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지진보험'이 없는 이유 [슬기로운 금융생활]
틔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강진으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전세계가 슬픔에 빠졌습니다. 피해규모가 커지다보니 국내에서도 지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 2017년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크고 작은 지진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죠. 이 같이 예측할 수 없는 사고 발생에 대비할 수 있는 대표적 금융상품에는 보험이 있는데, 정작 국내에는 지진 전용 보험이 없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지, 그렇다면 지진 발생에 대비할 수 있는 금융상품은 없는 지 살펴보겠습니다.

◆ 정책성 '풍수해보험'에서 지진피해 보상

서울시 지진안전포털 등에 따르면 지난 달 기준 서울시내 건축물 약 60만동 가운데 내진설계와 보강공사 등을 통해 일정 기준 이상의 내진 성능을 확보한 곳은 19.5%에 그쳤습니다.

지진위험 노출 가능성은 크지만, 여전히 국내에는 지진 피해만 따로 보장하는 '지진 전용 보험'은 없는 상황. 국내에서 지진 피해를 보상받으려면 정책성 상품인 풍수해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풍수해보험은 행정안전부가 관장하고 민영보험사가 운영하는 소상공인 대상 정책보험으로, 보험가입자가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의 일부를 국가나 지자체에서 보조해 저렴한 보험료로 가입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지진을 비롯해 태풍과 홍수, 호우, 해일, 강풍, 풍랑, 대설 등에 대한 피해를 보상합니다. 가입대상시설물은 주택 또는 온실(비닐하우스), 소상공인의 상가와 공장 등입니다. 단독주택 24평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보험료는 연 5만 원 가량인데, 정부가 약 3만5,000원을 부담하고 가입자는 연 1만5,000원을 부담하게 됩니다.

풍수해보험은 삼성과 현대, DB, KB와 메리츠, NH농협과 한화손해보험 등 7개 손해보험사가 판매 중입니다. 정책상품인 만큼 전국 시군구 재난관리부서나 읍면동 주민센터를 통해 가입 관련 문의를 할 수 있습니다.

◆ 화재보험 특약으로 가능…장기는 불가

정책상품이 아닌 민간보험사의 일반보험으로는 보장이 불가능할까요? 가능하긴 합니다. 지진 발생을 가정했을 때 가장 먼저 피해가 우려되는 것은 주택입니다. 국내 보험사들은 주택의 각종 피해를 보장해주는 주택화재보험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주택화재보험은 우리집의 화재손해나 이웃집에 대한 배상책임 등 생활 속 위험을 보장합니다.

다만 국내 보험상품은 기본적으로 자연재해에 대한 피해는 '면책'으로 규정돼 있습니다. 보장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자연재해는 보험의 보상 범위 밖이라는 기본 틀이 있기 때문이죠. 주택화재보험, 재산종합보험 역시 주계약에는 태풍이나 폭우, 지진 등의 자연재해를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경우 '지진피해'를 보장하는 특약을 추가해 보장범위를 확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현재 1년짜리 일반보험에서는 지진 특약을 추가할 수 있지만, 10년 이상 장기보험은 지진 특약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난 2017년 포항 강진으로 지진 대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지진보험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한 사례가 있습니다. 보험사 입장에선 자연재해인 지진이 발생할 경우 지급해야 하는 보험금 부담 역시 커지기 때문에 판매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겠죠. 결국 해당 특약은 슬그머니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장기보험의 자연재해 특약에 지진은 '면책'으로 규정돼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 수요 낮고 손해율 높은 '지진 담보'

이처럼 보험사들이 지진 담보를 적극적으로 판매하지 않는 이유는 저조한 가입률, 막상 피해가 발생할 경우 손해액 또한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돈이 되지 않는 상품'이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기준 국내 풍수해보험 가입률은 주택의 경우 25% 수준, 온실은 15% 수준에 그칩니다. 주택화재보험 역시 가입률은 10% 미만에 머무릅니다. 한국은 그간 지진 안전지대로 꼽혀왔고 자연재해에 대한 피해 역시 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던 만큼 판매 수요가 높지 않았다는 설명입니다.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엔 지진 전용보험이 있습니다. 지진리스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일본의 지진보험 가입률은 1994년 9.0%에서 2017년말 31.2%, 2019년말 33.1%로 3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판매량은 얼마 되지 않는 반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험사가 지급해야 하는 보험금 규모는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보험사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설명입니다. 실제 주택 피해에 대한 보상뿐만 아니라 시설물 낙하 등으로 인해 타인에게 준 재산피해에 대해서도 배상해주는 담보가 있는 만큼 보험금 규모가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내는 지진에 대한 피해 담보가 상당히 미흡한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지진 등 자연재해와 관련된 기후리스크 대비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주요 과제로 꼽히고 있는 만큼 관련 상품에 대한 정부와 업계의 논의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전망입니다.

★ 슬기로운 TIP

지진은 자연재해에 속하기 때문에 관련 피해에 대한 보장을 받고 싶다면 특약의 범위를 꼼꼼히 살피는 게 중요합니다. 상품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면책항목에 지진이 포함돼 있는 지 확인해야 하고, 보장기간 역시 체크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집이나 물건, 시설물에 대한 피해 보상을 해주는 보험인 만큼 가입 시 재산 가치가 높은 물건은 잊지 않고 보험증권에 기재해야 합니다. 가전 등 가재도구는 가입금액 한도 내에서 피해액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귀금속이나 골동품 등은 보험증권에 따로 적어둬야 추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 '지진보험'이 없는 이유 [슬기로운 금융생활]
장슬기기자 jsk9831@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