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 미달 회계법인 대기업 못맡아
지정감사 비중 적정 수준 유지
2019년 도입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한 회사가 6년 이상 동일 감사인을 선임한 경우 이후 3년 동안은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해주는 제도다.
금융위원회는 17일 이런 내용을 담은 외부감사 및 회계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변경 예고했다.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은 감사 품질이 우수한 회계법인을 지정받을 수 있도록 기업군 분류를 개선한 것이 핵심이다.
최상위군인 ‘가’군을 자산 규모 5조원 이상 기업에서 2조원 이상 기업으로 조정한다. 상법이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에 대해 감사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 높은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분류 기준을 통일한 것이다.
‘가’군 기업은 ‘가’군 회계법인 중에서만 감사인이 지정된다. 현재 ‘가’군 회계법인에는 삼일 삼정 한영 안진 등 빅4만 포함돼 있다. 2023사업연도 감사인 지정부터 개편된 제도를 적용한다.
송병관 금융위 기업회계팀장은 “코스피200에 포함된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은 외국인 투자자, 해외 거래 상대방 등의 요구로 글로벌 회계법인 선임이 불가피한데, 로컬 회계법인이 지정되면서 감사 품질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고 기준 손질의 이유를 설명했다.
회계법인이 상위군으로 승급하기 위한 기준도 높아진다. 품질관리 인력 수 및 손해배상 능력 기준치를 높였다. 대형 회계분식 사고가 발생했을 때 투자자의 손해를 배상할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가’군 회계법인으로의 승급 기준은 △회계사 600명 이상 △품질관리 인원 14명 이상 △회계 감사 손해배상 능력 1000억원 이상 등이다. 이 기준을 충족해야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지정 감사를 맡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회계법인의 자발적인 감사 품질 개선도 유도한다. 품질관리 지표를 마련해 감사인 지정점수에 반영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감사인 지정점수란 지정 감사인을 정하기 위해 산정하는 회계법인의 평가점수다. 과거에는 품질관리 지표가 반영되지 않아 회계법인들이 회계사 수를 늘리는 등 외형 확장에만 주력했다.
부실 감사에 대한 벌칙을 확대하는 내용도 담았다. 고의·중과실에 해당하는 부실 감사가 적발됐을 때 부과되는 지정 제외 점수를 상향 조정한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도입 이후 중견 회계법인(나~라군)에 지정 쏠림이 발생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목됐다. 기업이 속한 군보다 상위군의 감사인을 지정받은 경우 하위군 감사인으로 재지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하향 재지정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상위군 감사인의 감사 보수가 부담스러운 기업들을 고려해 도입한 제도다. 문제는 이 제도를 활용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중견 회계법인에 업무가 과도하게 몰렸다는 점이다.
중견 회계법인 회계사 수는 전체 회계사 수의 33%인 반면 지난해 지정 비중은 59%에 달했다. 중견 회계법인에 일이 몰려 감사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회계 부정 위험이 큰 지정 사유(누적적자, 관리종목, 감리조치 등)가 있는 기업에는 하향 재지정을 제한하기로 했다.
소형 회계법인이 감사인 지정에서 소외되는 현상도 막기로 했다. 중소 비상장기업 지정 감사는 미등록 회계법인을 우선적으로 지정한다.
또 감사인 지정제도 전반을 개선하기로 했다. 먼저 지정감사제도 확대로 매년 상장법인 중 50% 넘는 기업이 지정감사를 받는다는 지적에 따라 지정감사 비중을 적정하게 조정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감사 보수가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논의할 계획이다. 송 팀장은 “감사보수 수준을 평가하고 방안을 마련해 감사보수가 지속적으로 올라가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