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타워 / 사진=연합뉴스
남산 타워 / 사진=연합뉴스
난생처음 서울 남산에 올랐다. 올랐다기보다 ‘갔다’가 맞다. 부모님과 케이블카를 타고 갔으니 말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다. 같은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동생과 함께다. 까만 교복을 입은 두 아들을 쳐다보며 아버지가 좋아했다. 남산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서울은 한양 조씨 본향이다. 9대 말손(末孫) 할아버지 때 ‘벼슬길에 나서지 말라’는 선조의 유훈을 좇아 충주를 거쳐 14대 진(瑨) 할아버지 때 제천을 세거지(世居地)로 삼았다. 내가 25대니 거의 500년 유훈을 받들었으면 됐다 싶어 서울로 왔다. 이제부터 내가 ‘서울 조씨’ 시조다.” 서울로 온 지 1년 되는 날 두 아들을 데리고 남산을 찾은 아버지는 하고 싶은 말씀을 이어갔다. “내가 서울에 보따리를 풀어놨다. 너희는 서울을 시작으로 전 세계 어디든 살고 싶은데 가서 살아라.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너희 앞날을 발목 잡고 싶지 않다.”

아버지는 좌청룡 우백호(左靑龍 右白虎) 풍수를 따라 지은 경복궁을 가리켰다. 왼편의 인왕산과 오른쪽의 낙산을 가리키던 아버지는 임금이 앉은 자리에서 보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것과 좌우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나를 중심으로 보되 언제나 상대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통치자는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아 한쪽에서만 보려 한다고도 했다. 보고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고도 했다. 이편에서는 옳지만, 저편에서 보면 틀릴지도 모르니 언제나 올바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에 ‘~보다’가 붙은 말이 많은 건 그만큼 보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냥 보다’가 아니라 ‘똑바로 보다’가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버지가 서울역 쪽으로 반짝이는 산자락을 가리키며 “뭔지 보이느냐”고 물었다. 반짝이기만 하고 또렷하게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하산해 보니 석축이었다. 숭례문에서 남산을 오르다 처음 만나는 석축을 쌓은 돌은 아버지가 납품한 거였다. “고향 뒷산의 질 좋은 화강암이다. 내 바람을 차곡차곡 다지듯 쌓아 올린 거니 언제까지나 너희를 지켜줄 거다”란 말씀도 했다. 중국집 동보성에서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킨 아버지가 먼 길을 떠나시는 표정으로 비장하게 말씀하셔서 기억에 남는다. “인간사 거의 모든 분란(紛亂)과 갈등은 잘 못 보는 데서 생긴다. 오독(誤讀)이 오해를 낳는다. 똑바로 보아라”라며 아버지는 “다리를 다친 걸 천만다행으로 여긴다. 눈을 다쳤으면 어쨌겠냐 싶다. 우리 뇌가 처리하는 정보의 85%는 보는 데서 온다. 우리 눈은 매시간 3만6천 개의 시각 메시지를 등록한다”라고 강조했다.

집에 돌아와서 똑바로 보는 방법으로 일러준 성어가 ‘대관소찰(大觀小察)’이다. ‘관찰(觀察)’에 ‘대소(大小)’를 넣어 당신이 만들었다고 했다. “대관하면 소찰하고, 소찰하면 반드시 대관하라”며 “대관이 먼저다. 소찰하고 대관하면 방향이 틀릴 수 있다. 속도는 따라잡을 수 있어도 방향이 틀리면 따라잡기 어렵다”고 대관을 강조했다. “같은 것을 봐도 눈여겨 살펴보지 않으면 보는 게 서로 다르다. 남산에서도 보았듯이 가시거리는 10km 남짓이다. 다 보기에는 눈이 모자란다. 명확히 보이는 건 고작 200m다.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날 말씀이 길었다. “똑바로 보고 잘못 본 거 같으면 다시 봐라. 미심쩍으면 꼭 지켜봐라”라는 말씀으로 끝을 맺었다. “보지 않아야 할 것은 보지 마라. 확신이 설 때까지 여러 번 봐라.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보는 건 안 보는 것만 못하다. 착시(錯視)는 일을 그르치는 시작점이다”라는 말씀은 이튿날 했다.

아버지는 똑바로 보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게 평정심(平靜心)이라며 내가 들떠 있으면 정시(正視)가 어렵다고 했다. 감정의 기복이 없이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해야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돌아봐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남산 석축을 둘러본다. 올바르게 보려는 품성과 침착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인성은 쉬이 얻어지지는 않지만, 곱씹어봐도 꼭 갖춰야 할 습관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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