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경매물건에 입찰하고자 하는 투자자들에게 있어 매우 민감한 사항 중 하나이다. 특히 입찰가액을 써내는 시점에 도달할 때쯤이면 숫자에 대한 민감도는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입찰가는 단지 입찰가액란에 숫자를 기재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당락을 결정하고 입찰자 본인을 비롯하여 입찰자 모두가 수긍할 만한 적정한 입찰가에 낙찰이 됐는지에 대한 사후 평가도 자못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예상 입찰가를 분석하면서 인용하는 낙찰가율, 유사사례 낙찰가, 경쟁률 등 모든 숫자들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런데 입찰하기 전 최종 단계라 할 수 있는 입찰가를 결정하는데 있어 경합하거나 어우러진 숫자들이 진수(眞數)가 아니라 허수(虛數)였다면? 좀 더 쉽게 입찰가 산정에 있어 허수가 개입됐다면 어떨까?

입찰 과정에서 허수가 개입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경매법정에서의 입찰경쟁률 예측이다. 입찰경쟁률은 유사 낙찰사례 입찰자수나 인근 지역 또는 유사종목 평균 입찰경쟁률을 분석한 후 예측하게 되지만 최종적으로는 입찰 당일 경매법정의 분위기를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매법정에 인파가 북적대면 예상했던 경쟁률을 높여 잡아 입찰가를 조금 높게 써내거나 그 반대이면 입찰가를 다소 낮게 써내는 식이다.

문제는 경매법정에 몰려든 인파에 허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 설 연휴 첫 경매가 진행된 2월 11일 서울동부지방법원 경매법정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볐다. 방청석도 모자라 방청석 좌・우・후면까지 빼곡하게 들어섰으니 족히 150명 정도는 돼 보였다.

정작 입찰을 마감하고 개찰 과정을 살펴보니 이날 진행된 경매물건 총 27건 중 낙찰된 물건은 8건에 총 입찰자수도 34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성동구 행당동 소재 한 아파트에 21명이 입찰한 것을 제외하고는 건당 입찰자수가 4명을 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입찰자수의 4배에 달하는 나머지 인파들은? 그야말로 허수(虛數)다.

그 허수의 형성에는 입찰자와 동행한 가족, 지인, 컨설턴트 등이 기인한 바도 있지만 이들보다 더 중심에 있는 허수는 바로 경매학원 수강생들이다. 수강생들은 입찰실습 차 경매법정을 방문하기 때문에 입찰할 것도 아니면서 입찰표를 교부받고 입찰가를 작성하는 척(?)하기 때문에 때론 진짜 입찰자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허수는 비단 경매법정 분위기에 따른 경쟁률 예측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시세조사나 평균 낙찰가율을 인용하는 과정에서도 허수는 존재한다. 특히 요즘과 같이 부동산가격이 하락세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부동산 하락기에 감정평가 후 매각기일 사이에 4-6개월 이상 소요되는 기간차를 무시하고 감정평가액을 맹신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허수, 9.13대책 이후 대출규제가 심화되면서 낙찰가율이 하락하고 경쟁률 역시 감소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를 간과한 채 과거 과열됐던 때의 지표만을 염두에 두고 입찰가를 써내는 데에서 비롯되는 허수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허수의 존재나 개입은 입찰경쟁률을 과도하게 높게 예측하게 하거나 결과적으로 높은 가격에 입찰하게 함으로써 최고가매수인이 되고도 과히 기분 좋지 않은 모습을 연출하게 된다. 치열한 경쟁을 예상하고 입찰가를 높게 써냈는데 단독 또는 2-3명이 경쟁입찰하여 최고가매수인이 되거나 제법 경쟁은 치열했지만 차순위와의 입찰가 차이가 크게 나는 경우가 대표적인 폐해다.

대학교나 학원 개강 시즌에 맞춰 경매 수강생들의 입찰실습이 늘어나고, 부동산시장 침체로 인해 감정평가액이 입찰시점의 시세보다 높아지는 물건들이 점점 나오기 시작하는 지금이야말로 허수의 개입을 최소화시키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이웰에셋 이영진 대표 (☎ 02-2055-2323)
경매초보자를 위한 입문서 <손에 잡히는 경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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