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년을 시작하는 첫 주간부터 엄청난 양의 폭설이 내렸다. 서울의 경우 25.8㎝의 적설량을 보여 기상청에서 적설량을 공식 집계한 1937년 이래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강원 영월도 하루동안 22.47㎝가 내려 종전기록을 갈아치웠다고 한다.


비록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지 못했지만 인천과 수원도 각각 22.3㎝, 19.3㎝가 내리는 등 가히 기록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가히 전국이 폭설로 몸살을 앓을 정도로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

폭설이 내린 날, 필자는 태백산에 있었다. 매년 초 닥터아파트(www.drapt.com)에서 실시하는 리더산행의 이번 목적지가 태백산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늦은 밤 11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새벽 4시부터 산을 오를 때만 해도 눈은 내리지 않았다.

태백산 천제단을 거쳐 문수봉 정상에 오르고 나서야 진눈깨비 같은 눈발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거의 오전 9시 전후하여 산을 다 내려올 때쯤에는 눈이 그야말로 퍼붓듯 내렸다. 모처럼 눈 구경도 실컷 하고 눈 맞으면서 하는 산행의 묘미도 만끽했다. 태백산보다도 더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는 서울과 수도권 소식에 돌아갈 일이 막막했지만 다행히도 염려하던 것과 달리 큰 정체 없이 돌아올 수 있었다.

일선으로 돌아와 경인년 첫 업무를 개시한 이후 지난 일요일까지 일주일간 일산, 남양주, 용인, 강서권, 강남권 등 틈틈이 참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개인적으로 필요에 의해서 또는 일부러 지역을 선정해 다녀도 보고 특정 아파트를 선정해서 돌아다녀 보기도 했다.

눈이 내린 뒤에도 날씨가 추워 눈이 녹지 않고 쌓여있는 상태가 계속됐지만 같은 폭설과 같은 기후라도 지역마다 또는 단지마다 눈이 녹는 속도나 제설(除雪) 정도에 있어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차량 통행이 많은 대로변 제설 정도의 차이는 물론이고 특히 상가가 밀집된 이면도로나 아파트단지내 제설 정도는 그야말로 천양지차를 보였다.

우선 대로변은 차량 통행이 많은 곳이다. 따라서 적설량이 많지 않을 때에는 차량에서 내뿜는 복사열로도 눈이 쉽게 녹지만 지난번처럼 폭설이 내린 경우에는 복사열 또는 제설제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 차량 통행량, 제설제와 더불어 행정력 등이 얼마나 받쳐주느냐에 따라 제설의 속도가 판가름 난다.

특히 도로변으로 수북이 쌓인 눈의 제설에는 행정력이 관건인데 지역마다 지역주민 통행의 편의를 위해 행정력을 총 동원해 제설 작업을 하고 있는 지역이 있는 반면 며칠이 지나도 도로에 제설제만 뿌려놓고 임무 다한 듯 수수방관하고 있는 지역도 있다.

전자는 이미 도로 제설이 다됐지만 후자는 아직도 매연과 제설제가 뒤섞인 시커먼 눈이 도로에 남아 차량은 물론 지나가는 행인에게도 불편함을 주고 있다. 소위 지역프리미엄이 있는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의 단면이다.

상가가 많은 이면도로는 어떨까? 이면도로의 제설 수준은 상가의 활성화 정도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차량 통행량, 행정력 등 일반적인 제설 요인도 뒷받침돼야겠지만 상가가 활성화 돼있는 곳은 상가 개별적으로 또는 상인조합 차원에서 상가 주변이나 앞 도로의 제설에 적극적이다. 행여나 눈 때문에 손님이 불편을 겪거나 매출이 떨어질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반면 상가가 활성화되지 못한 지역의 제설 작업은 상당히 더디다. 폭설이 내린 후 며칠이 지나서야 상가 주위를 치우는 정도이거나 아예 손님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며칠째 문을 닫고 영업을 안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상인조합 차원에서 제설에 동참하는 것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 상인조합 자체가 결성되지 않았거나 조합이 있어도 그 결속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제설보다는 시간이 지나 자연적으로 눈이 녹기를 기다리고 손님보다는 문을 열고 영업하는 데에 드는 비용을 더 크게 여기는 까닭이다.

아파트단지를 보면 제설의 정도는 극명하게 갈린다. 아파트단지 제설은 무엇보다 일조량과 단지 주민의 결속력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단지 프리미엄이 높고 단지 주민의 결속력이 강할수록 관리사무소나 주민이 합심하여 제설 작업에 나서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단지는 계단이나 주통로만 제설돼 있고 그늘진 곳의 보도나 차도는 그냥 방치해놓는 경우가 다반사다.

동간거리가 넓고 대지지분이 많은 단지는 일조량이 풍부해 눈이 녹는 속도가 빠르지만 동간거리가 좁고 대지지분이 협소한 단지는 겨울이 다 가도록 눈 구경을 하는 기쁨(?)을 누리거나 겨울 내내 대지가 얼어있어 썰매를 타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동간 거리가 확보되지 않은 채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통해 들어선 초고층아파트단지에 대한 단상(斷想)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토지(임야, 농지 등)에 대한 투자가치 여부를 판단할 때 제설(자연제설)의 정도를 살피는 것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은 눈이 쉽게 녹지만 빛보다는 그늘이 많은 곳은 겨울철 내내 눈이 녹지 않거나 땅이 얼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자는 토지가 남향 내지 남동향을 향하고 있다는 뜻이고, 후자는 토지가 북향 내지 북서향을 바라보고 있어 개발사업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토지의 경우 향뿐만 아니라 지형이나 지세도 아울러 판단해야 하므로 일률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묘지의 대부분이 양지바른 곳에 위치해 있듯 활용가치가 있는 대부분의 토지 역시 햇볕이 잘 들고 눈이 잘 녹는 곳에 위치해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주말이면 폭설이 내린지 열이틀이 되는 시점이니 만큼 제설 정도의 차이는 더 뚜렷해질 것이다. 주말에 시간 내어 지역이나 단지를 주유하면서 제설 수준을 체크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울러 일조량, 지역프리미엄, 단지 결속력, 단지규모(대지지분), 토지의 향 및 상가활성화 여부는 곧 투자가치를 결정하거나 투자의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도 명심해둘 일이다. 닥터아파트(www.drapt.com) 이영진 리서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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