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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년간 核 개발한 北…동결→보상→도발로 '밀당'하며 정권 이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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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6·25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외교 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은 전쟁 중 미군이 언제 핵무기를 터뜨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졌다. 1954년 ‘핵무기 방위’ 조직을 만들었다. ‘조·소(朝蘇)연합 핵연구 조직 협정’도 체결하고 소련 두브나 핵연구소에 물리학자들을 파견했다.

    1979년 연구용 핵 반응로 건설에 착수했고, 1980년대 중반 가동에 들어갔다. 영변에 흑연 원자로와 폐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분리하는 시설을 짓고 본격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19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다. 그러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영변 핵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구하자 1993년 3월 NPT를 탈퇴했다. 핵 위기가 몰려오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해 중재에 나섰고, 1994년 제네바 합의가 체결됐다. 북한 핵시설 동결 조건으로 한국과 미국 등이 경수로 공사와 대북 중유 제공을 한다는 게 골자였다. 그러나 북한은 비밀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했고, 1998년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다.

    북한은 2003년 1월 NPT를 탈퇴했다. 6자회담을 가동한 끝에 2005년 북한이 안전을 보장받는 대가로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9·19 공동성명’이 나왔다. 그러나 북한은 이듬해 7월 대포동 2호를 발사했고, 10월엔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한은 제재 해제를 얻기 위해 2008년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쇼를 벌였으나 핵·미사일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2017년 6차 핵실험 후 강도 높은 제재가 이어지자 이듬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느닷없이 화해 제스처를 취했으나 뒤에선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했다. 그 결과가 올 들어 17번 선보인 신형 미사일들이다. 핵·미사일 문제도 철저하게 통일전선 전술 차원으로 접근해 온 것이다. 김일성 ‘유훈’이자 체제를 지키는 ‘보검’인 핵무기를 절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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