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퀸 자부심도 컸지만 어린 선수들 작은 인상폭도 생각해 결정"
MVP 실력에도 연봉 깎은 양효진 "15년의 시간 무시할 수 없었다"
여자 프로배구 간판 센터 양효진(33·현대건설)은 지금껏 4차례 자유계약선수(FA)로 계약하면서 협상 최종일까지 구단과 머리를 맞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했다.

현대건설은 FA 협상 마지막 날인 6일, 양효진과 연간 보수 총액 5억원(연봉 3억5천만원+옵션 1억5천만원)을 바탕으로 3년간 15억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양효진은 2021-2022시즌 정규리그 득점 부문에서 국내 선수 중 최고 순위이자 전체 7위(502점)에 올랐다.

또 오픈 공격(성공률 50.90%), 속공(성공률 55.60%), 블로킹(세트당 0.744개) 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해 최우수선수(MVP)급 활약을 펼쳤다.

그런데도 양효진은 지난 시즌 보수 총액 7억원(연봉 4억5천만원+옵션 2억5천만원)에서 2억원이나 깎인 액수에 도장을 찍고 현대건설에 남았다.

희한한 계약의 원인은 샐러리캡(연봉 총상한)에 있다.

2022-2023시즌 여자부 구단 샐러리캡은 연봉과 옵션을 합쳐 23억원에 불과하다.

현대건설은 이번 시즌 후 팀에서 FA 자격 취득자가 4명이나 나오자 양효진의 연봉을 줄여 이들을 모두 잡았다.

맏언니 양효진의 각별한 '희생'이 이목을 끈 만큼이나 샐러리캡 현실화가 시급하다는 쓴소리가 터져 나왔다.

MVP 실력에도 연봉 깎은 양효진 "15년의 시간 무시할 수 없었다"
홀가분하게 휴가를 떠난 양효진은 7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여느 FA 협상 때와 달리) 이번에 생각도 많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게 맞을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먼저 양효진은 "처음에 구단과 만났을 때 연봉을 깎겠다는 말을 듣고는 한동안 기분이 묘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MVP급 활약에도 자진 삭감한 금액에 도장을 찍은 게 화제에 오르자 양효진은 "프로 선수의 연봉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왔고, 지난 9년간 연봉퀸으로서 자부심도 컸고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해왔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도 "돈도 중요하지만, 15년간 현대건설에서만 뛰어온 시간을 무시할 수 없었다"며 "2007년 입단 이래 어렸을 때부터 이 팀에서 성장해왔고, 어쩌면 내겐 마지막일 수도 있는 FA 계약인데 이런 것들을 완전히 외면하기에는 내가 너무 많은 시간을 이 팀에서 보냈다"고 팀에 남다른 애정을 강조했다.

현대건설에 입단해 2011년과 2016년 챔피언결정전에서 두 차례 축배를 든 양효진은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2019-2020시즌과 2021-2022시즌 두 번이나 정규리그 1위를 달리다가 시즌 조기 종료로 허무하게 우승 찬스를 날린 것에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MVP 실력에도 연봉 깎은 양효진 "15년의 시간 무시할 수 없었다"
양효진은 "두 번이나 우승컵을 더 들 수 있었는데 안타까웠다"며 "팀과 내가 그동안 (호흡이) 잘 맞았고, 샐러리캡 때문에 어린 선수들의 연봉 인상액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상황이라 내 연봉만 생각할 순 없었다"며 팀을 위해 연봉 삭감을 감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비록 생각만큼 좋은 조건은 아니었지만, 양효진은 "현대건설 구단이 나를 존중해주면서 대화를 진행했다"며 "다른 팀에서 은퇴한다는 게 어쩌면 내겐 너무 모험일 수도 있어서 지금 팀 동료들과 다 함께 내년에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심정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고 덧붙였다.

현대건설은 양효진에게 감사의 뜻을 건네면서 선수 복지 향상과 은퇴 이후 계획을 양효진과 함께 모색하고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른 구단에서도 양효진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구체적인 액수와 제안이 오간 것은 아니었다고 양효진은 선을 그었다.

30대 중반을 향하는 나이에도 여전히 국내 최정상 센터로 군림하는 양효진은 "노력한 것들이 결과로 나와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며 지난 시즌 이룬 성과에 뿌듯함을 나타냈다.

이런 양효진에게 상대 팀 감독들은 '알고도 못 막는다'며 최고의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양효진은 "지난 시즌 잘했다고 다음 시즌에도 배구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재작년 바닥을 헤맬 때 더 잘해보려고 품었던 간절한 생각을 떠올리며 동료들과 내년 시즌을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