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형식의 1990년대 초기 작품부터 자본시장에서 인간의 본성을 논하는 최근작까지 23점을 선보인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개인전이다.
그의 논문 제목에서 따온 전시명 '데이터의 바다'는 디지털 기반 데이터 사회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함축한다.
히토 슈타이얼은 28일 언론 공개회에 이어 열린 공동 인터뷰에서 자신이 '거대 담론'을 다루는 작가는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실존하는 특정한 인물과 상황을 분석하려고 시도하는 작업을 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 전시는 본래 2020년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2년 연기됐다.
작가는 "동아시아 지역을 생각했을 때 전시를 하기에 한국만큼 적절한 나라는 없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이 저를 선택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작업 환경에도 변화가 일어났다고 털어놨다.
"현장 촬영을 전혀 하지 못했어요.
예전에 찍은 영상을 다시 활용하거나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했죠. 재료를 주문하면 평소보다 두세 배 오래 걸리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전쟁으로 패러다임이 옮겨가서 많은 어려움이 있죠." 지난 30년간 유럽과 중동에서 전쟁이 지속했음에도 미술시장이 호황을 누렸다고 지적한 작가는 "미술관이 투기나 착취 같은 여러 문제를 품고 있지만, 공적으로 작동하는 미술관은 중요하다"며 "미술관은 전쟁터이고, 문화 행위자로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시는 5부로 구성됐다.
1부 '데이터의 바다'는 데이터·인공지능·알고리즘·메타버스 등 디지털 사회에서 이미지 생산과 순환, 데이터 노동, 동시대 미술관의 상황을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첫선을 보이는 작품 '야성적 충동'은 시장을 통제 불능 상태로 만드는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에 대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개념을 빌려 비트코인과 대체불가토큰(NFT) 등 새롭게 등장한 야생적 자본주의 시장을 논의한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NFT에 대해 "극소수 작가만 이익을 취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미술시장과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짚었다.
2부 '안 보여주기―디지털 시각성'은 데이터가 대량 수집되고 감시 카메라가 널린 디지털 세계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위계를 질문한다.
3부 '기술, 전쟁, 그리고 미술관'은 기술 유토피아에 의문을 제기하고 기술과 전쟁, 동시대 미술관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다.
4부 '유동성 주식회사―글로벌 유동성'은 저해상도 이미지를 뜻하는 용어인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를 통해 지구적 네트워크 시대 이미지의 가치를 재정의한다.
5부 '기록과 픽션'에서는 독일 통일 이후 인종차별과 반유대주의 등을 다룬 초기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여준다.
작가는 "그 누구도 어떤 미술작품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고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다"며 "이번 전시에서 작품의 모든 내용을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모두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는 29일 오후 2시 관객을 만나 작품을 직접 설명한다.
작가와 대화는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계정을 통해 중계된다.
'비어 있는 중심, '11월', '러블리 안드레아' 등 영상작품 7편은 다음 달 27일부터 7월 17일까지 미술관 내 필름앤비디오에서 상영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영상·미디어 장르에서 선구적인 작가로 평가받는 히토 슈타이얼의 기념비적인 전시"라며 "관람객이 예술, 디지털 기술, 사회에 관한 흥미로운 논점을 제안해온 작가의 진면모를 마주하고 많은 담론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