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요양병원 대면면회가 허용됐다. 그러나 요양병원에는 자식과 연락이 끊긴 독거노인도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신분증 재발급·기초생활수급 등록이 어려워 복지 사각지대로 몰리고 있다.
최근 요양병원 대면면회가 허용됐다. 그러나 요양병원에는 자식과 연락이 끊긴 독거노인도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신분증 재발급·기초생활수급 등록이 어려워 복지 사각지대로 몰리고 있다.
"환자가 직접 가기 힘들어요. 뇌경색에 복막염까지 있어서 주치의가 움직이면 목숨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하는데…오실 수 없나요?"

"어쩔 수가 없어요. 구급차라도 타고 직접 오셔야 처리할 수 있습니다."

최근 영등포구에 위치한 동사무소에 구급차 한 대가 신분증 발급을 위해 들어왔다.

들것을 통해 들어온 환자는 S요양병원에 장기 입원중인 여성 이 모 씨.

이 씨는 자녀와 연락이 닿지 않는 독거노인이다. 재산도 따로 없고, 의식이 온전하지 않을 때가 많으며 신분증 재발급과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이 필요한 상태였다. '서류상으로 자식이 있어' 동사무소를 무조건 방문해야만 재발급과 수급자 신청이 가능하다는 말에,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구급차를 타고 동사무소에 가야만 했다.

●장애인은 되는데… 위급한 독거노인 "어렵다"

이 씨는 지난 2월 서대문구에 있는 대학병원을 통해 급한 치료를 끝내고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대학병원 사회사업팀은 이 씨를 전원(轉院)하면서 요양병원 직원에게 "요양병원비 본인부담금 일부를 사회사업기금으로 우리가 내겠다"며 "이후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통해 병원비를 충당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씨가 중환자라는 데 있었다. 몇 달이 지나 자금이 동나 병원비 마련이 시급했지만 신분증이 없어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이 어려웠고, 기초생활수급비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면 신분증 발급과 수급자 등록을 위해 직접 동사무소로 가면 된다. 그러나 이 씨는 뇌경색, 복막염, 코로나까지 겹친 중환자라 거동이 어려웠다. 직계가족을 부르려 해도 자녀와 연락이 끊긴지 오래라 방법이 없었다.

이 씨의 주치의는 "완전 와상상태(침상 안정이 필요한 상태)에 인지기능 저하로 거동과 의사표시가 어렵다"며 "이동이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어 직접 동사무소로 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요양병원에서는 동사무소 직원이 찾아올 수 없냐고 물었지만, 구청과 동사무소는 난색을 표했다.
이 씨의 주치의가 쓴 소견서. 주치의는 이동이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씨의 주치의가 쓴 소견서. 주치의는 이동이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씨에게 ‘서류상으로 자식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구청 관계자는 한국경제TV와의 통화에서 "우리도 수급권자를 보호하고 싶다, 다른 신청서류는 (본인이 없어도) 다 구비가 되는데 신분증이 문제"라며 "본인이 움직일 수 없다면 직계가족이 신청을 해야 하는데, 환자가 직계가족과 연락이 되지 않아도 서류상 존재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직권으로 방문하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구청 관계자는 행정안전부에도 문의를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며 "행정안전부 질의에서는 ‘대통령령으로도 안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주민등록법에 따르면 정신이나 신체에 장애가 있는 중증장애인인 경우에만 공무원이 방문해 주민등록증을 발급해줄 수 있다(주민등록법 제27조의2, '신체적·정신적 장애정도가 심하여 자립하기가 매우 곤란한 장애인이 본인이 직접 주민등록증의 발급·재발급을 신청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해당 중증장애인, 그 법정대리인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보호자의 신청에 따라 관계 공무원으로 하여금 해당 중증장애인을 직접 방문하게 하여 주민등록증을 발급·재발급 할 수 있다').

독거노인은 거동이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되도 '방문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 받기 어려워 방치되기도

이 씨 같은 경우, 비교적 인지가 정확할 때 '위험해도 신분증 신청을 위해 직접 방문해야 한다'는 내용을 들었다. 또 요양병원 측에서 구급차 비용을 부담해 신분증을 겨우 만들고 기초수급자 신청도 마쳤지만, 이마저도 안 되는 환자가 많다.

S요양병원 관계자는 "복지정책이 되어 있고 법도 있지만 정작 이 제도가 필요한 독거노인 중 기초수급자 같은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꽤 많다"며 "요양병원에 이런 환자들이 많은데, 우리 병원만 해도 독거노인 환자 40~50명이 가족과 연락을 끊고 산다"고 말했다.

이들은 ▲외부에 나갈 정도로 거동이 원활하지 않고 ▲기초수급자 요건에 해당되나 신청이 필요하고 ▲ 신분증을 분실해 재발급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연락이 되지 않는 직계가족이 존재하면 '본인이 못 오면 직계가족이 와야 한다' '거동이 불편해도 현재로서는 동사무소 직원이 방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신분증 재발급과 기초수급자 신청이 어려워진다. 결국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요양병원에서도 '최소한의 치료'만 가능하다. 병원비 부족 때문이다. 말이 좋아 '최소한의 치료'지, 제대로 치료를 못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기반이 없는 독거노인을 받는 요양병원이 손해를 떠안는 구조라, 이들을 받지 않는 요양병원도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계 관계자는 "요양병원도 자선사업하는 곳이 아니라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탁상행정을 할 게 아니라 어려운 독거노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진기자 sjpen@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