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12월 13일까지 '갓 쓰고 미국에 공사 갓든 이약이' 전시
초대 공사 박정양·관원 활동 조명…조선인 최초로 그린 미국 풍경 등 공개
상투에 갓 쓰고 美 도착…140년 전 조선 외교관들의 고군분투기(종합)
1887년 11월 조선을 떠나 배를 탄 '그들'은 일본과 홍콩, 하와이를 거쳐 1888년 1월 드디어 미국 땅을 밟았다.

이후 대륙 횡단 철도를 타고 한참을 달린 뒤에야 이들은 수도 워싱턴 D.C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육지와 바닷길을 모두 합쳐 약 1만5천400㎞, 주미조선공사관 관원들이 거쳐야 했던 59일 간의 여정이다.

머나먼 낯선 땅에서 조국의 자주 외교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옛 외교관들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가 열린다.

국립고궁박물관은 한미 수교 140주년을 맞아 한미 수교 관련 기록물을 다룬 '갓 쓰고 미국(米國)에 공사(公使) 갓든 이약이' 특별전을 이달 14일부터 12월 13일까지 선보인다고 13일 밝혔다.

상투에 갓 쓰고 美 도착…140년 전 조선 외교관들의 고군분투기(종합)
조선은 1882년 5월 22일 서양 국가 중 처음으로 미국과 외교 협정을 맺었다.

이에 따라 수도 한성(서울) 정동에 미국공사관이 문을 열었고, 1888년에는 워싱턴에 주미조선공사관이 세워졌다.

이듬해 이전한 공사관은 1905년까지 약 16년간 외교 활동의 중심 무대가 됐다.

전시는 올해 5월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주미조선공사관 관련 이상재 기록'을 주로 다룬다.

독립운동가 월남(月南) 이상재(1850∼1927)가 1880년대 미국 조선공사관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하던 무렵 작성한 이 자료는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使往復隨錄)과 '미국서간'(美國書簡) 등으로 구성돼 있다.

'미국공사왕복수록'은 미국 정부와 주고받은 문서의 한문 번역본과 외교 업무 수행에 필요한 자료를 정리한 것이다.

'미국서간'은 이상재가 1887년 9월부터 1889년 2월까지 가족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전시에서는 두 기록물을 중심으로 초대 주미전권공사를 지낸 박정양(1841∼1905)과 공사 관원들의 외교 활동을 엿볼 수 있는 유물 35건이 공개된다.

관람객은 먼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뒤 조선이 '답례'로 미국에 파견한 외교 사절인 보빙사(報聘使)의 활동을 담은 영상을 만날 수 있다.

상투에 갓 쓰고 美 도착…140년 전 조선 외교관들의 고군분투기(종합)
첫 부분 '자주 외교를 향한 노력, 첫발을 내딛다'에서는 박정양과 관원들이 청나라의 간섭을 뚫고 1888년 워싱턴 D.C.에 도착해 상주 공사관을 연 뒤 독자적인 외교 활동을 펼치려는 모습을 조명한다.

전시품 중에서는 워싱턴에서 찍은 '초대 주미공사관원 일행' 사진과 수행원이자 서화가였던 강진희가 그린 '화차분별도'(火車分別圖) 등이 눈에 띈다.

기차가 달리는 풍경을 수묵으로 그린 '화차분별도'는 한국인 화가가 처음으로 미국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공사관의 실내 분위기를 연출한 부분 역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집무실처럼 꾸민 전시 공간에는 책상 위에 시계와 붓 등 필기구를 놓고 '미국공사왕복수록'과 '미국서간'을 뒀다.

벽에는 강진희가 고종과 순종의 탄신일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그림 두 점이 나란히 걸려있다.

낯선 땅에 도착한 외교관들의 좌충우돌 이야기도 엿볼 수 있다.

전통 관복을 입거나 상투에 갓을 쓴 이들의 모습에 미국인들은 서로 사진을 찍겠다고 나섰고, 혹시 동양 어떤 나라의 여자가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는 모두가 공포에 질려 '지진이 일어났다'고 외치기도 했다고 한다.

2부 '본격적인 외교 활동을 펼치다' 부분에서는 박정양이 청나라의 압력에 의해 조선으로 소환된 뒤 1889년 2월 두 번째 공사관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는 모습을 현지 언론 기록 등으로 살펴본다.

상투에 갓 쓰고 美 도착…140년 전 조선 외교관들의 고군분투기(종합)
대한제국기 우편과 전신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인 '우전선로도본'(郵電線路圖本), 근대적인 교통수단인 전차의 운행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전시의 마지막은 현재 워싱턴 D.C. 로건 서클에 남아있는 두 번째 공사관 모습을 비춘다.

이 공사관은 1910년 일제에 소유권을 빼앗겼으나 2012년 정부와 민간의 노력으로 되찾았고, 보수·복원을 거쳐 2018년 당시 모습을 재현한 전시실 형태로 개관했다.

김충배 전시홍보과장은 "조선은 자주적 국가로서 당당히 외교적 지위를 확보하려 노력했다"며 "140년 전 미국을 처음 방문한 조선 외교관들의 통해 근대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이들의 노력과 당시 시대상을 돌아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개막식에 참석한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는 "한미 양국 간의 깊은 관계는 1882년 조약 이후 지속해서 발전, 확대해왔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한미 동맹을 향해 "전 세계를 아우르는 깊고 포괄적이며 전략적인 관계"라고 말했다.

상투에 갓 쓰고 美 도착…140년 전 조선 외교관들의 고군분투기(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