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모 착용도 안 지켜져…규제 위반 10만건 학부모 A씨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작년부터 친구들과 함께 전동 킥보드를 빌려 타고 다녔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면허 없이는 킥보드를 탈 수 없다고 알고 있던 A씨는 "아무나 휴대폰 앱을 통해 회원 가입을 하고 킥보드를 빌려 탈 수 있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놀랐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A씨는 자녀가 다니는 학교로부터 '지난해 개정된 법에 따라 면허 없는 어린 자녀가 킥보드를 탈 경우 부모가 과태료를 물게 된다'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그는 "1년 전 법이 개정됐다는데 여전히 보호장구 없이 두세 명씩 짝지어 킥보드를 타고 다니는 중고생들을 길에서 자주 목격한다"면서 "무면허자에게 킥보드를 대여해 돈 버는 업체들은 전혀 관리하지 않으면서 보호자에게 과태료를 물리는 것이 능사인가"라고 되물었다.
◇ 면허 없어도 킥보드 '씽씽'
지난해 5월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PM)는 '제2종 원동기장치 자전거면허' 이상의 면허가 있어야 탈 수 있다.
아울러 주행 시 반드시 안전모를 써야 하며, 두 명 이상이 동시에 탑승하거나 인도로 다녀서도 안 된다.
이처럼 법이 바뀐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면허 없는 미성년자들이 킥보드를 탄 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일부 킥보드 대여 업체의 면허 인증 과정이 아직도 허술하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킥보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회원 가입을 해 보니 일부 업체는 '운전면허증을 보유해야 한다'는 내용의 주의사항에 동의한다고 체크만 하면 킥보드를 빌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업체는 면허증 사진을 등록할 것을 요구했지만, 면허증이 아닌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어 올려도 대여가 가능했다.
이처럼 면허 인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관리나 단속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행법상 전동 킥보드 대여사업은 자동차 대여업과 달리 인허가 없이 사업자등록만 하면 되는 '자유업'이어서 정부가 업체에 면허 인증을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전동 킥보드 대여사업을 '등록제'로 전환해 일정 기준을 충족한 업체만 영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2020년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아직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 법안에는 킥보드 대여업체가 면허 확인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 안전모 착용 등 법규 위반 10만건 적발
면허 소지 외에 안전모 착용, 인도 주행 금지 등의 규제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작년 5월 13일 도로교통법이 개정된 이후 지난 4월까지 1년간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PM) 단속 건수는 9만9천460건에 달한다.
이 중 안전모 미착용이 7만8천891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무면허 9천597건, 음주운전 4천36건, 승차정원 위반 543건 등이었다.
한 킥보드 업체 관계자는 "과거 일부 업체가 공용 안전모를 비치하기도 했지만, 분실되거나 파손되는 경우가 많았고 위생 문제도 제기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단시간 단거리 이동 수단인 킥보드 이용자들에게 안전모를 강제하는 것은 과도한 조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킥보드가 다닐 수 있는 자전거 도로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도 주행을 금지하는 등 현실적으로 수용되기 힘든 규제를 만들어 범법자만 양산한 꼴이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자전거 도로를 확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라며 "킥보드가 많이 다니는 구간에는 안전시설을 투입해 보행로 한쪽에 킥보드 통행로를 만들고 시속 25㎞인 최고속도를 낮추는 등 단기적 대안도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기사제보나 문의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