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욕심, 공광규
[한시공방(漢詩工房)] 욕심, 공광규
[원시]
욕심


공광규


뒤꼍 대추나무는
약한 바람에 허리가 뚝 꺾였다

사람들이 지나며 아깝다고 혀를 찼다

가지에 벌레 먹은 자국이 있었나?
과거에 남모를 깊은 상처가 있었나?
아니면 바람이 너무 드셌나?

그러나 나무 허리에선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너무 많은 열매를
나무는 달고 있었다

[태헌의 한역]
慾心(욕심)

後院一棗樹(후원일조수)
弱風腰忽折(약풍요홀절)
人衆時來往(인중시래왕)
哀惜頻嘖舌(애석빈책설)
枝或有蟲食(지혹유충식)
風或甚猛烈(풍혹심맹렬)
然而樹腰邊(연이수요변)
全然無所缺(전연무소결)
嗟乎吾始覺(차호오시각)
樹實太多結(수실태다결)

[주석]
· 慾心(욕심) : 욕심.
· 後院(후원) : 후원, 뒤꼍. / 一棗樹(일조수) : 한 그루의 대추나무.
· 弱風(약풍) : 약한 바람. / 腰(요) : 허리. / 忽(홀) : 문득. 원시의 “뚝”에 대한 대응어로 역자가 임의로 골라본 한자이다. / 折(절) : 꺾이다, 부러지다.
· 人衆(인중) : 사람들. / 時(시) : 이따금. / 來往(내왕) : 오고가다, 오가다.
· 哀惜(애석) : 불쌍하게 여기다, 아깝게 여기다. / 頻(빈) : 자주.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嘖舌(책설) : 혀를 차다.
· 枝或(지혹) : 가지가 혹시, 가지에 혹시. 여기서 ‘或’은 ‘어쩌면’이라는 뜻으로 가벼운 의문을 나타낸 말로 이해하면 된다. / 有蟲食(유충식) : 벌레 먹은 것이 있다, 벌레 먹은 데가 있다.
· 風或(풍혹) : 바람이 혹시. / 甚(심) : 심하다, 심하게. / 猛烈(맹렬) : 맹렬하다, 드세다.
· 然而(연이) : 그러나. / 樹腰邊(수요변) : 나무 허리 주변, 나무 허리 근처.
· 全然(전연) : 전혀, 도무지. / 無所缺(무소결) : 결점이 될 바가 없다, 흠 잡을 것이 없다. ※ 이 구절은 원시의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를 역자가 임의로 한역한 표현이다.
· 嗟乎(차호) : 아아! / 吾始覺(오시각) : 내가 비로소 ~을 알다. ‘覺’의 목적어는 아래 구절 전체가 된다. ※ 이 구절은 원시의 마지막 연 2행을 간략하게 한역시 1구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역자가 임의로 보충한 표현이다.
· 樹實太多結(수실태다결) : 나무 열매[樹實]가 너무[太] 많이[多] 맺히다[結]. ※ 이 구절은 원시의 제5연을 간략하게 표현한 것이다.

[한역의 직역]
욕심

뒤꼍 대추나무 한 그루
약한 바람에 허리가 문득 꺾였다
사람들이 이따금 오가며
아깝다며 자주 혀를 찼다
가지에 혹 벌레 먹은 게 있었나?
바람이 혹 심하게 드세었던가?
그러나 나무 허리 주변에선
흠 잡을 것이 전혀 없었다
아아, 내가 비로소 알았다
나무 열매가 너무 많이 달렸던 거다

[한역노트]
역자의 시골집 텃밭에는 대추나무가 한 그루도 없고, 감나무가 동네에서 제일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역자는 어린 시절에 감이라는 말보다는 대추라는 말을 훨씬 더 많이 들으면서 자랐다. 그도 그럴 것이 할아버지의 택호가 바로 “대추골”이셨기 때문이다. 다들 눈치 챘겠지만 역자의 할머니가 대추골에서 역자의 고향 마을로 시집을 오셨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택호가 “대추골”이 되었던 것이다. 길거리에서 어른들과 마주치면 어른들이 역자의 이름은 몰라도 어느 집 손자라는 것은 대개 아셔서, “니가 대추골네 손자(孫子)지?”라고 하시기 일쑤였으니 대추라는 소리를 도무지 듣지 않을래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할배는 왜 태꼬[택호의 아이들 발음]에 맛도 없는 대추가 들어가요?”라고 했다가 할아버지한테 호되게 혼이 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그 어린 나이에 혼이 나는 와중에도 어렴풋하게나마 대추골이 할머니가 태어나신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할머니의 친정, 곧 아버지의 외가를 진외가(陳外家)라고 한다는 것을 안 건 한참 뒤의 일이었지만, 역자는 죄스럽게도 지금껏 진외가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 진외가에 이제는 할머니의 자취가 하나도 없다 하여도, 언제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 번 찾아가볼 요량이다.

역자의 고향집에는 없었던 대추나무가 시인의 집 뒤꼍에는 있었다. 그리하여 이 시가 지어지게 되었던 것이지만, 시인의 집이 시골인지 도회인지는 이 시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시골 생활을 얼마간 해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그리 세지 않은 비바람에도 과실나무의 가지가 찢어진 것을 가끔은 보았을 것이다. 나무에 유난히 과실이 많이 달렸을 경우, 역자의 고향 쪽에서는 좀은 독특하게, “(가지가) 째지도록[찢어지도록] (열매가) 달렸다”는 표현을 즐겨 쓰고는 하였다. 그러나 역자는 스무 살이 되기 직전까지 시골에 살면서도 대추나무가 과실의 무게 때문에 허리가 꺾어진 것을 본 적은 없다. 짐작컨대 시인의 집 뒤꼍에 있었던 대추나무는 비교적 곧게 올라가 가지를 뻗었다기보다는, 처음부터 다소 구부정하게 자라고 있었을 공산이 크다. 어쨌거나 뒤꼍의 대추나무 허리가 꺾어지게 된 불상사가 이 시의 출발점이 되었을 것임은 틀림없다.

시인은, 대추나무의 허리가 꺾어진 것이 허리 자체의 문제나 바람 때문이 아니라 대추나무가 과도하게 달고 있었던 열매 때문이라고 하였다. 임계치(臨界値)를 넘은 그 과도함, 곧 욕심이 결국 문제가 되었다는 뜻이다. 대추나무가 열매를 많이 단 것이 대추나무의 욕심이 아니라 천성이라 하더라도, 결과를 놓고 보자면 그 천성이 마침내 자신을 상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으므로, 임계치를 넘긴 천성은 달리 욕심으로 간주할 수도 있겠다.

욕심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부정적인 가치 가운데 하나지만, 기실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쉽사리 내려놓지 못하는 것 가운데 하나로 규정할 수 있다. “내려놓으라.”는 뜻의 불교 용어인 방하착(放下着)이 집착을 두고 한 말이라 하더라도, 이 욕심에 대한 처방으로 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욕심이 대추나무처럼 자신만을 해롭게 할 뿐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만을 위하는 거개의 욕심은 필연적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를 약화시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욕심은 결국 공존을 불편하게 만드는 하나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 시는, 열매를 지나치게 많이 달고 있었을 뒤꼍의 대추나무가 그리 세지도 않은 바람에 허리가 꺾인 것을 시인이 목도하고, 그 나무의 일을 사람의 일로 옮겨와 철리(哲理) 하나를 오롯이 우리에게 들려준 것이니, 따지고 보면 그 대추나무는 죽어가면서 우리에게 참 교훈 하나를 남긴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듯하다.

역자는 5연 10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10구로 구성된 오언고시로 한역하였다. 이 과정에서 단행(單行)으로 된 제2연은 2구의 한시로 늘려 번역하고, 두 행으로 된 제5연은 1구의 한시로 줄여 번역하였으며, 제3연의 제2행인 “과거에 남모를 깊은 상처가 있었나?”는 한역시의 행문(行文)을 고려하여 부득이 한역을 생략하였다. 이 한역시는 짝수구마다 압운하였으므로, 그 압운자는 ‘折(절)’, ‘舌(설)’, ‘烈(열)’, ‘缺(결)’, ‘結(결)’이 된다.

2022. 10. 11.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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