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비' 이성민 "나이 들수록 나를 변주할 능력 생겨"

부산 정치판 실세 순태 역…"연륜 있는 보스 연기 해보고 싶었다"

"이제 노인 연기 그만해야 할 것 같아요.

제 나이에 맞는 역할 해야죠. (웃음)"
배우 이성민은 영화 '리멤버' 속 80대 한필주,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양철 회장에 이어 '대외비'에서도 노인 역할을 연기한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27일 서울 종로구의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사실 (세 작품 모두)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했는데 팬데믹 때문에 거의 연작처럼 나오는 바람에 조금 곤란해졌다"면서 "(연이어 개봉하게 돼) 조금은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대외비'에서 그가 연기한 순태는 부산 정치판의 숨겨진 권력자다.

이성민은 "비선 실세, 연륜 있는 브로커를 표현하기 위해서 나이를 좀 더 올려 연기했다"면서 "짧은 머리에 나이가 있는 보스 같은 이미지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순태는 당의 공천 후보를 하루아침에 뒤바꿀 힘을 가지고 있지만 나이도, 직업도, 출신도 불분명하다.

관객은 절름거리는 다리와 몇 마디 짧은 대사만으로 순태라는 인물의 전사(前史)를 대략 유추할 따름이다.

"순태는 권력을 만들어내지만 뒤에 숨어있는 인물이에요.

우리가 알지는 못하지만, 세상은 어쩌면 그런 사람들의 힘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미스터리하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사연이나 과거는 만들지 않았습니다.

저도 딱히 궁금해하지 않았고요.

"
이성민은 "(인물의) 전사를 많이 알고 있다고 연기가 되는 건 아니다"라 연기에 대한 본인의 철학을 밝혔다.

"연기를 그렇게 논문 쓰듯이 하진 않아요.

어릴 땐 그렇게 접근해보기도 했어요.

캐릭터를 분석하는 방법에 대한 책을 펴놓고 연기도 해보고, 어떨 땐 캐릭터처럼 일상을 살아보려고도 했고요.

그렇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역할에 대한 데이터가 많다고 해서 연기가 잘 된다면 다 연기를 잘하겠죠. 연기는 알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힘든 거겠죠."

그는 이번 작품에서 만년 국회의원 후보 해웅 역의 조진웅과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펼친다.

이성민은 앞서 제작보고회 등에서 조진웅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이 작품 선택에 큰 영향을 줬다고 여러 차례 밝히며 조진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진웅 씨는 열 번 칭찬해도 아깝지 않은 배우예요.

그의 연기는 나를 설레게 만드는 것 같아요.

나이는 조금 차이가 나는데 배우로서의 궤적이 비슷한 지점이 있어요.

진웅 씨는 부산, 나는 대구에서 활동했고, 비슷한 시기에 방송·영화를 시작했고, 서로 무명일 때 드라마에서 만나서 연기하며 같이 성장해왔죠. 동행하는 느낌이 들어 좋아요.

"
20대 초반 대구에서 극단 생활을 시작하며 배우의 길에 접어든 그는 "나이가 들면서 연기에 대한 태도가 많이 변했다"고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에 대해 알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나를 변주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죠. 또 어릴 때는 역할과 나를 애써 구분하려고 아등바등했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해요.

그냥 하나가 된 느낌이랄까요.

배우로서 자존감이 좀 높아진 탓도 있는 것 같고요.

"

다만 "이제는 젊음을 연기하는 것이 힘들어졌다"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최근에 20년 전 과거 장면을 촬영하는데 힘들더라고요.

목소리 톤도 올려야 하고, 자세도 바르게 해야 하고, 뛰는 것도 잘 뛰어야 하고…. 아, 이제는 젊음을 연기하는 게 더 힘들구나 싶더라고요.

"
이성민은 "나이가 50대 중반을 넘어가니까 30∼40대보다 60∼70대를 연기하는 게 편한 것 같기도 하다"며 "이제는 충분히 그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친일파를 척결하려는 노인,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의 회장, 살인 용의자가 된 베테랑 형사, 정계의 비선 실세까지, 최근 무게감 있는 역할로 잇달아 대중과 만나왔던 그는 "어두운 역할을 많이 한 것 같다"며 이미지 변신을 하고 싶다는 뜻도 내비쳤다.

"좀 밝고 경쾌한 역할을 해야겠다 싶어요.

이제는 그런 거(무거운 연기) 말고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