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는 차 문을 잠그는 걸 깜박했다.
그것이 그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20대 남성 J씨는 차 문을 열고 들어와 흉기로 A씨를 살해했다.
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정신감정을 의뢰받아 오게 되는 국립법무병원에 근무 중이었던 정신과 전문의 차승민은 그로부터 얼마 뒤 J씨와 상담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날 면담실에서 들은 J씨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해진다고 한다.
J씨는 10대 때부터 연쇄살인에 관심이 있었고, 계속 살인을 계획했다고 했다.
마침내 살인하기로 마음먹고 대상을 물색하던 중 A씨를 발견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원한이나 분노 때문이 아닌 단순히 살인에 호기심이 있어서, 그리고 '살인하고 싶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J씨는 빈말이라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
'정말 순수하게 살인하면 어떤 기분일까'를 궁금했다고 했다.
정말 미안하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피식 웃으며 '왜 미안한 생각이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이어 '꿈꿔왔던 것과 달리 살인이 자극적이지 않았고 재미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차승민 씨는 그를 '반사회적 성격장애'(사이코패스)로 분류했다.
감정서에 그는 "당연히 심신 건재"라고 표기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사이코패스 모두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또한 살인을 저지른 모두가 사이코패스인 것도 아니다.
연구 결과를 보면 사이코패스는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부분도 있지만 치료와 교육과 관심으로 극복이 가능한 부분도 있다고 한다.
차 전문의는 "사회화나 교육을 거쳐 (사이코패스들이 지닌) 악을 희석하고 선을 이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신감정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며 심신 건재와 심신미약, 심신상실 판정 기준은 무엇이며 판결에서는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기록했다.
저자는 언론에서 보도하는 한 줄의 결과를 완성하기 위해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고심한다고 말한다.
의사뿐 아니라 임상심리전문가와 간호사 등 여러 의료진이 다각도로 면담하고 모니터링해 쌓은 근거를 바탕으로 종합적으로 판단을 내린다고 설명한다.
특히 범죄자가 조현병, 우울증, 조울증, 자폐증, 치매 등을 앓고 있다고 해도 이들 증상이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확실할 때만 '심신미약'으로 규정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실제로 정신감정을 나쁘게 이용하려 드는 사람이 많으나 그렇다고 정신감정이 아예 가치가 없는 것이라거나 심신미약 제도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정확한 정신감정이야말로 나쁜 사람과 아픈 사람을 구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없다"고 말한다.
234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