연구원 산업정책연구실장은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달리 엄격한 건설업 업역 구분으로 생산체계가 경직돼 있는데, 등록은 손쉽기 때문에 불법 하도급에 노출돼 있다"며 생산체계 개편을 통한 불법 하도급 해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