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에세이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출간
유적 속에 숨쉬는 고대인들의 지혜
1976년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 라에톨리에서 360만 년 전 사람 발자국이 발견됐다.

발자국의 주인공은 성인 둘과 아이 하나.

이 발자국을 발견한 메리 리키는 1979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이렇게 썼다.

"여자는 한순간 멈춰 서서 왼쪽으로 몸을 돌렸고, 잠시 위험이나 이상이 있는지 살폈다.

그리고서 다시 북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이 발자국에는 우리의 먼 조상이 느꼈던 의심의 순간이 담겨있다고 영국 고고학자 닐 올리버는 해석했다.

단순한 유적 발자국에서 하나의 스토리를 끄집어낸 것이다.

올리버가 쓴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윌북)는 고고학을 주제로 한 에세이다.

학술적이거나 무거운, 현학적인 책과는 거리가 멀다.

유명한 각본가이자 BBC 다큐멘터리 진행자이기도 한 저자는 인류가 걸어온 수백만 년의 여정을 가족, 사랑, 죽음, 농경, 집 같은 우리에게 친숙한 키워드로 풀어낸다.

책에 따르면 빙하기가 끝날 무렵 그리스와 터키에 살던 수렵채집인 남성의 키는 175㎝, 여성은 168㎝쯤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평균 신장은 역성장했다.

그로부터 5천여 년 뒤 이 지역 남성은 160㎝, 여성은 152㎝로 줄었다.

인간은 수렵 대신 농사를 지으며 정주하게 됐지만, 매일 밭을 가는 고단한 삶이 지역민의 평균 키를 깎아 먹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간과 공생 관계에 있는 범고래 이야기도 흥미롭다.

호주의 에덴 지역에 거주하던 타와족은 범고래와 함께 고래사냥을 했다.

범고래는 혹등고래를 몰아주고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했고, 그 대가로 혹등고래의 거대한 혀와 입술을 차지했다.

이 밖에도 네안데르탈인의 장례식,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에 늦게 정착한 사연, 종교의 역사 등 흥미진진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수록됐다.

책에는 고고학과 무관한 이야기도 담겼다.

저자는 노자의 '도덕경' 구절을 빌려와 우주의 근원인 암흑물질을 설명하고, 뉴턴의 과학과 양자역학을 통해 우주와 역사, 인생의 의미를 말하기도 한다.

이진옥 옮김. 380쪽. 1만8천800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