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EUV(극자외선) 공정에 쓰이는 핵심 원료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용화됐다. 반도체 공정 원재료 분야에서 일본과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반도체 EUV공정 핵심 원료…국내 中企, 첫 상용화 성공
20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 재원산업은 EUV 공정 핵심 원재료 중 하나인 프로필렌글리콜 메틸에테르 아세트산(PGMEA) 상용화에 성공했다. 재원산업은 전남 여수 낙포동에 있는 자체 공장에서 PGMEA를 양산해 지난해 말부터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1차 협력사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실험실 연구로 PGMEA 개발에 성공한 사례는 있지만 양산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회사 측은 강조했다.

PGMEA는 반도체용 시너(thinner)로 제조돼 EUV 노광 공정에서 극자외선 감광 반응이 일어나지 않은 부분에 묻은 감광물질(포토레지스트)을 씻어내는 역할을 한다. 노광 공정에 들어가기 전 웨이퍼에 바르면 감광물질을 더 적게 사용하더라도 고르게 펴지도록 돕는다.

EUV 공정으로 제조하는 반도체는 회로가 극도로 미세해 아주 작은 불순물이라도 묻어 있으면 수율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여기에 들어가는 PGMEA도 매우 높은 순도가 요구된다. EUV 공정용 PGMEA는 5N으로 불리는 99.999% 이상 초고순도로 제조된다. 이전 세대인 불화아르곤 공정에는 99.99%의 PGMEA가 필요했다.

지금까지 국내에는 PGMEA의 순도를 높이는 정제 기술은 있었지만 전 단계인 PGME(프로필렌글리콜모노메틸에테르)를 PGMEA로 합성하는 기술은 없었다. 일본에서 초고순도 PGMEA를 수입하거나 중국에서 순도가 떨어지는 PGMEA를 수입한 뒤 정제를 거쳐 반도체 공정에 투입해온 이유다.

재원산업이 소재 국산화에 뛰어든 계기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다. 당시 중국이 올림픽 기간 공장 가동 시간을 규제하자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PGMEA, EEP(에틸 3 에폭시 프로피오네이트) 등 반도체 원재료 가격이 폭등했다. 중국에서 원재료를 수입해 가공하던 국내 업체들은 손실을 피하기 어려웠다. 재원산업은 공급망 안정을 위해 2009년 시작한 EEP 합성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2012년 성공시켰다. 이 노하우를 활용해 2018년 PGMEA 합성기술까지 개발했다. 회사 측은 EEP 국산화로 연간 400억원, PGMEA 국산화로 연간 1000억원가량의 수입 대체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재원산업은 올 들어 심장섭 창업주의 첫째 아들인 심재원 단독 대표 체제로 재정비하면서 해외 사업 확장에 힘을 싣고 있다. 납품처를 다변화하고, 주요 고객사인 SK하이닉스, 삼성SDI 등의 해외 사업장 인근에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미국 조지아주에는 2차전지 소재 공장을 짓기로 확정하고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