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과 제게 보내주신 응원에 감사…선수들 새 팀에서 부상 없이 잘하길" "26년이면 제 인생의 절반을 넘게 함께 한 거잖아요.
그런데 그 팀이 없어진다고 하니까 잠을 잘 때도 멍하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죠."
지난 시즌까지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에서 코치를 역임한 '플라잉 피터팬' 김병철(49) 코치는 오리온 구단의 '산 증인'이다.
1996년 3월 동양제과 농구단으로 창단할 때 창단멤버로 입단한 김병철 코치는 올해 5월까지 26년이 넘게 '오리온 맨'으로 살았다.
오리온 농구단은 올해 5월 데이원자산운용에 매각됐고, 오리온 농구단이 간판을 내리면서 김병철 코치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한 '농구 인생'에서 38년 만에 처음 '야인'으로 휴식기를 갖게 됐다.
용산고와 고려대를 나온 김병철 코치는 농구대잔치 시절 정확한 외곽포와 덩크슛도 가능한 운동 능력 등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은 '오빠 부대 사령관' 중 한 명이었다.
특히 훌쩍 날아올라 공을 림 위에 얹어놓고 내려오는 듯한 특유의 레이업 동작은 농구 후배들은 물론, 당시 길거리 농구를 즐기던 동호인들에게도 '따라 하고 싶은 기술' 1순위로 꼽힐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2002-2003시즌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김병철 코치는 오리온의 두 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인 2001-2002시즌과 2015-2016시즌을 각각 선수와 코치로 함께 했고, 그의 등번호 10번은 구단 영구 결번이다.
김 코치는 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사실 올해 초부터 매각 소문이 많았는데 구단에서는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저도 그런 줄만 알았다"며 "막상 매각이 현실로 다가오니까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오리온과 이별한 소감을 전했다.
그는 1996년 동양제과 농구단 창단 때도 엊그제 일처럼 기억했다.
"신생팀 우선 지명으로 고려대와 한양대 졸업반 선수들이 모였다"며 "고려대 동기 전희철, 박준영, 김승민 등과 원주 DB 이흥섭 사무국장, 한양대 정재훈 감독 등이 창단 멤버였다"고 회상했다.
창단식을 하고 불과 27일 만에 출전한 실업농구 코리안리그에서 동양제과는 당대를 호령하던 기아자동차, 삼성전자, 현대전자 등을 따돌리고 우승했다.
김 코치는 "그때 동양과 같은 시기에 창단한 대우는 연세대와 명지대 출신들이 모여 라이벌 의식이 엄청났다"고 돌아보며 "대학 때 특히 연세대와 경기는 거의 전쟁처럼 치렀는데 그래도 코트 밖에서는 우지원, 김훈 등 연세대 동기들과도 친하게 지냈다"고 소개했다.
프로에서 두 번 우승한 시즌은 김병철 코치에게 모두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선수로 정상에 오른 2001-2002시즌은 "그때 동양만큼 강한 팀을 (프로농구 역사에서)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자평하며 "김승현이 신인으로 들어오며 인기도 많았고, 마르커스 힉스에 박재일, 라이언 페리맨까지 포지션별로 조화가 잘 이뤄졌다"고 말했다.
농구 팬들이 지금도 농구 게시판 등에서 가끔 논쟁하는 2001-2002시즌 힉스와 2006-2007시즌 역시 오리온에서 뛰었던 피트 마이클의 비교에 대해서는 "저는 힉스가 더 잘하는 선수라고 본다"며 "동료 선수들을 살려주고, 팀을 이기게 하는 능력에서 힉스가 앞선다"고 채점했다.
2015-2016시즌 코치로 우승할 때는 "우승하기 3년 전부터 추일승 감독님과 함께 선수들을 차례로 모으는 과정이 의미가 있었다"며 "신인 이승현을 뽑고, 김승현과 전태풍을 트레이드하면서 김동욱, 장재석 등을 받아왔다.
또 문태종과 애런 헤인즈 같은 베테랑들을 영입하며 선수단 구성을 탄탄하게 한 것이 결국 그 시즌 우승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당시 전주 KCC와 챔피언결정전 원정 1차전을 패했지만 라커룸으로 가면서 추일승 감독과 "2차전부터 안 지겠다"는 말을 거의 동시에 한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는 것이다.
당시 오리온은 2차전부터 거의 매 경기 20점씩 이기며 4승 2패로 우승했다.
동양제과 창단 당시 연고지였던 대구와 인연도 소개했다.
오리온이 2011년 연고지를 경기도 고양으로 옮긴 이후 대구에서 경기할 일이 없었다가 지난 시즌 한국가스공사가 대구 연고지 팀이 되면서 김병철 코치도 10년 만에 대구체육관을 다시 찾았다.
"사실 연고지 이전으로 실망하셨을 대구 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몰라 대구 원정을 앞두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는 김 코치는 "그런데 막상 대구에 가니 팬 여러분이 제 이름을 연호해주시면서까지 환영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말했다.
선수 때는 용산고 양문의, 고려대 박한, 동양 김진 감독 등의 지도를 받은 그는 코치가 돼서는 추일승, 강을준 감독을 보좌했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을 함께 한 지도자는 역시 8년간 호흡을 맞춘 추일승 현 국가대표 감독이다.
김 코치는 "코치 시작부터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며 "제가 감독님과 다른 생각을 말해도 잘 받아 주셨는데 언제는 한 번 '너는 감독 비위를 맞추는 것보다 자기 생각을 명확히 얘기하는 부분이 좋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 소개했다.
오리온에서 26년을 지내면서 선수, 코치로는 우승했지만 감독을 하지 못한 것은 솔직히 아쉽다고 했다.
추일승 감독이 시즌 도중 물러난 2019-2020시즌 감독대행이 됐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시즌이 조기 종료돼 그가 감독대행을 맡은 경기는 2경기에 불과했다.
이후 강을준 감독이 부임했고, 결국 김 코치가 지휘봉을 잡기 전에 오리온이 매각됐다.
고려대 동기 전희철 서울 SK 감독이 2021-2022시즌 통합 우승을 한 것에 대한 느낌을 묻자 김 코치는 "저도 솔직히 감독을 한 번 하면 좋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며 "전희철 감독도 코치를 오래 하고, 그 전에 구단 업무도 보면서 이번 우승까지 고생이 많았다"고 축하의 뜻을 전했다.
26년을 일한 오리온과 제대로 이별할 자리가 없는 것도 김 코치로서는 아쉬울 터다.
한 오리온 관계자는 "일반 회사원도 20년 넘게 근속했으면 떠날 때 예우해주는 법인데, 오리온에서도 선수단이나 최소한 김 코치에게는 그런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래도 김 코치는 "제 반평생을 함께 한 오리온은 고향 같고 집 같은 존재"라고 고마워하며 데이원자산운용에서 뛸 선수들을 눈에 밟혀 했다.
그는 "한호빈이 작년에 자유계약선수(FA)가 됐을 때 다른 팀에서 좋은 조건을 제안받았는데 제가 만류했다"며 "다른 선수들도 다 마찬가지로 제가 계속 책임질 입장이 아니게 됐지만 새 구단, 코칭스태프와 함께 부상 없이 잘 뛰어주기를 바란다"고 응원했다.
농구 시작 후 처음으로 쉬는 시간을 맞이한 김 코치는 최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취미 생활인 낚시도 가끔 다닌다고 했다.
중학교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녔던 김 코치의 낚시 인생에서 최대 월척은 45㎝ 정도의 붕어를 잡은 것이다.
낚시 '준전문가'인 김 코치는 "붕어 45㎝ 정도면 20년 이상 안 잡히고 살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리온에서 26년을 일했지만 끝내 지휘봉을 잡지 못한 김병철 코치도 다시 코트로 돌아와 감독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김병철 코치는 "그동안 오리온 구단과 제게 보내주신 팬들의 사랑과 격려에 감사드린다"며 "다시 좋은 모습으로 경기장에서 만나 뵐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팬들에게 인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