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무신사 등 日 시장 공략 박차…"냉각됐던 관계 개선 기대감"
정책협의단 광폭 행보…기시다 총리 "한일관계 개선 더 못 기다려"


다음 달 공식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파탄 난 한일관계 복원을 거듭 천명하면서 지난 5년간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에 벌써 훈풍이 불고 있다.
기업 광고 재개·무비자 입국 추진…벌써 훈풍 부는 한일관계
한때 일본 소주시장 점유율 1위까지 올랐던 하이트진로는 최근 일본 내에서 새 TV 광고를 선보이며 본격적인 마케팅 활동을 재개했고,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중단됐던 한일 간 무비자 입국도 가시화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정권교체를 계기로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최악의 수준까지 추락했던 한일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 '독도'에 발목 잡혔던 진로, 새 광고 선보이며 日 재공략
28일 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최근 일본에서 새 참이슬 TV 광고와 함께 신제품 과일소주인 '참이슬톡톡' 2종을 출시했다.

일본 소주 시장 공략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지난해 일본에 대한 소주 수출액은 전년 대비 약 27% 증가했다"며 "일본의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 소주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만큼 앞으로 다양한 마케팅 활동과 영업력 확대로 일본 시장 내 주류 트렌드를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전자상거래 기반 패션업체 무신사도 지난해 일본 법인 '무신사 재팬'을 설립한 데 이어 일찌감치 일본 시장에 진출해 성공한 패션플랫폼 디홀릭커머스 인수를 추진 중이다.

디홀릭커머스를 인수해 일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한다는 구상이다.

무신사는 올해 K팝 스타를 모델로 내세운 새 온라인 광고도 일본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다음달 10일 취임하는 윤석열 당선인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정립을 천명했다며 일본에서 불고 있는 2차 한류붐과 더불어 이런 정세 변화가 한국 기업들이 일본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는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1988년 일본 시장에 처음 진출한 진로 소주는 일본 내 한국 기업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꼽힌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같이 세계 무대를 주름잡는 국내 대표 기업들도 유독 일본 시장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소니와 도요타 등 세계적인 일본 기업들이 자국 시장에서 워낙 강세인 데다 일본 소비자들의 자국산 선호 경향이 뿌리 깊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일본 시장의 각종 비관세 장벽도 걸림돌이었다.
기업 광고 재개·무비자 입국 추진…벌써 훈풍 부는 한일관계
반면 주류업체인 진로는 1990년대부터 본격화한 일본 내 한류 바람을 타고 승승장구했다.

1988년 일본에 진출한 뒤 현지 소비자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끌다가 김대중 정부 출범 첫해인 1998년 일본 소주 시장 1위에 등극했다.

때마침 불어닥친 한류 바람과 함께 한일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일본 대중문화 개방 등으로 급진전한 양국 우호 관계가 진로 돌풍의 숨은 배경이었다.

일본서 한동안 잘 나가던 진로는 그러나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전격적인 독도 방문을 계기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한일관계가 급속히 악화했고 일본 내 혐한 기류가 확산하면서 진로의 매출은 급전직하했다.

이후 약 10년간 한일관계는 과거사 문제에 발목이 잡혀 별다른 전환점을 마련하지 못했고, 반일 기류가 팽배했던 문재인 정부 5년간은 암흑기였다.

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교역뿐 아니라 각종 민간 차원의 교류도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윤석열 정부 출범을 계기로 단교 직전까지 갔던 한일관계가 새로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것이란 기대감이 흘러나온다.

4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국가간 관계, 특히 한일관계는 양국 정권의 성향이나 이념적 지향성이 큰 영향을 미친다"며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기로 훈풍이 불었던 24년 전처럼 양국 관계에 새로운 르네상스가 도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문재인 정권하에서 냉각됐던 한일관계가 윤석열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 기시다 면담한 尹정책협의단…무비자 입국 등 가시화 기대
정진석 국회부의장이 이끄는 한일정책협의대표단(이하 정책협의단)은 26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예방했다.

기시다 총리는 정책협의단을 만난 자리에서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가 위협받고 있는 현재 국제 정세에서 일·한, 일·미·한 3국의 전략적 제휴가 이렇게 필요한 때가 없었다"며 "일·한 관계 개선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고 일본 외무성이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또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쌓아온 양국 우호 협력 관계의 기반을 토대로 두 나라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징용공) 문제를 비롯한 양국 간 현안 해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애초 정책협의단이 지난 24일 출국할 때만 해도 이들이 기시다 총리를 면담할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기업 광고 재개·무비자 입국 추진…벌써 훈풍 부는 한일관계
지난해 1월 부임한 강창일 주일대사가 지금까지 한 번도 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을 만나지 못하는 등 일본 내 강경 기류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집권당 내 강경파인 사토 마사히사 자민당 외교부회 회장은 정책협의단의 방일과 관련해 "(한일 역사 갈등과 관련해) 어떤 해결책을 가지고 오는지 묻는 것이 중요하다.

만나도 외무상급"이라며 총리가 정책협의단을 만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 부의장이 이끄는 정책협의단은 방일 첫날 일본인을 구하다 숨진 고(故) 이수현 씨 사고 현장을 찾아 추모한 것을 시작으로 하야시 외무상,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 기시 노부오 방위상, 기시다 총리 등과 잇따라 면담하며 광폭 행보를 이어갔다.

문재인 정권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일본 정부의 분위기가 읽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동아시아 안전보장 문제 전문가인 일본 간다외국어대학의 사카타 야스요 교수는 블룸버그에 "윤 정권하에서는 관계 회복으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며 "문 정권 시기보다 코드가 맞는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정책협의단은 기시다 총리 등 일본 측 당국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윤 당선인의 의지를 전하면서 2020년 3월부터 중단된 양 국민의 무비자 입국 재개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현재 러시아, 스리랑카, 베트남, 이집트, 파키스탄, 터키 등 6개국과 함께 한국을 입국시 3일간 격리해야 하는 시설 격리 대상국으로 지정하고 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정부 측에서 김포-하네다 항공 노선이 6월 1일부터 가능할지 알아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김포-하네다 노선의 재개를 기점으로 일본 정부의 시설 격리국 해제까지 이어지면 3개월 무비자 협정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