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50여 점 청자 유물 전시…중요 가마터 출토 조각 등도 활용 은은하면서도 맑은 빛. 1123년 고려를 찾은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이 송나라 청자의 색과 구별하면서 불렀다는 '비색'(翡色)은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뜻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사전적 의미 자체가 '고려청자의 빛깔과 같은 푸른색'인데,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감상평을 남기게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 선생은 그 색을 '비가 개고 안개가 걷히면 먼 산마루 위에 담담하고 갓 맑은 하늘빛'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천년이 지나도 찬란한 빛을 내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로 자리 잡은 고려청자가 한 공간에 모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약 1년에 걸쳐 새로 단장한 상설전시관 3층 청자실을 22일 언론에 공개했다.
재개관을 하루 앞두고 이날 찾은 청자실에는 국보 12점, 보물 12점 등 총 250여 점의 청자 유물이 관람객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박물관 측은 "고려는 불과 150여 년 만에 자기 제작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고려청자의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했다"며 "고려청자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새로 꾸민 청자실의 핵심은 제2의 '사유의 방'이 부를 수 있는 '고려비색' 공간이다.
'사유의 방'이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두 점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면 '고려비색'은 비색청자 중에서도 조형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상형청자(특정한 대상의 형태를 본뜬 청자)의 매력을 극대화한 곳이다.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청자 사자모양 향로' 등 국보 5점, 보물 3점 등 총 18점의 청자가 함께 전시됐다.
어둑한 배경의 '고려비색'은 시각적 요소를 최대한 줄여 비색 청자의 매력에 온전히 빠져들도록 했다.
다른 전시실보다 다소 어두운 이곳에 들어서면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인 다니엘 카펠리앙이 작곡한 음악 '블루 셀라돈'(Blue Celadon)이 나지막하게 펼쳐졌다.
눈과 귀를 집중해 비색에 깃든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하기 위함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고려비색' 공간이 전하는 메시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공감과 마음의 평온"이라며 "마치 명상을 하듯 자신과 마주하며 마치 비색 청자와 하나가 되는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새 청자실에서는 고려청자의 제작 기법, 실제 쓰임새 등도 함께 볼 수 있다.
그간 청자실에서 보여주지 않던 청자 조각 등을 활용한 점은 작지만 큰 변화다.
초기 가마터를 비롯해 중요 가마터에서 출토된 조각 등은 자기 제작의 시작과 완성을 보여주는 자료가 될 예정이다.
또, 전북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수집된 상감청자 조각도 함께 선보였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청자는 현재 완전한 형태가 전해지지 않아 더욱 가치가 있다.
청자 조각에는 파초잎에서 쉬는 두꺼비, 왜가리가 노니는 물가 풍경 등이 묘사돼 있어 시선을 붙들었다.
박물관은 점자 지도, 촉각 전시품 등을 함께 설치해 취약계층도 편히 관람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박물관은 "자연을 사랑하고 동경했던 고려인의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구현한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평온하고 고요한 휴식 한 조각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