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대조건 까다로워 '그림의 떡' 지적도…저축은행은 이미 5%대 상품이 대세
시중자금, 은행 정기예금에 몰려…이달에만 16조원 증가
은행 예적금 금리도 '빅스텝'…연 5% 대세에 7% 우대상품도
광화문에 직장을 둔 40대 남성 A씨는 요즘 주식 거래창을 들여다본 지 오래다.

지난해 초 여유자금이 생긴 A씨는 당시 연 1%대 이자를 주던 은행 예금에 돈을 넣어두느니 최소 예금 금리 이상을 기대하고 업종 대표주인 삼성전자와 네이버 주식을 매수했다.

그러나 지난해 중반 이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랠리가 시작됐고, 올해 들어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A씨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삼성전자 수익률은 -20%, 네이버는 반 토막이 났다.

반면 최근 한은이 두 번째 '빅 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서 시중은행 예금 금리는 연 5%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A씨는 "업종 대표주인 만큼 안정성이 있으면서도 최소 예금 금리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하고 삼성전자와 네이버 주식에 투자했다"면서 "막상 주식은 마이너스 수익률이 난 반면, 은행 예금금리는 5%대로 오른 걸 보니 지금이라도 자금을 옮겨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부동산·주식 등 자산시장이 부진한 가운데 한은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수신(예금) 금리가 따라 오르면서 시중 자금이 은행으로 되돌아오는 '역(逆) 머니무브'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 주요 시중은행 예금 금리 5% 눈앞…저축은행은 이미 '5% 시대'
지난 12일 한은이 사상 두 번째 빅 스텝을 밟자 주요 시중은행들은 일제히 예·적금 금리를 0.3∼1%포인트(p) 상향 조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시중은행에서는 누구나 최고금리를 받을 수 있는 대표 예·적금 상품 기준으로 금리가 연 5%에 육박하고 있다.

일단 지난 14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대표 예금 상품 중 가장 높은 금리를 적용하고 있는 곳은 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이다.

하나은행의 대표 정기예금 상품 '하나의 정기예금'의 경우 기준금리 인상 전후로 시장금리를 반영해 1년 만기 기준 연 4.60%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별개로 하나은행은 오는 20일부터 예·적금 등 총 29종 수신상품의 금리를 최대 0.95%포인트 인상해 적용할 예정이다.

NH농협은행의 'NH올원e예금' 역시 별다른 우대조건 없이도 연 4.60% 금리를 제공한다.

신한은행의 '쏠편한 정기예금'의 1년 만기 금리는 연 4.55%다.

불과 한 달 전인 지난달 14일(연 3.55%)과 비교하면 1%포인트 올랐다.

우리은행은 한은 기준금리 인상을 반영해 지난 13일부터 19개 정기예금과 27개 적금 상품의 금리를 최대 1%포인트 인상했다.

대표상품인 '우리 WON플러스 예금'은 기본금리만으로도 1년 만기 기준 연 4.52%를 적용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대표 예금 상품인 'KB Star 정기예금' 금리는 연 4.18%다.

국민은행은 매달 1회 이상 시장금리 변동을 점검해 기본금리에 반영하는데, 한은 빅 스텝을 고려해 다음 주 중 수신상품 금리 인상을 단행할 예정이다.

저축은행업계에서는 이미 연 5%대 예금 금리 상품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JT친애저축은행은 지난 13일부터 비대면 정기예금 금리를 1년 만기 기준 0.6%포인트 올린 연 5.0%를 적용하고 있다.

다올저축은행의 'Fi 리볼빙 정기예금' 금리는 지난 14일 0.85%포인트 상향조정되면서 현재 연 5.20%까지 올랐다.

한국투자·키움·고려·HB 저축은행 등도 지난 13∼14일 연 5%대 수신 상품을 선보였다.

저축은행 업계 1위와 2인인 SBI저축은행과 OK저축은행은 현재 내부적으로 수신 금리 인상을 검토한 뒤 조만간 5%대 상품을 선보일 것으로 전해졌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예대금리차 공시를 의식해 과도하게 수신 금리를 올리는 것 같다"면서도, 저축은행 업계 역시 금리 인상 대세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은행 예적금 금리도 '빅스텝'…연 5% 대세에 7% 우대상품도
◇ 우대금리 시 7% 상품도…달성 조건은 까다로워
특정 조건을 만족할 경우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은행 예·적금 상품의 경우 이미 연 5%를 넘어 연 7∼8% 고금리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급여를 신한은행에 처음으로 입금하고 적금 상품에 신규 가입하는 등 첫 거래 고객을 위한 '신한, 안녕 반가워 적금'의 금리를 지난 14일 연 4.8%에서 연 5.2%로 인상했다.

주택청약종합저축에 함께 가입하고 연말까지 특별금리 적금 이벤트에 응모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신한 마이홈 적금' 금리는 기존 연 5.5%에서 연 5.8%로 상향 조정됐다.

하나은행의 '내집마련 더블업적금'은 기본금리 연 1.75%에 각종 우대금리를 더하면 연 5.5%까지 금리가 높아진다.

우리은행의 '우리페이 적금'은 기본금리 연 2%에 우대금리 연 5%를 더하면 1년 만기 기준 최고 연 7%의 금리가 적용되고, NH농협은행의 'NH걷고싶은 대한민국 적금'은 14일 기준 연 7.1%, 'NH1934월복리적금'은 연 6.6%의 고금리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이런 고금리 상품은 우대금리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실제로 최고 금리를 받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하나은행의 '내집마련 더블업 적금'은 연 5.50% 금리를 주지만, 하나은행의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한 날 단 하루만 가입할 수 있어 가입 조건 자체가 까다롭다.

'우리페이 적금'은 적금 신규일부터 만기일까지 우리페이 계좌결제서비스를 200만원 이상 사용하고 급여이체 실적을 10개월 이상 충족해야 하는데, 우리페이 가맹점 자체가 많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공원공단과 함께 출시한 'NH걷고싶은 대한민국 적금'의 최고금리를 적용받으려면 설악산과 올레길 등에서 위치인증을 받고, 국립공원에서 자원봉사를 한 뒤 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이벤트성으로 고금리를 주는 은행도 있다.

케이뱅크는 오는 31일까지 케이뱅크 앱을 통해 입출금통장에 신규가입한 고객을 대상으로 '특별금리 룰렛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홈페이지 혜택존에서 룰렛을 돌릴 경우 연 5%와 6%, 8%, 10% 네 종류 중 하나의 특별금리에 당첨돼 이를 '코드K자유적금'에 적용한다.

은행 예적금 금리도 '빅스텝'…연 5% 대세에 7% 우대상품도
◇ 5대 은행 예금 수신액 보름도 안돼 16조 증가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 은행들도 예·적금 금리를 잇달아 더 올리는 추세인 만큼 시중 자금이 은행으로 되돌아오는 '역(逆)머니무브' 흐름은 더 빨라질 전망이다.

역머니무브는 시중자금이 증시 등 위험자산에서 빠져나와 은행 등 안전한 투자처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은행 내에서도 금리가 낮은 수시입출식예금에서 정기예금 등으로 자금이 옮겨가고 있다.

한은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수신 잔액은 2천245조4천억원으로 8월 말보다 36조4천억원 늘었다.

특히 정기예금이 32조5천억원이나 급증했다.

2002년 1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월 기준 역대 최대 증가 폭이다.

반면 수시입출식예금에서는 3조3천억원이 빠져나갔다.

자금이 정기예금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 예적금 금리도 '빅스텝'…연 5% 대세에 7% 우대상품도
10월 들어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3일 기준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776조2천859억원으로 전달 말(760조5천44억원)과 비교하면 보름도 안 되는 기간에 15조7천815억원 증가했다.

이달 빅 스텝에 이어 오는 11월 한은 금통위에서도 추가 금리 인상이 확실시되는 만큼 안정성과 함께 5%대 이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은행 정기예금으로 자금이 더 쏠릴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한은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수신상품 금리를 신속하게 올렸다"면서 "금리 상승기에 시장금리를 상품에 즉시 반영해 고객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