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일탈, 돌이킬 수 없는 악몽…영화 '크로스 더 라인'
아빠가 죽었다.

상실감은 평소 무단횡단 한번 안할 것 같은 다니(마리오 카사스 분)를 일탈로 조금씩 끌어들인다.

누나가 억지로 끊어준 세계일주 항공권을 들고 한참 고민하다가 일단 떠나기로 결심한다.

잠시나마 홀가분해진 탓인지 다니의 표정은 어제보다 밝다.

레스토랑에서 베를린행 항공권을 검색하던 중 정체 불명의 여자 밀라(밀레나 스밋)가 다가와 햄버거 두 개 값을 대신 내달라고 한다.

흔쾌히 계산하고 보니 밀라는 가게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밀라와의 동행은 호기심에서 비롯한 잠깐의 일탈이었지만 결과는 돌이킬 수 없었다.

영화 '크로스 더 라인'은 밀라와 동행하면서 하룻밤 만에 인생의 나락을 경험한 다니의 이야기다.

기분이 풀리도록 함께 있어달라는 밀라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도 지루한 남자 다니에게는 큰 일탈이었다.

밀라는 햄버거값을 갚는다며 팔뚝에 타투를 새겨주고 자신의 아파트에 데려간다.

밀라의 아파트에서 두 사람이 죽었다.

순간의 일탈, 돌이킬 수 없는 악몽…영화 '크로스 더 라인'
사건 현장은 다니가 둘을 모두 죽였다고 보기에 충분했다.

반대로 다니가 그들의 죽음과 무관하며,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주장도 가능했다.

다니와 밀라가 만난 지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평소 성격상 자수를 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다니처럼 평범한 사람에겐 열 번을 살아도 벌어지지 않을 일이 하룻밤 만에 일어났다.

그는 조용했던 일상에 난 균열의 흔적을 지워야 했다.

하지만 수습하려 할수록 일은 점점 꼬여만 간다.

영화는 자신의 잘잘못과 무관하게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길 위기에서 어떤 선택이 가능한지 묻는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대가로 살인범의 누명을 쓰기는 누구나 억울하다.

그러나 사건에서 빠져나오려 한 결과는 다니의 의도와 정반대로 오히려 더 가혹했다.

전세계 항공편을 자유롭게 이용하되 같은 방향으로만 이동할 수 있는 세계일주 항공권처럼, 모든 일이 연속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한 방향으로만 벌어질 때가 있다.

순간의 일탈, 돌이킬 수 없는 악몽…영화 '크로스 더 라인'
영화는 치밀하고 정교한 플롯 대신 예측할 수 없는 밀라의 행동과 다니의 반응, 다니의 시선이나 그의 뒷덜미에서 비추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긴장감을 높인다.

거의 러닝타임 내내 배경에 깔리는 일렉트로닉 음악은 후반부로 갈수록 마치 다니의 심장박동 소리처럼 들린다.

올해 마흔 살인 다비드 빅토리 감독은 2012년 국제유튜브영화제 우승 경력이 말해주듯 단순한 줄거리에 감각적 장치를 최대한 활용해 스릴러 효과를 낸다.

마리오 카사스의 이름을 한국에도 알린 '인비저블 게스트'와는 또다른 방식으로 몰입감을 선사한다.

뒤통수가 얼얼할 만한 반전을 스릴러의 최대 묘미로 여기는 관객은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작이 빈번하게 나오는 스페인 스릴러의 최근 경향을 짐작게 하는 영화다.

12일 개봉. 96분. 청소년 관람불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