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절교육, 병원·장묘시설, 의료비 보조 등 정책·인프라 지원 다채
동물학대, 개물림 등 문제 여전…"생명존중, 반려인 책임 등 교육강화해야"
'시민·동물 조화롭게 공존'…지자체들, 반려동물 문화확산 앞장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사람과 동물의 건강한 공존을 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특히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저마다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고 제도를 마련하는 등 성숙한 반려동물 문화 정착 노력에 앞장서고 있다.

다만 한 사회에 새로운 문화가 뿌리내리기까지는 진통이 뒤따르고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공원 산책길에서 마주친 반려인과 비반려인이 서로를 불편해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동물 학대, 반려인의 부주의로 비반려인이 개에 물리는 사고 등의 뉴스도 끊이지 않는다.

'시민·동물 조화롭게 공존'…지자체들, 반려동물 문화확산 앞장
◇ 예절교육, 장묘시설, 테마파크…지역별 정책·인프라 '봇물'
지자체들은 시민과 동물이, 반려인과 비반려인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를 조성해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자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울산시는 반려동물 교육 인증제와 반려동물 예절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KCMC문화원과 지난 25일 '한국형 반려동물 문화 정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최근 급격히 증가하는 반려동물 물림 사고와 소음 등으로 발생한 반려인과 비반려인 간 갈등 해소를 위해 마련됐다.

울산시는 2020년 9월 '반려 친화 도시' 선언과 함께 반려견 예절교육실 등을 갖춘 반려동물 문화센터를 개관하는 등 시민과 동물이 함께 삶을 영위하는 도시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전시는 올해 반려동물 에티켓 지도 도우미 10명을 채용했다.

5개 자치구에 2명씩 배치된 도우미들은 일반 시민이 위협감이나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반려동물 보호자들을 지도·안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대전시는 또 장애인과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반려동물 의료비를 지원하고, 동물장묘업체 3곳과 협약해 시에 등록된 반려동물의 화장 비용을 할인해주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전북 임실군에서는 지난해 7월 전국 최초로 반려동물 공공 장묘시설인 '오수 펫 추모공원'이 문을 열었다.

추모공원은 납골당과 수목장, 추모실 등은 물론이고 반려동물을 잃어 실의에 빠진 반려인의 '펫로스 증후군' 치료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제주도는 지역 유일의 공설 동물장묘 시설 건립을 2024년 준공 목표로 추진 중이다.

'시민·동물 조화롭게 공존'…지자체들, 반려동물 문화확산 앞장
부산에서는 최근 공설 동물 장묘시설 설치·운영 근거가 되는 '부산시 공설 동물 장묘시설 설치 및 운영 조례'가 제정됐다.

이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손용구 부산시의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부산 전체 141만 가구 중 13%인 18만4천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동물장묘업으로 정식 등록된 업체는 기장군에 있는 3곳이 전부인 것으로 파악됐다.

부산시는 최근 동명대, 경상국립대와 대학동물병원 유치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인구 800만이 거주하는 부산·울산·경남지역에 대학동물병원은 현재 경상국립대 동물의료원이 유일한 실정이다.

경기도는 여주시에서 반려동물 테마파크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 시설은 성숙한 반려동물 문화 확산, 반려동물 산업 육성, 동물복지 향상 등을 위해 건립 중이며 489억원이 투입된다.

오는 7월에는 화성시 화옹간척지 에코팜랜드 반려동물단지에 '경기도 고양이 입양센터'도 문을 열 예정이다.

인천시의회는 동물학대 예방교육을 통해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생명 존중 정서를 함양할 수 있도록 지난달 '인천시교육청 동물학대 예방교육 조례안'을 가결했다.

8대 특별·광역시 중 처음 제정된 이 조례에 따라 앞으로 인천의 유치원·초등·중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게 된다.

경남 창원시는 유튜브 채널 '반려동물 친화도시 창원'을 개설하고 반려동물과 관련한 각종 영상 콘텐츠를 배포하고 있다.

'시민·동물 조화롭게 공존'…지자체들, 반려동물 문화확산 앞장
◇ 끔찍한 동물학대, 개 물림 사고…반려동물 증가의 어두운 이면
반려동물 증가 이면에는 동물학대라는 안타까운 그림자도 드리운다.

전북 군산시에서는 지난 2월 입양한 푸들 10여 마리를 잔인하게 학대하고 죽인 40대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불구속 송치됐다.

그는 푸들에게 강제로 물을 먹여 숨을 못 쉬게 하거나 둔기로 때리는 등 잔인한 방식으로 죽인 뒤, 아파트 화단에 매장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도에서는 올해 1월 50대가 생후 2개월가량 된 반려견을 말썽을 피운다는 이유로 안산시 단원구 탄도호 주변 빙판 위에 노끈으로 묶은 채 방치하는 방법으로 학대한 혐의로 입건됐다.

대구와 경북에서는 길고양이 학대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이달 22일 포항 남구 한 폐양식장에서 길고양이를 살해한 뒤 사체를 훼손한 혐의로 20대가 입건된 상태다.

지난해 11월에는 대구 동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새끼 길고양이 4마리가 잔혹하게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했으나, 범인을 찾지 못했다.

앞서 대구 달서구와 수성구에서도 각각 길고양이 학대 사건이 발생했으나,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경남 창원시에서는 20대가 취업 스트레스를 이유로 키우던 고양이를 담벼락에 내리쳐 죽였다.

이 고양이 죽음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물학대를 예방하고 강력히 처벌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달라"는 글이 게시돼 20만 명 이상 동의를 끌어내기도 했다.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최근 친구 사이인 20대 2명에게 벌금 100만원씩을 선고했다.

이들은 2020년 12월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던 중 쥐불놀이를 하듯 목줄을 공중으로 여러 차례 돌리며 괴롭힌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의 학대 행위가 촬영된 동영상이 SNS에서 공개되면서 큰 비난을 사기도 했다.

소홀한 반려동물 관리가 비반려인을 다치게 하는 사고도 여전하다.

지난해 12월 강원도 춘천시의 한 주택가에서는 산책하던 80대가 갑자기 달려든 사냥개 3마리에게 온몸을 물려 뼈가 드러날 정도로 곳곳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지난달 의정부지방법원은 목줄을 채우지 않은 반려견이 여러 차례 행인을 물도록 방치한 80대 견주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과 함께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반려견이 이웃집 할머니를 물어 숨지게 한 사고로 배우 김민교 씨가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받았다는 소식이 최근 알려지기도 했다.

'시민·동물 조화롭게 공존'…지자체들, 반려동물 문화확산 앞장
◇ "생명 교육으로 학대 예방" 강조…"반려인 책임 의식 중요" 의견도
동물학대 예방을 위해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교육을 강화,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을 높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공동체가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약자를 보듬듯, 동물 역시 당연한 보호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심인섭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대표는 27일 "동물보호법 처벌 기준이 상향됐지만, 형사 범죄 처벌과 달리 대부분 벌금형을 끝난다"라면서 "이런 부분이 동물학대를 방조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그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가구가 늘수록 동물 유기나 학대와 관련한 사회적 문제도 증가한다"라면서 "어릴 때부터 생명이나 동물보호에 대한 교육을 잘 받도록 해서 반려동물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보듬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반려견 보호자의 책임 의식, 반려인과 비반려인의 상호 존중을 강조하는 의견도 있다.

반려견 훈련 전문업체 '50K 반려견 아카데미' 관계자는 "반려견이 사람을 무는 상황이 벌어지기까지 개가 다양한 시그널을 보이는데, 보호자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적절한 교육이나 조처를 하지 못해 사고로 이어진다"라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반려견에 관해 공부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하며, 최근 지역별로 늘어나는 관련 시설에서 보호자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원조 개통령'으로 알려진 이웅종 연암대 교수(KCMC 문화원장)는 "반려견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우리 사회로 편입시킨 반려인들은 비반려인과 공존하는 방법과 매너를 먼저 익히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라면서 "반려인의 이런 태도가 견종에 상관없이 '명견'을 만들고, 비로소 비반려인의 이해를 끌어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비반려인도 강아지가 예쁘다고 불쑥 만지거나, 혹은 지나치게 경계하는 등의 행동을 자제하는 매너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양영석 나보배 최종호 박세진 김재홍 정윤덕 장아름 강종구 한지은 김용민 고성식 허광무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