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는 장소 극장→집…"영화 제대로 봤단 생각 안 들어"
극장·극장용 영화 위기 가속…"일부만의 취미로 남을 수도"
며칠 걸려 한편 보거나 속도 높여 뚝딱…팬데믹이 바꾼 영화감상
직장인 정모(28)씨는 일주일에 한 번은 극장을 찾던 영화 팬이지만, 최근에는 주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통해 영화를 감상한다.

그러나 집에서는 좀처럼 집중하기가 어려워 영화 한 편을 며칠이 걸려서야 겨우 보거나 중도 포기를 할 때도 있다.

정씨는 "아무래도 집에는 방해 요소가 많아서 영화에 빠져 들어 보기가 쉽지 않다"며 "한 작품을 보는 데 며칠씩 걸리다 보니 영화를 보고 나도 머릿속에 남는 게 없어 감상 자체를 접기도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보다는 집에서 영화를 보는 추세가 굳어지면서 영화를 감상하는 방식 또한 달라지고 있다.

영화 한 편을 한 번에 다 보지 않고 나눠서 보거나, 재생 속도를 높인 배속 감상을 하기도 한다.

유튜브에서는 영화 내용을 요약한 리뷰 콘텐츠도 인기다.

영화진흥위원회 연간 결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영화 산업에서 극장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30.4%에 불과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64.4%)의 절반 수준이다.

반면 2019년 35.6%였던 OTT·VOD 시장은 2021년 69.6%로 극장을 크게 앞질렀다.

영화를 보는 장소가 주로 극장에서 집으로 완전히 바뀐 것이다.

며칠 걸려 한편 보거나 속도 높여 뚝딱…팬데믹이 바꾼 영화감상
이에 따라 영화 감상 방식 역시 집에서 가볍게 소비하는 OTT 드라마처럼 변화한 모습이다.

한 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보지 않고 길게는 며칠간 나눠서 보는 게 대표적이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나 영화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10분 이상 영화를 집중해 보기가 어려워 껐다 켰다 한다"는 글과 이에 공감하는 댓글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넷플릭스, 왓챠 등 OTT를 통해 영화를 볼 때는 배속 기능을 활용하기도 한다.

정상 속도보다 1.25배, 1.5배 등으로 높여 보는 것으로, 실제 러닝타임보다 더 빨리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다.

평소 배속을 높이는 방법으로 영화를 본다는 대학생 임모(24)씨는 "빨리빨리 보는 게 버릇이 돼 이제는 원래 속도로 보면 답답함을 느낀다"며 "원래 속도로 봐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일부러 극장에 가서 보는 게 아닌 이상 쉽지 않다"고 했다.

아예 영화를 보지 않고 요약 영상으로만 영화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 영화 유튜브 계정은 구독자가 100만명이 훌쩍 넘고 영상 조회 수 역시 수백만 회를 상회한다.

대학원생 오모(25)씨는 "영화 유튜버들이 올리는 리뷰 영상이 실제 영화보다 더 재밌는 경우도 있다"며 "굳이 영화를 보는 데 몇 시간을 들일 이유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며칠 걸려 한편 보거나 속도 높여 뚝딱…팬데믹이 바꾼 영화감상
일각에서는 이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보면 창작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고 작품성도 평가절하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극장에서 봐야만 가치가 드러나는 작품이 많은데, 집에서 끊어 보고 빨리 돌려 도면 아무래도 감동이 덜할 수밖에 없다"며 "'드라이브 마이 카'나 '파워 오브 도그' 같은 섬세하고 호흡이 긴 수작들이 OTT에 공개된 후 엇갈린 평을 들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극장과 극장용 영화의 위기가 가속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집에서 편리한 방법으로 영화를 보는 게 익숙해질수록 극장에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영화를 보기는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영화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끝나더라도 극장이라는 장소가 주는 힘이 잊힌 상황에서 극장 산업이 예전만큼 매출을 회복할지는 미지수"라며 "극장 개봉을 목표로 만들어진 영화들도 결국 OTT행을 택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과거에는 대중적인 취미였지만, 향후에는 소수만의 취미로 남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극장을 찾는 사람만 찾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극장은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할 때"라며 "오히려 티켓 가격을 올리고, 대신 좌석을 더 안락하게 만들고 VR 콘텐츠를 내놓는 등 체험 공간으로 바꾸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며칠 걸려 한편 보거나 속도 높여 뚝딱…팬데믹이 바꾼 영화감상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