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로펌에 자문받았지만 대비 미흡…정일영 의원 "철저한 분석 필요"
美원전기업 소송 예측못했나…폴란드 수출추진 결정때 논의안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지난해 폴란드 원전 수출 추진을 최종 결정하기 위해 개최한 회의에서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가 수출통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당시에도 웨스팅하우스가 우리나라 기술의 지식재산권을 문제삼은 만큼 보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가 14일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한수원의 '폴란드 신규원전사업 해외사업 검토회의 개최결과 보고' 자료에 따르면 한수원은 지난해 5월 17일 7개 부서 중 6개 부서장의 동의를 받아 폴란드 원전 수주 사업을 추진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는 재원 조달과 관련한 리스크 등을 검토했을 뿐 미국연방규정(CFR)의 수출통제 조항에 따른 소송 가능성은 논의 안건에 포함되지 않았다.

한수원은 폴란드 원전 수주 사업 세부계획에 대한 보고서에서도 "노형 공급자의 49%의 지분 투자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재원 조달을 위한 노력과 함께 면밀한 리스크(위험성) 검토가 필요하다"는 종합 의견만 제시했을 뿐 소송 리스크는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개발한 APR1400 및 APR1000 원전에 사용한 기술이 수출통제 대상에 해당한다며 지난달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연방규정 제10장 810절은 민감 원자력 기술에 해당하지 않는 원전 기술을 외국에 수출할 경우 수출 후 30일 이내에 사후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한수원처럼 미국 기업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은 외국 기업이 기술을 재이전하는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美원전기업 소송 예측못했나…폴란드 수출추진 결정때 논의안돼
그러나 한수원은 지난 2020년 이러한 수출통제 조항과 관련해 미국 로펌으로부터 법률 자문을 받았음에도 웨스팅하우스의 소송 가능성을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수원이 지난 2020년 3월 미국 로펌 호건 러벨스로부터 받은 법률 자문 결과 자료에는 "CFR 조항에 따라 일반허가대상국으로 원전 기술을 재이전할 때는 미국 에너지부에 정기적으로 해당 기술의 재이전 현황을 보고하는 것이 최선으로 여겨진다"고 언급돼있다.

한수원 측은 이와 관련해 "폴란드와 체코는 수출 사후 보고만 하면 되는 국가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미 에너지부에 현황 보고 등을 하지 않았다"며 "웨스팅하우스는 원전 사업 입찰서를 제출하는 단계에서부터 기술이 재이전된다고 보고 수출통제를 요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일영 의원은 "에너지 공기업의 전략사업은 거액의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복합적 계약과 발전(發電) 상황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한수원의 폴란드 원전 수출 추진 과정에서도 미진한 부분이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웨스팅하우스의 소송이 폴란드 뿐 아니라 체코,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나라 원전 수출에도 영향을 줄 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수원은 폴란드 정부 주도로 추진되는 6∼9GW(기가와트) 규모 가압경수로 6기 건설 사업 수주전에서는 웨스팅하우스에 밀렸지만, 퐁트누프 지역에 건설될 민간 주도 2∼4기 규모 원전은 수주를 사실상 확정지은 상태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폴란드 정부가 퐁트누프 원전 사업 협력의향서(LOI)를 한수원과 체결한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간 직후 웨스팅하우스가 소송을 제기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한전·한수원은 2007년 이후 웨스팅하우스 측과 향후 기술사용권에 대한 명료한 협약을 체결한 바 없어 향후에도 분쟁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