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민간 주도 성장'이 우리 경제의 최대 키워드로 부각된 가운데,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달라진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위상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동안 국가간 외교무대에서 경제사절단 역할에 그쳤던 기업 총수들이 이제 비지니스 외교의 주연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산업부 김민수 기자 나와있습니다. 먼저 삼성으로 시작해 현대차로 끝났던 바이든 대통령의 파격적인 방한 일정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기자>

미국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의 첫 행선지로 삼성전자를 선택한 것을 두고 '21세기 진정한 전쟁터를 대표하는 곳'이라는 평가를 했습니다. 지금 미국이 펼치고 있는 외교 정책의 상징적인 장소라는 것이죠.

지금 미국은 첨단 제조업 패권을 놓고 중국과 숙명적인 대결을 벌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로 대변되는 첨단 제조업 주도권을 놓치면, '자유주의' 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까지 감돌고 있습니다.

100년 가까지 군사적, 경제적으로 패권국가였던 미국은 지금의 중국만큼 강력한 상대를 만난 적이 없거든요. 이번 방한 일정이 극히 이례적이였던 것도 이같은 위기감을 방증하는 사례로 해석됩니다.

삼성전자 방문이 '외교'를 위한 상징이었다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만남은 '내치'를 위한 것이었죠. 미국 조지아주는 오는 11월로 다가온 중간선거에서 아주 중요한 전략 지역 가운데 하나거든요.

8500개에 달하는 일자리를 만들어 낸 현대차를 추켜세우면서도, 미국에 있는 지지층에게 결집의 메세지를 보낸거죠. 바이든과 민주당의 업적으로 기억해 달라는 것이죠.

치밀하게 시차도 고려됐습니다. 미국 내 홍보 효과가 가장 큰 20일 저녁 삼성전자를 찾았고, 중간선거 격전지 조지아주가 저녁시간인 22일 오전에 정의선 회장의 투자 발표가 있었죠.

<앵커>

삼성전자 얘기부터 해보죠.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좋은 기회가 되겠네요.

<기자>

일단 세계 최강의 권력자가 삼성의 최신 3나노 반도체를 보면서 엄지를 번쩍 치켜들은 모습이 전세계 뉴스로 보도됐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광고 효과가 있죠.

그동안 미국의 전략자산이 '석유'였다면, 지금은 '반도체'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제 전략 자산의 미국 내 생산을 늘려야하는 숙제가 생긴거죠. 팹리스 등을 제외한 생산능력만 따지면 미국과 유럽 점유율은 21%로, 아시아(75%)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이제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경쟁력 강화 나서고 있는데, 이 기간이 삼성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몸값을 높이고 대접도 받으면서 초격차를 확대할 수 있는 시간이죠.

핵심은 미국에 와서 반도체를 만들면 확실히 퍼준다는 겁니다.

올해 2월 자국 내 반도체 생산력 증대를 위해 520억 달러 우리 돈으로 66조 원 규모의 '반도체 지원 법안'을 통과시켰구요. 또 15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 지원 법안도 추진 중입니다.

<앵커>

미국과 삼성 모두 '윈윈'하는 것도 맞는데, 반도체가 미국의 전략자산이 된다는 게 삼성 입장에서 어려움도 있지 않을까요?

<기자>

좋은 기회를 만난 건 분명한 데, 삼성의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첨단 반도체는 인류의 미래를 바꿀 인공지능 시대를 좌우할 최종 병기입니다. 지금 미국은 한국이 가진 첨단 반도체 제조기술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고, 미국과 영국이 가진 첨단 반도체 설계기술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죠.

지난해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무산된 것 역시 첨단 반도체 설계기술의 독점화를 막기 위한 미국과 영국의 판단이었거든요.

미국이 반도체를 전략 자산으로 삼은 이상, 하나의 해외기업이 더이상 거대해지는 것을 용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통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이죠.

삼성이 파운드리 사업에서 레벨업을 하려면 대규모 M&A가 필요한데, 이게 어려워지는 거죠. 최근 삼성이 경쟁당국 심사를 대비하기 위한 인력들을 영입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이번 바이든의 삼성 방문에 퀄컴CEO가 동행한 것을 두고 TSMC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설계의 퀄컴'과 '제조의 삼성' 둘이 사이좋게 지내라는 건데, 한-미 반도체 동맹의 핵심적인 두 회사거든요.

<앵커>

이제 현대차 얘기로 넘어가보죠. 바이든 대통령과 정의선 회장이 무려 50분을 얘기했다고 하네요.

<기자>

바이든 대통령과 정의선 회장의 단독 면담은 형식뿐 아니라 그 시기, 시간까지 모두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예정됐던 15분을 넘어서 무려 50분을 단독 면담한 건데, 분량으로만 따지만 정상회담급이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 대통령을 단 둘이 만난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대통령 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해 만난 적은 있지만, 단독 면담은 처음이죠.

정의선 회장이 미국에 5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전격 발표한 것도 한 몫을 했을 겁니다. 현대차그룹은 바이든 방한 기간동안 100억 달러가 넘는 투자계획을 내놨죠.

하지만 미국과 현대차 모두 남는 장사를 한 셈입니다. 조지아 전기차 공장을 짓는데 미국이 파격적인 혜택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전기차 시대만큼은 자동차 본고장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정의선의 '아메리칸 드림'과 미국 내 제조업 투자를 외치는 바이든의 '바이 아메리카'가 만난 셈이죠.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지죠.

<앵커>

우리 기업들의 달라진 위상을 확인하는 계기였지만, 국내 일자리가 자꾸 해외로 나간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기자>

숙제로 남은 부분이죠. 결국 일자리가 미국에 생긴다는 건데, 이같은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겁니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데요. 미국은 삼성전자가 20조 원을 투자하면 최대 9조 원에 달하는 세액공제를 주는 파격적인 혜택을 줬습니다. 만약 한국에 20조원을 투자하면 최대 2조 원 정도를 공제받죠.

현대차의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투자도 부지를 공짜로 주는 것은 물론 엄청난 세금 감면이 있을 겁니다. 기업 입장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반대로 기업들을 내쫓고 있습니다.물론 국내 기업의 미국 투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물론 수요가 충분한 곳이죠.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수출입은행 자료를 보니까, 통계를 집계한 2014년 이후 8년간 해외로 나간 기업은 2만3200여개였는데 반대로 국내로 돌아온 기업은 108개뿐이었습니다.

파격적인 수준의 당근 없이는 양질의 일자리가 해외로 나가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겁니다. 민간주도 성장을 외친 윤석열 정부가 이제부터 풀어야 할 숙제죠.


김민수기자 mskim@wowtv.co.kr
세계가 지켜봤다…글로벌 외교 중심에 삼성·현대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