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즌 치르느라 조금은 지친 상태"…휴식과 격려가 필요한 시간 우상혁(26·국군체육부대)은 '현역 최고 점퍼' 무타즈 에사 바심(31·카타르)를 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경험'이라고 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부터 '세계 최정상급 점퍼'로 불리며 각종 메이저 대회를 치른 바심과 달리 우상혁은 지난해 열린 도쿄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하며 남자 높이뛰기 '세계 중심부'에 진입했다.
빠르게 바심을 위협하는 '2강'으로 자리매김했지만, 때론 경험 부족을 느낀다.
27일(한국시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2022 세계육상연맹 로잔 다이아몬드리그 남자 높이뛰기 경기에서도 우상혁은 '경험의 차이'를 실감했다.
이날 우상혁은 2m15로 공동 8위에 그쳤다.
다이아몬드리그 랭킹 포인트 1점만 추가한 우상혁은 총 16점으로, 랭킹 포인트 순위에서 7위까지 밀렸다.
2m24로 우승한 안드리 프로첸코(34·우크라이나)가 승점 8을 추가해 총 17점으로 랭킹 포인트 6위로 올라서면서, 우상혁은 6위까지 주어지는 파이널 시리즈(9월 8∼9일 스위스 취리히) 진출권을 놓쳤다.
다만 랭킹 포인트 상위 6위 안에 든 선수가 부상 등의 이유로 파이널 시리즈 출전을 포기하거나, 다이아몬드리그 조직위원회에서 우상혁을 파이널 시리즈에 '초청 선수'로 추가할 가능성도 남아 있어서 일단 우상혁은 유럽에 머물며 훈련할 계획이다.
로잔 현지에서 우상혁의 경기를 지켜본 김도균 한국육상대표팀 수직도약 코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누구보다 우상혁이 오늘 결과에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실패도 우상혁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우승을 차지한 프로첸코, 2위를 한 바심의 기록이 2m24에 그칠 정도로 모든 선수의 기록이 저조했다.
올해 모든 육상 선수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2022 유진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난 뒤 선수들의 경기력이 떨어진 상태이기도 하지만, 이날 경기가 열린 로잔 퐁타즈 올림픽 경기장의 환경도 높이뛰기 선수들에게는 낯설었다.
김도균 코치는 "남자 높이뛰기 경기를 치르는 위치가 창던지기 종목과 애매하게 겹치면서, 평소에는 매트를 왼쪽으로 빼는 데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빼서 모든 선수가 낯설어했다"며 "(높이뛰기 선수가 도약을 위해 달리는) 조주(Run-up)로도 다른 경기장보다 4∼5m 짧았다.
우상혁뿐 아니라 모든 선수가 조주 길이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전체적으로 기록이 저조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김 코치는 "국내 종합운동장은 트랙과 관중석 사이에 공간이 더 있어서 조주로를 확보하는 데 용이하다.
그러나 유럽의 경기장은 트랙 바로 옆에 관중석이 있어서 조주로가 짧다"며 "우상혁은 올해 처음으로 다이아몬드리그에 출전했다.
이런 환경에도 적응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낯선 환경'에서 경험은 빛을 발한다.
경험이 많은 '30대' 프로첸코와 바심은 2m24를 넘었지만, 우상혁은 2m20의 벽에 막혔다.
김 코치는 "우상혁이 빨리 적응하길 바랐는데 네 번의 시도(2m15 1차 시기 성공, 2m20 1∼3차 시기 실패) 안에는 적응하지 못했다"며 "결국 오늘은 실패했는데, 이런 경험이 우상혁에게 값진 경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상혁은 '생애 가장 긴 시즌'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전지훈련을 시작한 우상혁은 올해 1월 유럽으로 건너가 1월 31일 체코 네흐비즈디 실내 대회(2m23·5위)를 시작으로 8월까지 쉼 없이 실전을 치렀다.
2월 6일 체코 후스토페체 실내대회에서 2m36의 한국 신기록(우승)을 세운 그는 2월 16일 슬로바키아 반스카 비스트리차(2m35·우승)에서도 정상에 오르더니, 3월 20일 베오그라드 세계실내육상선수권(2m34·우승)에서 한국 육상 최초로 메이저 대회 우승의 쾌거를 일궜다.
국내로 돌아와 4월 19일 대구 종별육상선수권(2m30)과 5월 3일 나주 실업육상선수권(2m32) 등 실외 경기를 치른 우상혁은 5월 14일 도하 다이아몬드리그 개막전에서도 2m33으로 우승하며 기세를 올렸다.
6월 3일 예천 KBS배에서 2m30을 뛴 우상혁은 7월 19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 헤이워드 필드에서 열린 2022 실외 세계육상선수권에서 2m35를 넘어 한국 육상에 사상 첫 은메달을 선물했다.
이후 짧은 휴식을 취한 우상혁은 다시 유럽으로 날아가 이달 11일 모나코(2m30·2위)와 27일 로잔 다이아몬드리그(2m15·공동 8위)에 출전했다.
김도균 코치는 "1년 가까이 쉼 없이 달리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친 건 사실이다.
세계선수권이 끝난 뒤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기도 했다"며 "지금은 우상혁에게 약간의 휴식과 정신적인 환기가 필요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스마일 점퍼' 우상혁에게 지금 필요한 건 특유의 경쾌함과 웃음을 되찾게 할 휴식과 격려다.
우상혁과 함께 긴 시간을 쉼 없이 달린 김도균 코치에게도 휴식이 필요하지만, 김 코치는 선수의 마음을 먼저 다독이고 있다.
파이널 시리즈 진출권을 확보한 6명 중 대회 출전을 포기한 선수가 나오거나, 다이아몬드리그 조직위원회에서 '세계실내선수권 우승·다이아몬드리그 개막전 우승·실외 세계선수권 2위'의 타이틀을 가진 우상혁을 '초청 선수'로 발탁하는 행운이 따른다면 취리히에서 미소를 되찾을 수도 있다.
김도균 코치는 "파이널 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한다고 해도, 우상혁이 긍정적인 마음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잠시 쉬고 10월 전국체전에서 기분 좋게 뛰는 것도 길게 보면 득이 될 수 있다"며 "내년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 2024년 파리올림픽 등 우상혁이 치러야 할 메이저 대회가 계속 이어진다.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성공을 부르는 자양분이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