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레몬색 상의…'마라카낭 비극' 계기로 탄생한 삼바축구 상징 '카나리아색'으로 불리는 노란 레몬 빛깔의 브라질 축구대표팀 유니폼이 자국 내에서 때아닌 정치색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23일(현지시간) 소개했다.
최근 치러진 브라질 대선을 계기로 브라질 스포츠를 대표하는 전통적인 상징물에 정치적 진영논리 이미지가 덧칠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도에 따르면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지지자들이 3주 넘도록 이어가고 있는 대규모 선거 불복 시위 현장에서 노란색 혹은 초록색 유니폼 차림을 한 참여자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극우 성향으로 평가받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최근 대선에서 '좌파 대부'로 불리는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에게 석패한 바 있다.
한 보수주의자 축구팬은 "이 셔츠는 국가대표팀이 아닌 브라질 그 자체를 상징한다"며 "룰라 지지자들은 애국심이 없어서 이 옷을 입기를 꺼린다"고 주장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도 선거운동 과정에서 선거일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나와달라고 독려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지난 8월 팟캐스트를 통해 "브라질의 더 많은 부분이 초록색과 노란색으로 뒤덮일 것"이라며 "이는 월드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애국심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일부 국가대표 선수가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지지를 표명하면서 유니폼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 구도가 한층 더 첨예해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WP는 지적했다.
선거 직전 보우소나루 대통령 지지연설에 나선 바 있는 브라질 대표팀의 에이스 네이마르는 캠프의 로고송을 함께 부르는 동영상을 틱톡에 올리는가 하면 "월드컵 골을 대통령에게 바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와 맞물려 룰라 전 대통령을 지지해온 브라질 유권자 사이에서는 점점 축구팀 유니폼을 꺼리는 분위기다.
실제 좌파 축구 팬들이 모인다는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스타디움 인근 술집을 방문해보니 노란색 혹은 초록색 축구팀 저지를 입은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WP는 전했다.
이 가게 소유주인 오마르 몬테이루 주니어는 "저도 노란색 셔츠를 갖고 있고, 예전에는 잘 입었다"면서도 "그들이 셔츠를 전용하는 방식 때문에 지급은 입기 어려워졌다.
이 옷이 브라질 극우의 상징이 돼버렸다"고 비난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 일부 축구 팬들은 대표팀의 대체 색상인 짙은 파란색 유니폼을 사입기도 한다.
정치 평론가 마르쿠스 노브르는 "브라질의 사회 분열상은 월드컵이 끝난다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일부 진보주의자들은 국대 유니폼을 되찾고자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월드컵이 진행되면 대표팀 응원에 있어서만큼은 브라질 국민들이 다시 하나로 뭉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차기 대권을 거머쥔 룰라 전 대통령은 "우리는 녹색과 노란색의 셔츠를 입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며 월드컵 기간 대표팀 유니폼을 입겠다고 밝혔다.
스포츠 해설가인 주카 키프리는 "네이마르가 이번 월드컵에서 활약한다면 좌파도 그를 용서하고 우상으로 떠받들 것"이라며 "거리 응원을 하면서 서로 누구에게 투표했느냐고 묻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 흰색 상·하의를 입고 경기에 나섰던 브라질 대표팀이 유니폼을 교체하게 된 것은 1950년 자국에서 개최된 제4회 월드컵 결선 라운드 최종전에서 우루과이와 맞붙어 역전패로 우승에 실패하는 이른바 '마라카낭의 비극'이 계기가 됐다.
당시 일부 관중이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당시 경기 결과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던 터다.
여기에 흰색 유니폼이 국가의 정체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1953년 '코헤이우 다 마냥' 신문사가 브라질 국기의 4가지 색깔(노란색·파란색·흰색·녹색)을 활용한 새로운 유니폼 디자인을 공모했다.
저술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아우지르 가르시아 슐레는 100여 가지 조합을 따져본 결과 노란색 셔츠에 파란색 바지로 된 디자인을 제출해 당선됐고, 이 유니폼은 '삼바 축구' 브라질 대표팀의 상징이 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