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레고랜드 및 흥국생명 콜옵션 사태 등을 거치며 얼어붙은 단기 금융시장에 대해 우려했다. 시장금리 급등 수준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관련 위험이 노출된 금융사 지원에 대해서도 선제적으로 지원해 어려움을 막으면 좋지만 도덕적 해이(모럴 헤저드)를 막기 위해 원칙은 지켜야 한다고 했다.

24일 이 총재는 기준금리 결정 직후 가진 통화정책 방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단기 금융시장에 과도한 신뢰 상실이 발생해 시장금리가 예상보다 더 올랐다"며 "부동산 자산유동화 기업어음(ABCP)에 대한 쏠림현상이 계속되고 있어 미시적 정책으로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로 불리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자산담보부 기업어음(PF-ABCP) 사건은 이달 기준금리 인상폭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 총재는 1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데 대해 "경기 둔화 정도가 8월 전망치에 비해 커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환율 등 외환부문의 리스크가 완화되고 단기금융시장이 위축된 점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얼어붙은 단기 금융시장은 정부가 '50조원+알파(α)’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놨음에도 안정세를 찾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기업어음(CP) 금리는 연일 연중 최고치를 찍고 있고, PF-ABCP 금리는 연 20% 수준까지 올랐다.

이 총재는 관련 위험에 노출된 기업에 대해 선제적인 지원을 통해 어려움을 막으면 좋겠지만 반드시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기업의 도덕적 해이(모럴 헤저드)를 야기해선 안된다"며 "그동안 벌었던 돈으로 스스로 구제책 마련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김범준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김범준 기자
이창용 총재는 당분간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해야 하며, 금리인하 논의는 시기상조라고도 했다. 5%대의 높은 물가상승률이 지속되는 데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통화 긴축 정책을 지속하고 있어서다. 이날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한미간 금리차는 0.75%포인트로 좁혀졌다.

그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시장의 예상을 깨고 12월 자이언트 스텝(0.75%p 금리인상)을 밟아 한미 금리차가 벌어져도 12월 임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가 열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했다.

이 총재는 187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는 "금리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가운데 부채가 계속 쌓이는 것은 국가경제 전체에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도 "가계의 부채의 증가 속도가 꺾인 점은 금리인상이 긍정적 효과를 보인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계 뿐 아니라 기업 부채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업 대출이 코로나19 위기 이후 상당폭 늘어났고 중간재 상승으로 운영자금 등에 필요한 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은행은 이날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내년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연 2.1%에서 1.7%로 0.4%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이 총재는 "성장률을 하향했지만 일각에서 제기되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불황 속 물가상승) 가능성이나 위기 상황은 아직 아니다"며 "전 세계 경기둔화 여파에 보수적으로 성장률을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성장률 하향 조정의 90% 이상 요인은 수출 둔화"라며 "내년 상반기 이후 중국의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고 반도체 경기가 3분기 이후 개선될 것을 예상하면 하반기엔 2% 이상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