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보낸 외교 선물은 어땠을까…"최고 장인이 만든 작품 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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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칠나전이층농' 등 자문한 전문가 평가는…"국호 '조선' 넣어 의미 부각"
나라 밖 우리 문화재 약 23만 점…환수뿐 아니라 현지 활용도 '주목' "국왕이 황제에게 보내는 선물로서는 부끄러울 정도로 빈약하다.
문서국 직원을 쳐다볼 낯이 없었다.
가난한 조선!"
1896년 러시아 니콜라이 2세 황제의 대관식에 참석하고자 사절단으로 방문한 윤치호(1866∼1945)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새 황제를 위한 '외교 선물'을 넘기던 순간이었다.
당시 조선이 제국주의 열강의 틈에 격변의 시기를 겪던 때지만, 정말 그 정도였을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8일 공개한 러시아 크렘린박물관 소장품을 본 전문가들은 고종(재위 1863∼1907)이 특별히 보낸 '최상급의 보물급 선물'이라며 윤치호의 의견을 일축했다.
재단이 보존·복원 비용을 지원한 '흑칠나전이층농'이 대표적이다.
상하 2층으로 된 농을 화려하고도 세밀한 나전 기법으로 장식한 이 유물은 19세기 당시 수준 높은 조선 공예와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유물의 사진, 자료 등을 보고 자문한 김삼대자 전 문화재위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지금껏 본 조선 후기 나전칠기 공예품 가운데 최고"라며 "1893년 미국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나간 농보다 정교하고 아름답다"고 강조했다.
김 전 위원은 공예사적으로 의미 있는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층 농 전반에 걸쳐 실처럼 잘게 자른 상사(일정한 너비로 절단한 자개)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드는 '끊음질' 기법이 정교하게 표현된 점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끊음질은 1920년에 일본에서 실톱이 도입된 이후 유행하게 됐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보다 30여 년 앞서 정교한 끊음질 기법이 활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종의 특명에 따라 당대 가장 뛰어난 장인이 제작한 작품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조선 말기 경남 통영에서 이름 높았던 장인인 엄성봉이 만들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조선 후기 화가 장승업(1843∼1897)의 그림 또한 외교 선물로는 '최고'였다는 평가다.
이번에 공개되는 그림은 '노자출관도'(老子出關圖), '취태백도'(醉太白圖) 두 점이다.
노자출관도는 중국 노장 철학의 창시자인 노자가 주(周) 나라가 쇠퇴한 것을 보고 은거했다는 고사를 담았고, 취태백도는 '이태백'으로 잘 알려진 시인 이백을 소재로 했다.
전문가 자문에 참여한 한국회화사 연구자인 진준현 전 서울대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장승업이 평소 즐겨 그리던 소재이기는 하나, 이 정도로 큰 작품은 드물고 작품 수준도 아주 좋다"고 호평했다.
진 전 연구관은 작품에 남아있는 서명과 인장에도 주목했다.
두 그림에는 '오원 장승업'이라는 서명 앞에 국호인 '조선'(朝鮮)을 붙어 있다.
또, 서명 아래에는 '대원후인오원장승업지인'(大元后人吾園張承業之印)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다.
진 전 연구관은 "조선의 국왕이 외국 황제에 선물로 보내는 의미를 담아 국호를 넣었을 것"이라며 "그런 만큼 자신에 대한 정보를 확실히 남기고자 대원 장씨, 즉 본관을 보여주는 인장도 찍은 듯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승업의 그림을 선물에 포함한 것과 관련해서는 당시 전권공사로 파견된 민영환(1861∼1905)과의 관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귀띔했다.
진 전 연구관은 "궁중 화원으로 그림을 그리던 장승업은 술을 좋아해 종종 궁궐을 몰래 빠져나와 술을 먹었다고 한다.
이에 고종이 노했으나 민영환이 '내가 데려다가 그림을 그리도록 하겠다'고 한 일화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윤치호 일기 기록에 대해서는 "윤치호는 서양 문물에 견문이 많은 사람이다 보니 그렇게 평가한 듯하다.
그러나 장승업의 그림을 실제로 봤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문화재 현장에서는 앞으로 나라 밖 문화재의 활용·지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번에 확인된 크렘린박물관 소장 유물은 2020∼2021년 약 2년간 흑칠나전이층농의 현지 보존처리 작업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 기준으로 파악된 국외 문화재는 총 22만9천655점이다.
이 중에는 불법적으로 빼돌리거나 약탈한 문화재도 있지만, 외교 선물이나 정당한 거래를 거쳐 나간 경우도 적지 않다.
취득 경위에 따라 환수, 보존 지원, 현지 활용 등 다양한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이에 재단은 올해 외교 및 선교 관련 한국 문화재 수집 경위(유럽), 개항 이후 세계박람회 출품 한국 문화재 현황(미국) 등을 주제별로 조사할 계획이다.
또, 문화재 소재 국가와 역사·문화적 가치를 공유하는 'K-공유유산'도 적극적으로 발굴할 방침이다.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외교 선물로 (국외에) 나간 문화재는 당대 최고의 장인이 만든 만큼 현지에서 제대로, 잘 활용하면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나라 밖 우리 문화재 약 23만 점…환수뿐 아니라 현지 활용도 '주목' "국왕이 황제에게 보내는 선물로서는 부끄러울 정도로 빈약하다.
문서국 직원을 쳐다볼 낯이 없었다.
가난한 조선!"
1896년 러시아 니콜라이 2세 황제의 대관식에 참석하고자 사절단으로 방문한 윤치호(1866∼1945)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새 황제를 위한 '외교 선물'을 넘기던 순간이었다.
당시 조선이 제국주의 열강의 틈에 격변의 시기를 겪던 때지만, 정말 그 정도였을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8일 공개한 러시아 크렘린박물관 소장품을 본 전문가들은 고종(재위 1863∼1907)이 특별히 보낸 '최상급의 보물급 선물'이라며 윤치호의 의견을 일축했다.
재단이 보존·복원 비용을 지원한 '흑칠나전이층농'이 대표적이다.
상하 2층으로 된 농을 화려하고도 세밀한 나전 기법으로 장식한 이 유물은 19세기 당시 수준 높은 조선 공예와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유물의 사진, 자료 등을 보고 자문한 김삼대자 전 문화재위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지금껏 본 조선 후기 나전칠기 공예품 가운데 최고"라며 "1893년 미국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나간 농보다 정교하고 아름답다"고 강조했다.
김 전 위원은 공예사적으로 의미 있는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층 농 전반에 걸쳐 실처럼 잘게 자른 상사(일정한 너비로 절단한 자개)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드는 '끊음질' 기법이 정교하게 표현된 점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끊음질은 1920년에 일본에서 실톱이 도입된 이후 유행하게 됐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보다 30여 년 앞서 정교한 끊음질 기법이 활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종의 특명에 따라 당대 가장 뛰어난 장인이 제작한 작품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조선 말기 경남 통영에서 이름 높았던 장인인 엄성봉이 만들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조선 후기 화가 장승업(1843∼1897)의 그림 또한 외교 선물로는 '최고'였다는 평가다.
이번에 공개되는 그림은 '노자출관도'(老子出關圖), '취태백도'(醉太白圖) 두 점이다.
노자출관도는 중국 노장 철학의 창시자인 노자가 주(周) 나라가 쇠퇴한 것을 보고 은거했다는 고사를 담았고, 취태백도는 '이태백'으로 잘 알려진 시인 이백을 소재로 했다.
전문가 자문에 참여한 한국회화사 연구자인 진준현 전 서울대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장승업이 평소 즐겨 그리던 소재이기는 하나, 이 정도로 큰 작품은 드물고 작품 수준도 아주 좋다"고 호평했다.
진 전 연구관은 작품에 남아있는 서명과 인장에도 주목했다.
두 그림에는 '오원 장승업'이라는 서명 앞에 국호인 '조선'(朝鮮)을 붙어 있다.
또, 서명 아래에는 '대원후인오원장승업지인'(大元后人吾園張承業之印)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다.
진 전 연구관은 "조선의 국왕이 외국 황제에 선물로 보내는 의미를 담아 국호를 넣었을 것"이라며 "그런 만큼 자신에 대한 정보를 확실히 남기고자 대원 장씨, 즉 본관을 보여주는 인장도 찍은 듯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승업의 그림을 선물에 포함한 것과 관련해서는 당시 전권공사로 파견된 민영환(1861∼1905)과의 관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귀띔했다.
진 전 연구관은 "궁중 화원으로 그림을 그리던 장승업은 술을 좋아해 종종 궁궐을 몰래 빠져나와 술을 먹었다고 한다.
이에 고종이 노했으나 민영환이 '내가 데려다가 그림을 그리도록 하겠다'고 한 일화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윤치호 일기 기록에 대해서는 "윤치호는 서양 문물에 견문이 많은 사람이다 보니 그렇게 평가한 듯하다.
그러나 장승업의 그림을 실제로 봤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문화재 현장에서는 앞으로 나라 밖 문화재의 활용·지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번에 확인된 크렘린박물관 소장 유물은 2020∼2021년 약 2년간 흑칠나전이층농의 현지 보존처리 작업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 기준으로 파악된 국외 문화재는 총 22만9천655점이다.
이 중에는 불법적으로 빼돌리거나 약탈한 문화재도 있지만, 외교 선물이나 정당한 거래를 거쳐 나간 경우도 적지 않다.
취득 경위에 따라 환수, 보존 지원, 현지 활용 등 다양한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이에 재단은 올해 외교 및 선교 관련 한국 문화재 수집 경위(유럽), 개항 이후 세계박람회 출품 한국 문화재 현황(미국) 등을 주제별로 조사할 계획이다.
또, 문화재 소재 국가와 역사·문화적 가치를 공유하는 'K-공유유산'도 적극적으로 발굴할 방침이다.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외교 선물로 (국외에) 나간 문화재는 당대 최고의 장인이 만든 만큼 현지에서 제대로, 잘 활용하면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