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사라져야 해...뮤지컬 '호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arte] 최승연의 뮤지컬 인물열전
참 아이러니하지만, K는 결국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호프는 비로소 장난스럽게 웃고 법정을 떠난다. 이로써 30년 동안 끌어왔던 재판은 드디어 끝난다. 죽어도 내놓을 수 없었던 K를 이스라엘 도서관에 귀속시키고 호프는 새로운 삶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경쾌한 걸음걸이로 멀어져가는 호프를, K는 평온한 얼굴로 바라본다.
뮤지컬 ‘호프’에서 K는 (현장의 용어로 말하자면) ‘관념캐’다. 관념을 인물로 형상화한 캐릭터라는 뜻이다. 사실 그는 작가 요제프 클라인의 미발표 ‘원고’다. 하지만 그는 그저 단순한 원고가 아니다. 그는 대를 이은 욕망의 덩어리이며, ‘빛나는 결핍체’다. 요제프의 친구 베르트로부터 호프의 엄마 마리, 유대인 난민 카델을 거쳐 호프의 욕망이 응축된 존재다. 그래서 그는 요제프 클라인(Joseph Klein)의 ‘K’로 명명되었으나, 요제프가 아니다.
K는 불태워졌어야 했다. 요제프는 자신의 글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K는 살아남는다. 친구 베르트의 욕망 때문이다. 베르트는 요제프의 문장을 사랑했다. 유명 작가인 자신의 글보다 무명인 요제프의 글을 흠모했다. 그래서 친구의 요청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미완성 원고를 출판해 버렸다. 그렇게 K는 탄생됐다. 처음부터 K는 요제프를 떠난 지점에 있었다. 베르트가 사랑했던 것은 미발표된 죽은 요제프의 원고, K의 광휘 그 자체였다. 자신만 아는 K의 빛 안에서 그는 살고 싶었다. 무대 위에 하얀색 원고지를 입고 내내 서 있는 K는,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결핍 그 자체가 된다.
K는 호프를 사랑하지만, 호프에게는 특히 결핍을 환기시키는 존재다. 엄마 마리에게 K의 자리는 원래 호프의 것이었다. 아니, 호프의 것이어야 했다. 엄마는 호프가 아니라 K를 보며 내내 “빛나잖아”라고 중얼거렸다. 엄마도 자신의 연인 베르트처럼 K의 광휘를 흠모했다. 엄마에게 K는 사랑하는 베르트 자체였기 때문이다. 전쟁 통에 엄마에게 맡겨진 K는 여러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키며 살아남는다. 호프 역시 희생된 사람들 중 하나였다. 피난민 트럭 안에서도 엄마는 호프가 아니라 K를 보살폈다. 호프가 확인한 것은,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에게 자신의 자리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엄마는 끝까지 약속을 지키면 베르트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베르트는 엄마를 배신하고 다시 떠난다. 그 후로 엄마 마리는 더러운 텐트 안에서 K를 안은 채 유폐된다. 이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진 호프는 엄마로부터 K를 반쯤 훔쳐서 집을 나와 버린다. 반만 남은 K는 이제, 모든 것이 정지된 집을 지키는 존재가 된다. 집을 나간 호프는 갑자기 유명해진 요제프 클라인 때문에 배신을 경험한다. 친구였던 난민 카델이 ‘미발표’ ‘원고’인 K를 ‘빛’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호프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죽은 엄마처럼 유폐된 존재가 되어, 우리가 처음부터 만났던, 산발한 머리에 입 냄새를 풍기는 할머니가 된다. 호프는 마녀처럼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는 주변의 오해도 받는다. 하지만 호프는 K를 자신과 동일시했기에, 살 수 있었다. K는 호프에게 남은 ‘단 하나의 것’이었다. K를 지키려는 욕망으로 30년간 재판도 끌어왔다.
그런데 그녀가 이런 K와 결별한 것이다. K가 깊이 각인되는 것은 이 순간부터다. 그는 호프 내면의 깊은 곳에 말을 건다. 그는 호프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한다. K의 말은 위협이 아니라 응원이다. 하얗고 텅 빈 원고지에 이제 호프 스스로의 이야기를 쓰라고, “넌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혼자 버틴 호프에게 수고했고 충분하다고, 너의 시간은 멋지고 훌륭했다고 외친다. 원고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 쓰는 것’임을, 자신을 벗어나 진짜 자신의 이야기로 채워야 하는 것임을 일깨운다.
K의 응원은 얼얼할 정도로 가슴을 때린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누구보다 호프를 잘 아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의 응원이 어쭙잖은 충고로 들리지 않는 것은, 그가 호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웃는 얼굴을 하고 K를 떠난 호프는 이제 자신의 이야기로 빛날 것이다. 호프를 과거로부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도운 K는 이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K의 응원이 필요한 어느 때 우리는 그를 떠올릴지 모른다. 그야말로 관념캐의 정석 같은 K가, 뮤지컬에 있다.
뮤지컬 ‘호프’에서 K는 (현장의 용어로 말하자면) ‘관념캐’다. 관념을 인물로 형상화한 캐릭터라는 뜻이다. 사실 그는 작가 요제프 클라인의 미발표 ‘원고’다. 하지만 그는 그저 단순한 원고가 아니다. 그는 대를 이은 욕망의 덩어리이며, ‘빛나는 결핍체’다. 요제프의 친구 베르트로부터 호프의 엄마 마리, 유대인 난민 카델을 거쳐 호프의 욕망이 응축된 존재다. 그래서 그는 요제프 클라인(Joseph Klein)의 ‘K’로 명명되었으나, 요제프가 아니다.
K는 불태워졌어야 했다. 요제프는 자신의 글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K는 살아남는다. 친구 베르트의 욕망 때문이다. 베르트는 요제프의 문장을 사랑했다. 유명 작가인 자신의 글보다 무명인 요제프의 글을 흠모했다. 그래서 친구의 요청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미완성 원고를 출판해 버렸다. 그렇게 K는 탄생됐다. 처음부터 K는 요제프를 떠난 지점에 있었다. 베르트가 사랑했던 것은 미발표된 죽은 요제프의 원고, K의 광휘 그 자체였다. 자신만 아는 K의 빛 안에서 그는 살고 싶었다. 무대 위에 하얀색 원고지를 입고 내내 서 있는 K는,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결핍 그 자체가 된다.
K는 호프를 사랑하지만, 호프에게는 특히 결핍을 환기시키는 존재다. 엄마 마리에게 K의 자리는 원래 호프의 것이었다. 아니, 호프의 것이어야 했다. 엄마는 호프가 아니라 K를 보며 내내 “빛나잖아”라고 중얼거렸다. 엄마도 자신의 연인 베르트처럼 K의 광휘를 흠모했다. 엄마에게 K는 사랑하는 베르트 자체였기 때문이다. 전쟁 통에 엄마에게 맡겨진 K는 여러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키며 살아남는다. 호프 역시 희생된 사람들 중 하나였다. 피난민 트럭 안에서도 엄마는 호프가 아니라 K를 보살폈다. 호프가 확인한 것은,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에게 자신의 자리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엄마는 끝까지 약속을 지키면 베르트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베르트는 엄마를 배신하고 다시 떠난다. 그 후로 엄마 마리는 더러운 텐트 안에서 K를 안은 채 유폐된다. 이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진 호프는 엄마로부터 K를 반쯤 훔쳐서 집을 나와 버린다. 반만 남은 K는 이제, 모든 것이 정지된 집을 지키는 존재가 된다. 집을 나간 호프는 갑자기 유명해진 요제프 클라인 때문에 배신을 경험한다. 친구였던 난민 카델이 ‘미발표’ ‘원고’인 K를 ‘빛’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호프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죽은 엄마처럼 유폐된 존재가 되어, 우리가 처음부터 만났던, 산발한 머리에 입 냄새를 풍기는 할머니가 된다. 호프는 마녀처럼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는 주변의 오해도 받는다. 하지만 호프는 K를 자신과 동일시했기에, 살 수 있었다. K는 호프에게 남은 ‘단 하나의 것’이었다. K를 지키려는 욕망으로 30년간 재판도 끌어왔다.
그런데 그녀가 이런 K와 결별한 것이다. K가 깊이 각인되는 것은 이 순간부터다. 그는 호프 내면의 깊은 곳에 말을 건다. 그는 호프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한다. K의 말은 위협이 아니라 응원이다. 하얗고 텅 빈 원고지에 이제 호프 스스로의 이야기를 쓰라고, “넌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혼자 버틴 호프에게 수고했고 충분하다고, 너의 시간은 멋지고 훌륭했다고 외친다. 원고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 쓰는 것’임을, 자신을 벗어나 진짜 자신의 이야기로 채워야 하는 것임을 일깨운다.
K의 응원은 얼얼할 정도로 가슴을 때린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누구보다 호프를 잘 아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의 응원이 어쭙잖은 충고로 들리지 않는 것은, 그가 호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웃는 얼굴을 하고 K를 떠난 호프는 이제 자신의 이야기로 빛날 것이다. 호프를 과거로부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도운 K는 이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K의 응원이 필요한 어느 때 우리는 그를 떠올릴지 모른다. 그야말로 관념캐의 정석 같은 K가, 뮤지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